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두- 특이한 젊은이
42기를 시작한 2009년 6월 14일 이래 부회장님으로부터 함께 오금희를 배운 형님, 누님들에 비하면 나의 나이는 수십 년 아래의 고작 29살. 함께 수련한 송용실 형님은 종종 내게 말씀하신다.
“그 나이에 토요일 이 시간에 여기 오는 거부터가 이상하다.”
그렇다. 특이하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오금희를 너무나도 좋아한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수련의 기간도, 그 깊이도 일천하지만 앞으로 오금희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생기게 되어 이 수련기를 접하게 될 모든 분들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까하여 내가 왜 오금희를 시작하게 되었고 또 매료되었는지 한번 돌이켜 보고자 한다.
2.오금희를 시작하기까지(사적인 부분으로 쓸데없이 기니깐 건너뛰셔도 됩니다)
얘기를 시작하기 위해 약간의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 아니 재수시절까지 대학입시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놈이 2001년에 대학에 입학하고 자취를 시작하게 되니, 삶의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활동에 어떠한 관심도 없었다. 재수시절까지 했던 공부도 오직 점수만 고득점이면 땡. 그 이상 관심도 없었다. 그나마 있던 삶의 목표도 제대로 된 게 아니었던데다가 그 이후는 아무런 목표도 없었으니 하루가, 한 달이, 1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생활은 망가졌다. 삶의 이유가 없는 삶. 참 지겹고 힘들었다. 정체된 삶에 얽매인 습관은 날이 쌓일수록 더 무겁게 나의 발목을 잡아끌었다. ‘끝낼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게 사실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2007년에 26살의 나이로 입대를 했다. 강원도 삼척에서 23사단 신병교육대대 조교로 복무했는데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어서, 참 즐거웠다. 나의 하루가, 나의 존재가 쓰임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맞아, 나 꽤 쓸 만한 애였지.’하며 ‘정체된 삶’, 그 전의 내가 기억났다. 그리고 기억난 ‘그전의 나’ 보다도 조교로 복무하고 있는 내가 더 맘에 들었다. 드넓은 세상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삶의 즐거움에 눈뜨기 시작하고 새로운 좋은 습관들이 쌓여가고 있었지만 나는 전역 이후의 내가 입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걱정되었다. 나는 나를 지탱해줄, 나를 지켜줄, 좋은 습관(좋은 동반자)를 원했다. 그중에서 체력관리 쪽에서 좋은 습관으로 초기에 염두에 둔 것은 군대에서 배우고 매일 반복하는 “도수체조(맨손체조)”였다. 제대로 된 맨손체조의 꾸준한 실행은 내가 별도의 운동 없이도 건강한 몸을 유지하게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행정반에서 어느 간부가 보고 놓아둔 중앙일보를 보았다.(뉴스검색을 통해 확인해보니 2008년 7월 17일이다. 처음 검색에선 2009년 8월 27일로 나와서 의아했는데 수정입력을 해서 수정입력일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신문을 보고 맘에 드는 기사를 스크랩하곤 했는데 그날 백성호 기자님이 쓴 “신의 화타의 ‘양생술’ … 가뿐한 몸, 고요한 마음”이라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부대에선 국방일보를 구독한다. 그날 이전에도, 이후에도 중앙일보를 부대에서 본 적 없으니 ‘참.....천운이다.’)
“이거다!” 그 기사는 스크랩되었고 나는 2009년 4월 8일 전역 이후 4월 27일(혹은 20일)에 교대 수련장을 방문, 기수가 이미 시작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2009년 6월 14일, 42기로 오금희에 입문하였다.
3.오금희는 해야, 맛이다.
순탄치는 않았다. 첫 동작인 녹참원조를 하기 위해 팔을 들기만 해도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기운이 바뀌는걸 느낄 수 있었지만 나의 하루가 마음에 들지 않고 기분이 다운되어 있을 때는 오히려 일절 오금희를 하지 않았다. 시작조차도. 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오금희를 하지 않는 날보다 하는 날이 길어지기 시작했고(파동의 형태로) 지금은 예비공 3회라도 하지 않는 날은 없다.
오금희는 눈으로 보고서는 그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줄 때도 꼭 따라 해보라는 조건을 단다면 실패는 적을 것이다. ‘부정적인 컨디션일 때의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억지로라도 시작하자. 그러면 시나브로 끝동작이다.
4.오금희를 수련하며 느낀 것들.
㉮오금희를 수련하고 나면 일상생활에서 내 몸의 변화에 민감해진다.
