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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반 수시 모집 : 화, 수, 목, 금, 토요일 가능 시간은 별도 문의
화타오금희

정회원 수련기

정 민 용
2007년 6월 23일(토) 드디어 화타오금희를 시작하다! 김 성기 회장님의 온화하면서도 기품 있는 모습, 김 경린 선생의 유연한 시범모습, 34기로 모인 면면들의 화사한 모습들 등등 그때의 가벼운 흥분이 어제 같이 느껴지는데 벌써 1년의 세월이 흘러 수련기를 쓰게 되었다. 2008년 6월 21일(토) 심사일(審査日)이다! 조금은 들떠 보이는 이 심적 분위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평소 좋아하는 제자(이제는 화타오금희 14기 선배가 되는 박영선 씨)의 소개로 벌써 3년 전에 화타오금희와 김 성기 교수님을 알게 되고 흥미롭게 선후배 관계도 확인하며 얼마나 반가웠던가. 또 수련모습을 직접 견학할 기회(아마 14기의 초급과정 수련이었던 것 같다)도 갖고, 『화타오금지희』책과 웹 사이트도 소개받아 여러 기수 선배들의 수련기를 짬짬이 재미있게 읽기도 했다. 그래서 꼭 한번 수련을 해보리라 결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그것도 정년을 지나,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를 생각할 인생 70(지금은 조금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옛날에는 고려장 나이)을 바라보는 나이에 화타(華陀)를 생각하며 다섯 짐승들의 유희(遊戱)를 젊은 도반(道伴)들과 함께 배우게 되었구나.

사실 나는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던 해(2002년 3월) 1년 안식년(安息年)을 기회로 기공수련(氣功修練)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 지음 선경(SK)에 근무하던 큰 아들이 평소 내 생각을 짐작했던지 선경 회장이었던 최종현 씨의 저술인『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움직여라! (心氣身修練)』이라는 책을 가져와서 흥미 있게 읽었다.
때마침 정초 인사차 내방했던 제자부부와 이야기 중 제자부인이 오랫동안 수련하고 있는 단학선원(丹學仙院)의 사범이 바로 최종현 씨의 기공(丹學) 수련을 처음 지도했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단학선원의 지원(支院)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다음날 바로 등록하고 수련을 시작했다. 이제 7년째에 접어들었다.

새벽 수련을 택했다. 새벽에 일찍 잠이 깨는 나이도 되었고 집 가까이 잘 갖춰진 수련장이 있어서 시간활용과 건강관리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1년간은 토, 일요일만 제외하고 매일, 그 뒤로는 월수금만 새벽 수련을 꾸준히 해왔다. 그리하여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과 노력도 좀 더 구체화, 생활화되고 기공수련과 연관된 주변이야기도 들으며 관련도서, 웹사이트 검색 등을 통해 다양한 자료도 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오금희 수련에 앞서 나는 이미 상당한 기간 기공수련(氣功修練)의 경험을 통해 궁금했던 문제에 대해 미흡한 대로 이러저런 자료도, 또 현실의 흐름도 살필 수 있었다. 기공(氣功)의 비전적(秘傳的) 전통가치(傳統價値)와 자본의 상업주의가치(商業主義價値) 가 만나는 전선(前線)에는 다양한 변형(變形)과 새로운 모색이 화려하게 전개된다. 돈과 도(道)를 함께 섬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실감되기도 했다.

