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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반 수시 모집 : 화, 수, 목, 금, 토요일 가능 시간은 별도 문의
화타오금희

고급반 수련기

김 덕 배
오금희를 시작한지 벌써 3년이 되었다. 그동안 정성으로 지도해주신 김성기 원장님과 박윤선 부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위에서 애써서 자세를 잡아주시고 궁금한 점을 자세히 해설해주신 김경린, 박성희, 권이신, 서성호, 주영환강사님 그리고 지금은 자리를 같이하지 못하시는 고광찬, 황규훈 선배님들께 또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기공을 배운다는 계획아래 무엇인지 모르게 동작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하는 것인지 나름대로 흉내를 내느라 바쁘다가 초급반을 마치고 중급반에서 그런대로 왜 이런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으며 항상 원장님 말씀 중에 형(形), 법(法), 공(功), 해(解)를 머리에 두고 기본자세에서 ....

심정안상(心靜安祥) 지체방송(肢體放송) 의령기순(意靈氣順)

정신집중(精神集中) 호흡자연(呼吸自然) 이루어지기를 노력하며 벌써 고급반을 마치게 되었으니 과연 나는 어디쯤을 가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열심히 하지 못한 탓이 있어서 완전한 자신을 갖지 못한 것 같다. 언제가 황규훈 선배가 게시판에 올린 글을 새삼 읽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참고로 이글을 옮겨 봅니다.

『“법(法)은 이것이 전부이나, 묘(妙)가 아직도 부족하다."

남구만(南九萬) : 1629(인조7) - 1711(숙종37).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미재(美齋)

본관은 의령(宜寧)

시호는 문충(文忠). 송준길의 문하에서 수학,

효종 2년(1651) 23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효종 7년(1656)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정언(正言)으로 시작하여

이조정랑, 전라도관찰사, 한성부윤, 병조판서, 영의정 등 내 외직을 두루 역임하고

숙종 33년 (1707) 79세 때 치사(致仕)하고 봉조하가 되었다. 서인으로서 남인의 배척으로 남해와 강릉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문사(文詞)와 서화(書畵)에도 뛰어났으며,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한다.

이 글은 <약천집> 권28 잡저(雜著)에 수록되어 있으며, 원제는 [조설(釣說)]이다.

경술년(1670)에 나는 고향 결성(潔城)으로 돌아가 지내었다. 집 뒷켠에 넓이가 수십 보 남짓에 깊이가 6, 7척 쯤 되는 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 못의 고기들을 구경하곤 하였다. 하루는 이웃사람이 대를 베어 낚싯대를 만들고 바늘을 두들겨서 낚싯바늘을 만들어 나에게 주면서 낚시를 하도록 권하였다. 나는 서울에서만 오래 지내었기 때문에 낚싯바늘의 길이나 넓이, 굽은 정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 턱이 없으므로 그저 이웃사람이 주는 그대로가 적당한 것으로만 알 뿐이었다. 그러나 종일토록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다음날 손<客>이 한 사람 와서 낚싯바늘을 보더니 "고기를 잡지 못한 게 당연하다. 바늘 끝이 안으로 너무 굽어 고기가 물기도 쉽지만, 뱉기도 쉽게 생겼으니, 끝을 밖으로 조금 펴야 된다."고 하였다.

나는 그 사람을 시켜 두들겨 밖으로 펴게 한 다음 다시 종일토록 드리웠으나 역시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그 다음날 또 손<客> 한 사람이 와서 바늘을 보더니

"못 잡을게 당연하다. 바늘 끝이 밖으로 펴지기는 하였으나

굽은 테의 둥글기가 너무 커서, 고기 입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여

나는 또 그 사람을 시켜 바늘 굽이의 둥글기를 좁게 만든 다음 다시 종일토록 드리워서 겨우 한 마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 손<客> 두 사람이 왔기에

나는 낚싯바늘을 보여주며 지금까지의 일을 말하니

그 중 한 사람이 "적게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바늘은 굽힌 곡선의 끝이 짧아, 겨우 싸라기를 끼울 만해야 하는데, 이것은 굽힌 끝이 너무 길어, 고기가 삼킬 수가 없고 삼켜도 다시 내뱉게 생겼다."고 하였다. 나는 그 사람에게 그 끝을 짧게 만들도록 한 다음, 한참 동안 드리우고 있노라니 여러 번 입질을 하였으나, 낚싯줄을 당기는 중에 빠져서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러자 곁에 있던 다른 손<客>이 "저 사람의 바늘에 대한 견해는 맞으나 당기는 방법이 빠졌다.