술기운도, 피로함도, 모두 금방 느낀다. 약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쉬어야할 타이밍이 언제인지, 내가 지금하는 활동이 내 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금방금방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다. 나는 2007년 이후 담배를 끊었는데 수개월전 일시 몇 대 폈을 때 담배가 내 몸에 아주! 안 좋다는 것을 바로 느꼈고 이후 전혀 관심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 몸 망가지는 줄 모르고 연일 밤샘에, 음주에, 흡연에... 그런 일은 오금희를 배운 이후에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모르고 그랬을 리는 없다는 거다. 몸이 알아서 지금 내가 하는 활동이 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바로바로 가르쳐 주니깐.
㉯오금희는 순환운동이다.
나는 혈관의 흐름도, 기혈의 흐름도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므로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처음에 예비공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예비공을 2회쯤 할 때부터는 손가락 끝에서 힘찬 맥박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느낌은 없다.(이것은 나의 두뇌가 그 소리를 굳이 내가 인지하지 않도록 차단시켜서 그렇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평소에 심장 두근거리는 소리를 못 듣는 것은 정상적인 박동소리를 두뇌가 차단시켜서 그런 것과 같은 원리이다.) 오금희를 할 때는 근육에 억지힘을 쓰지 않아서 혈관이 이완되고 이완된 혈관으로 심장에 들어오고 나가는 혈액이 증가한다고 여겨진다. 즉, 같은 양의 혈액으로도 순환이 잘되어서 예전 같으면 같은 시간에 몸을 1순환한다면 오금희를 할때는 3순환은 족히 하는 느낌이다.
㉰오금희는 꼭 동기들과 함께.
이점에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나는 평소에도 성실하지는 못했고 2개월의 공백이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분에 넘치는 사랑과 배려를 받았다. 얻어먹은 밥값만 해도 대체 얼마인가?! 그리고 부회장님께서 가장 큰 스승님이시지만(완전 존경합니다!) 바로 옆의 동기들은 어찌 보면 더 좋은 스승이다. 나와 눈높이가 같기 때문이다. 또한 형님, 누님들의 혈색이 날로 좋아지고 동작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끝으로 언제나 저를 격려해주시고 이끌어주신 부회장님 이하 형님, 누님.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평생 함께할 오금희이니, 형님, 누님들과의 인연도 앞으로 계속될 것임을 믿습니다. 안 그래도 긴 글이지만 더 길어지지 않도록 이만 줄이겠습니다.
42기를 시작한 2009년 6월 14일 이래 부회장님으로부터 함께 오금희를 배운 형님, 누님들에 비하면 나의 나이는 수십 년 아래의 고작 29살. 함께 수련한 송용실 형님은 종종 내게 말씀하신다.
“그 나이에 토요일 이 시간에 여기 오는 거부터가 이상하다.”
그렇다. 특이하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오금희를 너무나도 좋아한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수련의 기간도, 그 깊이도 일천하지만 앞으로 오금희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생기게 되어 이 수련기를 접하게 될 모든 분들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까하여 내가 왜 오금희를 시작하게 되었고 또 매료되었는지 한번 돌이켜 보고자 한다.
2.오금희를 시작하기까지(사적인 부분으로 쓸데없이 기니깐 건너뛰셔도 됩니다)
얘기를 시작하기 위해 약간의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 아니 재수시절까지 대학입시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놈이 2001년에 대학에 입학하고 자취를 시작하게 되니, 삶의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활동에 어떠한 관심도 없었다. 재수시절까지 했던 공부도 오직 점수만 고득점이면 땡. 그 이상 관심도 없었다. 그나마 있던 삶의 목표도 제대로 된 게 아니었던데다가 그 이후는 아무런 목표도 없었으니 하루가, 한 달이, 1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생활은 망가졌다. 삶의 이유가 없는 삶. 참 지겹고 힘들었다. 정체된 삶에 얽매인 습관은 날이 쌓일수록 더 무겁게 나의 발목을 잡아끌었다. ‘끝낼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게 사실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2007년에 26살의 나이로 입대를 했다. 강원도 삼척에서 23사단 신병교육대대 조교로 복무했는데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어서, 참 즐거웠다. 나의 하루가, 나의 존재가 쓰임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맞아, 나 꽤 쓸 만한 애였지.’하며 ‘정체된 삶’, 그 전의 내가 기억났다. 그리고 기억난 ‘그전의 나’ 보다도 조교로 복무하고 있는 내가 더 맘에 들었다. 드넓은 세상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삶의 즐거움에 눈뜨기 시작하고 새로운 좋은 습관들이 쌓여가고 있었지만 나는 전역 이후의 내가 입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걱정되었다. 나는 나를 지탱해줄, 나를 지켜줄, 좋은 습관(좋은 동반자)를 원했다. 그중에서 체력관리 쪽에서 좋은 습관으로 초기에 염두에 둔 것은 군대에서 배우고 매일 반복하는 “도수체조(맨손체조)”였다. 제대로 된 맨손체조의 꾸준한 실행은 내가 별도의 운동 없이도 건강한 몸을 유지하게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행정반에서 어느 간부가 보고 놓아둔 중앙일보를 보았다.(뉴스검색을 통해 확인해보니 2008년 7월 17일이다. 처음 검색에선 2009년 8월 27일로 나와서 의아했는데 수정입력을 해서 수정입력일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신문을 보고 맘에 드는 기사를 스크랩하곤 했는데 그날 백성호 기자님이 쓴 “신의 화타의 ‘양생술’ … 가뿐한 몸, 고요한 마음”이라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부대에선 국방일보를 구독한다. 그날 이전에도, 이후에도 중앙일보를 부대에서 본 적 없으니 ‘참.....천운이다.’)