사실상 내가 기공수련을 결심하게 된 동기에는 건강문제 못지않게 동양적 사고체계와 동양학 관련 고전에 등장하는 기(氣)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가능하면 체험도 해 보고 싶다는 바람이 깔려 있었다.
거기에는 서양적 학문의 틀과 사고체계 속에서 느껴온 회의와 오랜 지적 방황이 막연하게 동양적 심성과 가치에의 향수(鄕愁)로 연결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확률/통계학을 강의하면서 자연과학,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인문학에까지 연구방법으로 널리 중요하게 응용되고 있는 추측통계학(推測統計學)을 다루게 되었다. 확률/통계학은 서구학문의 실증주의적 연구방법론의 근간이 되어 있다. 이때 늘 부딪치는 문제가 전체(모집단)와 부분(표본)문제, 연역과 귀납의 추론 및 행동문제, 주관 및 객관적 판단과 가설의 검정문제 등 서양적 사고틀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극단(極端)의 이항대립(二項對立)이 부각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극단적 이항대립이 우리의 뼈저린 근세사와 오버랩 되어 나를 더욱 괴롭혔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심적, 지적 갈등을 느끼고 있던 중 뒤늦게 50대를 전후하여, 우연한 기회에 조선조 말기의 걸출한 학자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AD1803-1877)를 알게 되고 그의 30대 초기저술인『추측록(推測錄)』과『신기통(神氣通)』을 합본한 『기측체의(氣測體義)』라는 책을, 나아가 『기학(氣學)』, 『인정(人政)』등(다행히 모두 국역이 되어 있음) 으로 이어지는 중심 삼부작(三部作) 저서를 읽으며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혜강저서의 독해과정은 다양한 관련 동양서를 정말 맹인 코끼리 살피듯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나를 흥분 시킨 것은 『推測錄』서문의 한 구절이었다.
“하늘을 이어받아 이루어진 것이 인간의 본성[性]이고, 이 본성을 따라 익히는 것이 미룸[推]이며, 미룬 것으로 바르게 재는 것이 헤아림[測] 이다. 미룸과 헤아림(推測)은 예부터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말미암는 대도(大道)다.
( 繼天而成之爲性, 率性而習之爲推, 因推而量宜爲測, 推測之門 自古蒸民 所共由之大道也.)“

추측통계학(推測統計學)의 추측(推測)은 막연히 어떤 사(事)와 물(物)을 어림짐작하는 것으로 통상 이해되는 말이지만 통계학에서는 논리적 틀을 갖춰 부분을 통해 전체를 추론(推論)하는 것이다. 혜강은 추측(推測)을 미룸(推)과 헤아림(測)으로 이해하여 솔성(率性)과 계천(繼天)에 연결시키고 있다.

아마도 『중용(中庸)』의 첫 구절
“하늘이 命하신 것을 性이라 이르고, 性을 따름을 道라 이르고, 道를 품절(品節)해 놓음을 敎라 이른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와 대응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추(推)와 측(測)을 도(道)와 교(敎)에 대응하여 성(性)과 천명(天命)을 지향하는 학문적 탐구의 지향성(志向性)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당연(當然)과 자연(自然), 이판(理判)과 사판(事判), 이(理)와 기(氣)의 동서소통(東西疏通)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무슨 논문 쓰는 꼴이 되었다 싶내요. 좀 멋쩍게 되었다는 기분도 듭니다. 화타오금희 수련에 임했던 저간의 내 소회(所懷)를 말하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버릇이 되어버린 잔소리꾼의 행투가 드러나 버린 것 같습니다.
요지는 조선조 말 외세의 간섭 없이, 동양적 전통가치를 기반으로 서구문물을 수용하는, 진지한 모색의 과정에서 혜강이 취한, 『기학(氣學)』의 체계에 필이 꽂히면서 기(氣)와 기공수련(氣功修練)에 관심이 커졌다는 것이다. 『氣測體義』는 중국에서도 출판이 된 혜강의 인식론(認識論)과 연구방법론(硏究方法論)인 셈이고 이를 기반으로 50대(代)에『기학(氣學)』이라는 철학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그래서 바로 이 기(氣)에 대한 천착(穿鑿)의 갈증이 나를 기공수련으로 이끌었다.