대체로 낚싯줄에 매달린 찌는 부침(浮沈)에 따라 입질하는 것을 아는 것인데, 움직이기만 하고 잠기지 않는 것은 완전히 삼킨 것이 아니라서, 갑자기 당기면 너무 빠른 것이고, 잠겼다 조금 나오는 것은 삼켰다가 다시 뱉은 것으로 천천히 당기게 되면 이미 늦은 것이다.

때문에 잠길락 말락 할 때에 당겨야 한다.

그리고 당길 때에도 손을 들어 곧바로 올리면, 고기의 입이 막 벌어져서 바늘 끝이 아직 걸리지 않아, 고기 아가미가 바늘 따라 벌려져서 나뭇가지에서 낙엽이 지듯이 떨어져 버린다. 까닭에 비로 쓸 듯이 손을 비스듬이 하여 당기면, 고기가 막 삼키자마자 바늘 끝이 목구멍에 걸려 좌우로 요동을 쳐도 더욱 단단히 박히게 되므로, 이것이 놓치지 않는 방법이다."고 하였다.

내가 다시 그 방법대로 해 보니 드리운 지 얼마 안 되어 서너 마리를 잡았다.

그러자 손이 말하기를, "법(法)은 이것이 전부이나, 묘(妙)가 아직도 부족하다."고 하면서 나의 낚싯대를 가져다 직접 드리웠다. 낚싯줄도, 바늘도, 미끼도, 내가 쓰던 그대로이고 앉은 곳도 내가 앉았던 곳으로, 달라진 것이라곤 낚싯대를 잡은 손<客>일 뿐인데도, 드리우자마자 고기가 다투어 올라와 마치 바구니 속에서 집어 올리듯, 쉴 사이 없이 낚아 올렸다.

내가 "묘(妙)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그것도 가르쳐 줄 수 있겠는가?" 하니 손<客>이 말하기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법(法)이다.

묘(妙)를 어떻게 가르쳐 줄 수가 있겠는가?

가르쳐 줄 수 있다면 그것도 묘(妙)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가르쳐 달라고 한다면 한 가지가 있다.

당신은 내가 가르쳐 준 법(法)으로, 아침이고 저녁이고 드리워 정신을 가다듬고 뜻을 모아 오랜 동안 계속하면, 몸에 배고 익숙해져서 손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조절되고, 마음도 저절로 터득하게 될 것이니, 이처럼 된 후에 묘(妙)를 터득하거나 못하거나, 혹 그 미묘한 것까지 통달하여 묘(妙)의 극치를 다하거나 또는 그 중 한 가지만 깨닫고 두세 가지는 모르거나 아니면 하나도 몰라서 도리어 의혹되거나 혹은 황연(恍然)히 자각하여 스스로 자각한 줄도 모른다거나 하는 따위는 모두가 당신에게 달린 것이니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하였다.

그제 서야 나는 낚싯대를 던지고 탄식하였다.

"훌륭하다 손의 말이여! 이 도(道)를 미루어 간다면

어찌 낚시에만 적용될 뿐이겠는가? 옛 사람이 이르기를

"작은 일로 큰일을 깨우칠 수 있다." 하였으니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손<客>이 떠나고 나서

그의 말을 기록하여 스스로를 살피는 자료로 삼고자 한다.』

형(形)과 법(法)은 사부님의 정성스런 지도로 모두 전수 받았으니 이제는 열심히 노력(功)하여 해(解)를 이루는 것은 나 자신의 몫으로 하고 끊임없는 도전을 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오금희를 같이 수학하면서 옆에서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신 동기 분들께도 마음깊이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