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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반 수시 모집 : 화, 수, 목, 금, 토요일 가능 시간은 별도 문의
화타오금희

정회원 수련기

이 미 리
< 만남 >

작은아이 고관절이 항상 마음에 걸려있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한 쪽 고관절이 약간 틀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별다른 치료법은 없었다. 철봉을 하고 밤에 잘 때 두 다리를 묶고 자라는 처방이 있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무도 ”라는 곳에 가게되어 아이만 수련을 시키고 나는 거실에서 무료하게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마냥 그럴 수마는 없어서 나는 팔자에도 없는 *무도 라는 수련에 동참하게 되었고 그렇게 몇 개월 지내던 중 한의원에 갈 일이 있었다.

그 곳은 우리 가족의 건강을 십년 넘게 지켜주시는 존경스러운 선생님이 계신 곳이었다.

진료받던 중 운동이야기가 나왔고 선생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오금희’라는 단어를 스치듯 말씀하신 것,,,그것 뿐이었다..

‘오금희’ ‘오금희’...나는 속으로 그 단어를 잊지 않으려 속으로 되뇌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다른 수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방 오금희를 잊어 버렸다..1년만에 수련은 끝이 났다..그리고 2년이 흘렀다..

2008년 말,,,3년만에야 나는 갑자기 오금희를 떠올리면서 맹렬히 그 운동이 하고 싶어졌다. 전화를 받는 부회장님의 목소리가 너무 또랑또랑 하였다..

그리고 몇 번 전화를 하는 내게 친절함을 잃지 않으셨다.

결국 아이 덕분에 시작한 수련이 오금희로 이어진 것이었다..

< 망설임 >

만나기까지 3년이 걸린 오금희는 생각만큼 감격스럽지 않았다.

일단 사람들이 너무 많아 처음엔 산만하기까지 했다.

예비공이란 것이 나에겐 도무지 ‘운동’이 되지 않았다.

나는 도중에 그만둘까 걱정되어 수련비 3개월치를 한꺼번에 내었다.

물론 할인되는 혜택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중도 포기할까,,

그것이 더 무서웠다.

그리고 맨 앞 줄에 섰다. 수련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일부러 마음을 내었지만

집에 와서 연습하는 날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벅찬 시작은 하였으되 재미없는 시간으로 더워지는 날씨와 더불어

지리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가르치시는 선생님의 인품에 놀라워 하고 부회장님의 낭랑하고 환한 미소만이 좋을 뿐,,염불에 뭐하고 잿밥에 뭐하다는 식이었다..

< 기다림 >

주변에서 뭐가 좋아지고 어디가 통증이 오고,,슬슬 오금희 효과를 말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장님은 툭하면 어디가 아파도 참고 수련해라,,등등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아프긴 어디가 아퍼,,난 하나도 아프지도 않고 별로 힘들지도 않은데,,그렇게 향내나는 봄이 가고 연두빛 초여름이 지나도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수련은 둘째치고 우리가 앞에 나가 시범을 보이면 칭찬만 하시는 회장님의 칭찬기법?에 속으로 감탄할 뿐!!! 아~~나도 아이들에게 저렇게 해야 하는데,,,맨날 잘못한 것 야단만 치니,,,이런 사소한 것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 변화 >

2009년 여름은 정말 무더웠다..적어도 나에겐,,갱년기의 시작을 알리느라고 웬 땀이 그렇게 쏟아지는지,,,그것도 얼굴에서...

가만히 있어도 얼굴에서 땀이 줄줄 나는데 무슨 운동이야,,,이렇게 스스로 위안하면서 나는 여전히 속으론 게으르고 불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렇게 무덥고 습한 기운이 조금씩 힘을 잃어갈 때쯤 서서히 초급반도 막을 내리려 할 때,,잘 안되는 동작들에 대해서 선배님들께 하나 둘씩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상세한 설명들이 나를 조금씩 자극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집에 와서 선배님들이 일러준 동작들을 해보게 되었다.

8월 말 쯤으로 기억된다.