이순(耳順)을 전후한 시기에 나는 한 세기 한 밀레니엄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이 시대는 물리적 시점의 변환이상으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나에게도 그것은 차원변동, 패러다임의 전환 등으로 닦아왔다. 그것은 상징적으로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의 문물(文物)과 가치관(價値觀)의 교차(交叉)와 단절(斷絶)로 점철된 전세(前世)의 아픔과 한(恨)을 더욱 절감하게 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깝게는 우리의 최근세사 한 세기의 질곡(桎梏)과 민족 분단, 그리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그 여파(餘波)의 고통, 멀게는 밀레니엄을 계기로 되돌아보는 서구문물의 충격과 비서구적 가치와 원리의 재조명, 뉴밀레니엄 동서양 문화의 통섭(統攝), 2-3천년을 조감(鳥瞰)하는 인류적 성찰(省察)의 요청, 지구촌(地球村) 미래구축의 재편(再編) 과정에서 느끼는 창조적 자립(自立)의 기대(期待)와 불안(不安)의 소용돌이이다.

이제 화타 오금희 수련에 임하면서 왜 가벼운 흥분을 느끼는 분위기였는지 다시 처음 이야기로 되돌아가기로 한다. 내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감성 쪽으로 흐르는지 모르겠다.

이제 드디어 21세기의 기(氣)가 2-3세기의 기(氣)를 찾아 만남의 길을 나선다는 묘한 흥분, 오늘날 착잡한 21세기에 부활(復活)하는 기(氣)가 2-3세기 중국 난세의 신의(神醫) 화타(華陀)를 만나는, 시공(時空)을 넘나드는, 조금은 거창한 환상적 탐구의 상상력이 발동했는지 모른다. 이것이 아마도 가벼운 흥분의, 겸연쩍은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화타(華陀, ?-208) 본명은 부(敷), 자(字)는 원화(元化)이다. 지금의 안후이성[安徽省] 보셴[毫縣]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한말(漢末)의 전설적인 명의(名醫), 마비산(麻沸散)과 외과(外科)수술(전신마취, 위장 절제수술) 조조(曹操)의 두통을 침구(鍼灸)로 치료 (그리고 조조 부하에게 피살(被殺)), 5가지 동물의 동작모습을 본떠 양생 도인술(養生 導引術) 오금희(五禽戱) 창안(創案) 등등으로 알려진다. 분명 화타는 중국정사에 기록된 인물이다. 1800년 전 그러니까 거의 두 밀레니엄의 세월을 사이하고 있다. 김성기 회장님은 화타 오금희 79대 전수자(후계자)이다. 구체적 실존인물을 매개로 두 밀레니엄, 저쪽과 이쪽의 시공(時空)을 소통(疏通)하고, 통섭(統攝)할 실마리를 그려볼 수는 없는 것일까?

김성기 회장님은 어느 술자리에서 내가 화타를 닮았다고 은근하게 말했다. 작은 체구에 자글자글 주름살, 늙은이 모습이 오버랩 되어 그런 감을 주었는가? 화타가 오늘에 환생한 건가 내가 화타의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건가 화타의 환생(還生)과 나의 전생(前生)이 지금 여기서 교차되는 것인가. 환상의 꿈은 깨고 새롭게 꿈을 꾸는 계기(契機)가 되어 지이다.
단절(斷絶)의 시대, 불확실성(不確實性)의 시대, 역설(逆說)의 시대. 상실(喪失)의 시대 등을 되뇌며 현존인류는 새로운 통합(統合)과 원융(圓融) 모색의 21세기, 그리고 새 밀레니엄을 맞았다.
화타의 시대는 중국을 중심한 동북아(東北亞) 역사로 보면 400년 통 일기의 치세(治世)(한나라)로부터 400년 분열과 모색의 난세(亂世)(위진 남북조)로 바뀌는 전환의 시대였다. 마치 오늘, 세기와 밀레니엄이 바뀌면서 패러다임의 변환을 말하는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편작(扁鵲)이란 인물로 상징되어 정착(定着)되고, 화타이후로도 2000년 가까이 도도한 생명력을 유지해온 동양의학의 사고체계와 가치차원에서 보면 화타의 외과수술은 많은 도전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오늘처럼 세계적으로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의 소통(疏通)과 통섭(通涉)이 갈급(渴急)되고 자연과 사회적 환경의 피폐로부터의 탈피와 인류적 건강이 절실해진 이 시대는 화타의 외과의술과 양생 도인술이 지향했던 본연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는 건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건강이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 )“
최근에는 영적(靈的) 건강까지도 포함하는 흐름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심신(心身)의 조화(調和)와 균형(均衡)의 유지일 것이다.

