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타오금희 수련기
화타오금희 82기 수련생 김수혜
봄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작년 4월,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헤매며 화타오금희 한국 본부를 찾아왔던 날이 생생히 떠오른다. 큰 기대감 없이 누군가를 따라왔던 이곳에서 1년 동안 정을 붙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첫째 날 인자해 보이시는 회장님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대학 시절 들었던 유학 수업의 교수님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 교수님은 손을 비벼 따뜻해진 온기를 눈에 갖다 댄 후에 수업을 시작하곤 했다. ‘혹시 그분이 회장님이신가’하는 의문이 아직도 있지만, 회장님께 여쭤보진 않았다. 그리 훌륭한 학생은 아니었기에. 회장님의 목소리와 함께 대학 시절 장면, 장면이 교차되다가 자연스럽게 예비공을 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오금희에는 어떤 동양 철학이 깃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쉬운 듯 어려운 듯한 동작을 따라가기 바빴다. 이 많은 동작들을 언제 다 외워서 나의 것으로 만들지 하는 생각에 조금 막막하기도 했다. 빨리 잘 해내려고 하는 나의 습관적 강박 때문이었을 것이다.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니, 그것이 ‘불필요한 강박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열심히 연습해오지 않아도 80개가 넘는 동작을 중간에 흐름이 끊기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몸에 익힐 수가 있다는 것에 놀랍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임하고, 자연스럽게 움직임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오금희 교수법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외국 무용을 전공한 나는 과거에 인위적이고, 과장되고, 가동범위를 무시하는 움직임들을 해왔다. 그러나 몸에 관하여 공부를 하다가 보니, 내가 해온 움직임이 결코 아름다운 미적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스러운 움직임, 과장되지 않은 움직임, 몸이 허락한 움직임이 비로소 건강하고 아름다운 춤이라는 것을 ‘글’로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이론적 관점에서의 올바른 움직임을 외국 무용으로 설명하기에는 참 어려운 점들이 많았다. 현대의 클래식 발레에서는 다리를 가동범위 이상으로 들고, 허리를 꺾고, 많이 돌고, 흔히 말하는 굉장한 테크닉을 소화해내야 훌륭한 무용수라는 통념이 자리 잡은 탓이다. 인간의 움직임은 관절과 관절이 움직여서 가동되는 것인데, 관절의 가동범위를 반복적으로 벗어나게 되면 그것이 축적되어 결국엔 부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보여지는 몸만을 생각하다 보니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신체적 부상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정신적 부상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무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면, 그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런데 화타오금희를 접하면서 이론적 관점에서의 올바른 움직임이 수행적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오금희 수업에서는 “천천히, 할 수 있는 만큼만, 쉬어가면서...” 등 이런 말들을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는데, 이러한 지시어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임을 우리 몸에 스며들게끔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82기 동기들과 동작의 시작과 끝, 시선, 중심을 찾아가면서 완성해 나가는 그룹 활동이 동작의 정확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움직이는 데 어려움을 겪던 분들이 점점 자연스럽게 수행해내는 모습들을 보니 함께 만들어 간다는 뿌듯함도 들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다양한 생각을 듣게 되고,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알아가는 기쁨을 느꼈다. 특히 동작이 안된다고 무시하거나 재촉하지 않고 서로를 인정하며 고쳐나갈 수 있는 부분부터 차근차근 짚어가는 것이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과거에 내가 무용을 할 때, 친구를 항상 경쟁자로 삼아왔던 환경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이었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고, 관찰과 서로를 배려하는 대화를 통해서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이런 경험을 진즉에 했더라면 내가 발레를 더 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1년 동안 시시한 회장님의 농담, 사람들과 대화를 통한 새로운 발견들이 모두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고, 이러한 것들이 오금희를 나의 움직임으로 만든 큰 힘이었다. 앞으로도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자산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화타오금희 82기 수련생 김수혜
봄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작년 4월,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헤매며 화타오금희 한국 본부를 찾아왔던 날이 생생히 떠오른다. 큰 기대감 없이 누군가를 따라왔던 이곳에서 1년 동안 정을 붙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첫째 날 인자해 보이시는 회장님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대학 시절 들었던 유학 수업의 교수님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 교수님은 손을 비벼 따뜻해진 온기를 눈에 갖다 댄 후에 수업을 시작하곤 했다. ‘혹시 그분이 회장님이신가’하는 의문이 아직도 있지만, 회장님께 여쭤보진 않았다. 그리 훌륭한 학생은 아니었기에. 회장님의 목소리와 함께 대학 시절 장면, 장면이 교차되다가 자연스럽게 예비공을 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오금희에는 어떤 동양 철학이 깃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쉬운 듯 어려운 듯한 동작을 따라가기 바빴다. 이 많은 동작들을 언제 다 외워서 나의 것으로 만들지 하는 생각에 조금 막막하기도 했다. 빨리 잘 해내려고 하는 나의 습관적 강박 때문이었을 것이다.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니, 그것이 ‘불필요한 강박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열심히 연습해오지 않아도 80개가 넘는 동작을 중간에 흐름이 끊기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몸에 익힐 수가 있다는 것에 놀랍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임하고, 자연스럽게 움직임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오금희 교수법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외국 무용을 전공한 나는 과거에 인위적이고, 과장되고, 가동범위를 무시하는 움직임들을 해왔다. 그러나 몸에 관하여 공부를 하다가 보니, 내가 해온 움직임이 결코 아름다운 미적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스러운 움직임, 과장되지 않은 움직임, 몸이 허락한 움직임이 비로소 건강하고 아름다운 춤이라는 것을 ‘글’로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이론적 관점에서의 올바른 움직임을 외국 무용으로 설명하기에는 참 어려운 점들이 많았다. 현대의 클래식 발레에서는 다리를 가동범위 이상으로 들고, 허리를 꺾고, 많이 돌고, 흔히 말하는 굉장한 테크닉을 소화해내야 훌륭한 무용수라는 통념이 자리 잡은 탓이다. 인간의 움직임은 관절과 관절이 움직여서 가동되는 것인데, 관절의 가동범위를 반복적으로 벗어나게 되면 그것이 축적되어 결국엔 부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보여지는 몸만을 생각하다 보니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신체적 부상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정신적 부상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무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면, 그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런데 화타오금희를 접하면서 이론적 관점에서의 올바른 움직임이 수행적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오금희 수업에서는 “천천히, 할 수 있는 만큼만, 쉬어가면서...” 등 이런 말들을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는데, 이러한 지시어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임을 우리 몸에 스며들게끔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82기 동기들과 동작의 시작과 끝, 시선, 중심을 찾아가면서 완성해 나가는 그룹 활동이 동작의 정확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움직이는 데 어려움을 겪던 분들이 점점 자연스럽게 수행해내는 모습들을 보니 함께 만들어 간다는 뿌듯함도 들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다양한 생각을 듣게 되고,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알아가는 기쁨을 느꼈다. 특히 동작이 안된다고 무시하거나 재촉하지 않고 서로를 인정하며 고쳐나갈 수 있는 부분부터 차근차근 짚어가는 것이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과거에 내가 무용을 할 때, 친구를 항상 경쟁자로 삼아왔던 환경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이었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고, 관찰과 서로를 배려하는 대화를 통해서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이런 경험을 진즉에 했더라면 내가 발레를 더 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1년 동안 시시한 회장님의 농담, 사람들과 대화를 통한 새로운 발견들이 모두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고, 이러한 것들이 오금희를 나의 움직임으로 만든 큰 힘이었다. 앞으로도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자산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