갑자기 ‘걷고’ 싶어졌다..아니,,내가 걷고 싶어지다니...

뒤늦게 늦둥이를 낳은 나는 힘들게 출산한 이후부터인가,,걷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일단 기운이 없어서 걷기 싫어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긴 했지만 그건 언제나 수련장 안의 밀폐된 공간에서 하는 조용한 운동이었다.

집근처 아름다운 허브공원이 있고 잘 꾸며진 잔디광장이 있다.

처음 개장하였을 때 가보고 2년만이었다.

땅의 더운 열기가 가실 어스름 무렵, 걷기 제일 싫어하던 내가 스스로 걷기를 자청하여 공원을 찾아간 것이다.. 왜냐하면 ‘오금희’를 하기 위해서..

기뻤다. 그냥 기쁘다. 충만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다..

9월이 되니 중급반이란다..

시간이 가니 저절로 올라간 것이다.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이후로 날마다 집에서도 연습하면서 동작마다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약한 부분에선 반드시 통증과 시원함이 함께 왔다.

또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으면 다리가 저려서 20분을 견디기 어려워 하던 내가 50분이 지나도 웬만큼 참을 수 있게 되었다.

궁금한 것이 점점 늘어가고 나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 병 >

야,,오금희 정말 좋은가보다..가을 내내 공원다니며 수련하고 감기 안걸리고 신종플루 어쩌구해도 감기대장인 나는 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회장님 설명 하나하나가 귀에 쏙 들어오고 정말 재밌다...라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삶이 그러하듯 좋은 일 뒤엔 항상 안좋은 일들이 쫒아 다니지 않던가!! 11월이 되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늦가을 분위기로 미처 떨어지지 못한 낙엽들이 가을을 아쉬워하듯 미련을 남기고 있었다.

그것이 괘씸하였던지 반짝 겨울추위가 삼사일 지속되던 날,,금요일 저녘 ,,귀가 좀 이상하였다..다음 날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이 되면서 한쪽 귀가 꽉 막히면서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어쨌든 내게는 희안한 병이 찾아왔다.

‘돌발성 난청’이라나... 높은 산에 올라가면 귀가 막히듯이 그런 증상이 오면서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거의 완쾌되었다. 3주 정도 지났다..

이 과정에서 느낀 것은 소위 ‘깡’이 무척 세졌다는 것이다.

두려웠고 청력을 잃을까봐 심히 걱정되었지만 ,,아무튼 한방의 도움으로 지금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그 와중에도 오금희를 빠지지 않고 나간 내가 대견하다..칭찬하여 주고싶다^^

단순히, 오금희 때문에 깡이 세진 것은 아니겠지만 그 영향을 무시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플루가 무섭지 않았으니까..

< 일상 >

지금은 하루에 한 번만 연습을 한다.

선유녹경이 제일 힘들다..그래서 더 못하겠다..^^

막바지가 되어가는 걸 알 수가 있다..

왜냐면 사람들이 갑자기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부침게를 사온다던지 먹을꺼리들이 수련장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10여년동안 이 수련을 이끄시는 회장님 부회장님은 하기 싫을 때가 없었을까? 그 평상심은 오금희 수련에서 나오는 힘일까?

나도 10년쯤 수련하면 ‘깡’에서 ‘평정심’ --> ‘평상심’으로 진행할 수

있을까?

그리고 수련 초반기,,지루해하며 동작하던 나에게 따뜻한 격려와 칭찬을 일삼았던 짝꿍에게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다..초급반 끝날 즈음부터 나오지 못한 짝꿍 덕분에 나는 남았는데...

누구는 인간 병풍을 치우라고 했지만 나는 ‘병풍’이 되고 싶다.

늘 수련장 뒤에서 후배들의 병풍이 되어 빠진 사람 진도 보충해 주고 자상한 설명해주고, 먹다 내팽겨치고 가버린 종이컵, 물컵등을 말없이 치우는 그런 선배님들처럼... 언제나 오금희 수련을 잊지 않고 몸으로 움직이는

병풍,,,

긴 글 읽어주셔서 미안하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