“이거다!” 그 기사는 스크랩되었고 나는 2009년 4월 8일 전역 이후 4월 27일(혹은 20일)에 교대 수련장을 방문, 기수가 이미 시작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2009년 6월 14일, 42기로 오금희에 입문하였다.
3.오금희는 해야, 맛이다.
순탄치는 않았다. 첫 동작인 녹참원조를 하기 위해 팔을 들기만 해도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기운이 바뀌는걸 느낄 수 있었지만 나의 하루가 마음에 들지 않고 기분이 다운되어 있을 때는 오히려 일절 오금희를 하지 않았다. 시작조차도. 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오금희를 하지 않는 날보다 하는 날이 길어지기 시작했고(파동의 형태로) 지금은 예비공 3회라도 하지 않는 날은 없다.
오금희는 눈으로 보고서는 그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줄 때도 꼭 따라 해보라는 조건을 단다면 실패는 적을 것이다. ‘부정적인 컨디션일 때의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억지로라도 시작하자. 그러면 시나브로 끝동작이다.
4.오금희를 수련하며 느낀 것들.
㉮오금희를 수련하고 나면 일상생활에서 내 몸의 변화에 민감해진다.
술기운도, 피로함도, 모두 금방 느낀다. 약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쉬어야할 타이밍이 언제인지, 내가 지금하는 활동이 내 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금방금방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다. 나는 2007년 이후 담배를 끊었는데 수개월전 일시 몇 대 폈을 때 담배가 내 몸에 아주! 안 좋다는 것을 바로 느꼈고 이후 전혀 관심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 몸 망가지는 줄 모르고 연일 밤샘에, 음주에, 흡연에... 그런 일은 오금희를 배운 이후에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모르고 그랬을 리는 없다는 거다. 몸이 알아서 지금 내가 하는 활동이 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바로바로 가르쳐 주니깐.
㉯오금희는 순환운동이다.
나는 혈관의 흐름도, 기혈의 흐름도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므로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처음에 예비공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예비공을 2회쯤 할 때부터는 손가락 끝에서 힘찬 맥박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느낌은 없다.(이것은 나의 두뇌가 그 소리를 굳이 내가 인지하지 않도록 차단시켜서 그렇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평소에 심장 두근거리는 소리를 못 듣는 것은 정상적인 박동소리를 두뇌가 차단시켜서 그런 것과 같은 원리이다.) 오금희를 할 때는 근육에 억지힘을 쓰지 않아서 혈관이 이완되고 이완된 혈관으로 심장에 들어오고 나가는 혈액이 증가한다고 여겨진다. 즉, 같은 양의 혈액으로도 순환이 잘되어서 예전 같으면 같은 시간에 몸을 1순환한다면 오금희를 할때는 3순환은 족히 하는 느낌이다.
㉰오금희는 꼭 동기들과 함께.
이점에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나는 평소에도 성실하지는 못했고 2개월의 공백이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분에 넘치는 사랑과 배려를 받았다. 얻어먹은 밥값만 해도 대체 얼마인가?! 그리고 부회장님께서 가장 큰 스승님이시지만(완전 존경합니다!) 바로 옆의 동기들은 어찌 보면 더 좋은 스승이다. 나와 눈높이가 같기 때문이다. 또한 형님, 누님들의 혈색이 날로 좋아지고 동작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끝으로 언제나 저를 격려해주시고 이끌어주신 부회장님 이하 형님, 누님.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평생 함께할 오금희이니, 형님, 누님들과의 인연도 앞으로 계속될 것임을 믿습니다. 안 그래도 긴 글이지만 더 길어지지 않도록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