정신과 물질을 지나치게 이원적(二元的)으로 대립시키고 물질차원이 강조되면서 전개되어 온 근대 서구적 가치와 신념체계의 자기성찰과 새로운 모색이 최근 다방면에서 활발하지만 그중 가장 실체적으로 느껴지는 영역이 보완?대체 의학으로 통칭되는 의학 분야가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의 난세가 화타를 더욱 그립게 하는지 모른다.

“병이 몸 안에 ‘덩어리가 되어’ 침(針)으로도 약(藥)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경우는 ‘몸을 갈라 쪼개어’ 즉 절개하여 치료한다는 생각이 외과적 방법이다. 이때 마비산(痲痺散)을 먹이면 취하여 죽은 상태가 된다. 병이 장(臟) 속에 있으면 장을 잘라내어 씻은 뒤에, 배를 꿰매고 고약을 바른다, 통증도 없고 모르는 사이에 치료가 끝난다. 조직 그 자체에서 병을 찾는 고체병리설(固體病理說)이다.”
이것은 중국 전통의학(傳統醫學)의 보전(寶典)으로 전승되어 오늘날에도 절대적 권위를 유지하고 있는 『황제내경(黃帝內經)』「소문(素問)」과 「영추(靈樞)」의 액체병리설(液體病理說)과는 완전히 달라 서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그래서 화타의 해부 생리적 의학체계는 그 후대에도 완전히 배제되어 왔다. 나는 철학이 아닌 경험적 실천학으로서 『황제내경』이 두 밀레니엄을 초월하여 권위를 유지한다는 사실이 신비스럽기만 하다. 사실 화타오금희는 『황제내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관계는 화타시대의 역전(逆轉)을 연상하게 한다.
세계의학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 서양의학은 최근 그 체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의 의학체계를 근간으로 하면서 동양의학을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비서구권의 여타 전승의학과 더불어 보완?대체의학(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CAM )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래서 CAM이란 명칭은 그 범위가 넓고, 내용이 모호하지만 통상 심신의학(心身醫學)(Mind-body medicine, 혹은psychosomatic medicine)이라는 명칭으로 그 특징이 비교적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현대 서양의학은 세균학(細菌學)의 발달 및 예방접종의 개발에 의하여 급성 전염병을 퇴치하는데 공헌하였고, 해부학(解剖學) 및 조직학(組織學)의 발달 등으로 고도의 외과의술(外科醫術)을 발달시켜 응급환자를 매우 적절하게 치료하고, 손상된 고관절(股關節)이나 무릎을 효과적으로 대체하며, 성형수술과 재활수술을 훌륭하게 해내고, 그리고 호르몬 결핍을 진단하고 교정해주는데 효과적이다.

한편 그 한계점은 만성 퇴행성(慢性 退行性) 질환(疾患)은 잘 치료하지 못하고, 마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정신질환을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하며, 현대의학에서 행하는 수술, 약물 등은 항상 크고 작은 부작용을 동반하고, 현대의학은 병의 예방(豫防)에는 등한(等閑))한 채 병의 치료(治療)에만 치중하기 때문에 치료비가 많이 든다. 치미병(治未病)을 최고의 이상으로 했던 전인적(全人的) 예방의학(豫防醫學)으로서 동양의학의 부활은 이러한 배경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현대의 의료체계와 제도는 자본주의적 논리와 사고체계의 흐름 속에서 그 틀이 형성되고 상호의존 하며 전개되어온 면이 있다.

심신의학이란 저간의 사정을 반영한 서양의학의 보완이라는 면과 전통동양의학의 부활이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고 그 기본사고의 틀에 있어서 상당한 괴리가 있기 때문에 쉽게 심신의학이라 하지만 그 실체를 서구적 논리와 과학적 틀로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동양의 전통의학이 거의 절대적으로 따르는 기(氣)의 문제가 될 것이다. 여기서 음양오행, 경락과 경혈, 태극, 양의, 사상, 팔괘 등 전통적 동양학의 핵심개념들이 파생된다.

뭐라 변명해도 지루한 이야기가 된 샘이지만 오금희와 기(氣)의 문제에 이제야 당도했다. 50년대 중국의 공산정권하에서, 오랜 역사를 통해 끊임없는 상호교류와 갈등 속에서 형성된 다양한 문파(門派) 즉 유불도가(儒?佛?道家), 의가(醫家), 무가(武家) 등의 양생법(養生法)들이 기공(氣功)이라는 명칭으로 통일 되어 ‘기(氣)에 공(功)을 들인다’ 는 의미의 현대적 용어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양생법(養生法)과 기공이 지향하고 근거하는 핵심사상은 첫째, 인간의 일상생활이 그가 속해 있는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철학적 원리와 둘째, 인간의 생명력(生命力)인 기를 기르고 그 순환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는 의학적 원리가 불가분의 관계로 연계된 통합체계일 것이다.
17-18 세기를 거쳐 서양 근대 교학체계, 특히 학문체계가 대폭 전면적으로 동양의 전통 교학체계를 대체(代替)하여 정착(定着)되면서 서구적 학문분류 체계에 따라 동양적 철학원리는 인문학으로, 의학적 원리는 자연과학의 응용이라는 별개의 영역으로 분류, 유리(遊離)되면서 마침내는 동양의 의학도 철학도 반신불수의 기형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본래 둘이며 하나이고, 하나이며 둘인 (不一而不二) 원리와 응용으로서 동양철학과 한의학의 상보와 모순이 신비와 환상으로, 미신적 폄하의 자기비하로 흘러 고유의 기능을 상실하며 박제화(剝製化) 된 것은 아닌가?

만약 서구적 과학의 기반이 되어온 요소론(要素論), 환원론(還元論), 기계론(機械論)적 사고와 세계관(世界觀)에 대한 자기성찰에 의해 시스템적 사고, 학제적 탐구, 유기체적 모색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새롭게 조명(照明)되고 재음미되어 부활될 기회는 더욱 지체(遲滯)되었을지도 모른다.

동양학을, 이론과 격식이 강조되는 엄밀학(嚴密學) 으로서 강단동양학(講壇東洋學)과 생활 속에 살아 숨 쉬는 강호동양학(江湖東洋學)으로 구분하면서, 천지인(天地人) 삼재사상(三才思想)과 관련하여, 강호파(江湖派)의 3대 과목(科目)으로, 사주추명학(四柱推命學)(天; 時間次元),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地: 空間次元), 한의학(韓醫學)(人: 人間次元)을 들며 그 복권과 부활의 모습에 대한 저간의 사정을 다루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이러한 세과목의 공통배경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氣)문제일 것이다. 기공수련을 통해 기감(氣感)이나 자율진동(自律振動)을 몸으로 나도 느껴보았다. 그러나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근대 서구과학의 요구에 합치되는 기(氣)의 객관적 관찰이나 측정은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기의 본질을 말로 표현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동북아 세 나라 중국, 한국, 일본의 생활언어에는 기(氣)자(字)가 들어가는 용어가 수도 없이 많고, 요긴하게 쓰이고 있어서 이들 용어를 빼버리면 의사소통에 지장을 받을 정도이고, 강단, 강호 동양학의 존립근거가 무너져 버릴 것이다. 기를 바탕으로 한 사고 체계는 수천 년 역사를 통해 다양한 변화의 시공을 수용하면서 풍부한 내용을 함축해 왔기 때문이다.
한 철학자(『동양철학과 한의학』「기에 대한 철학적 이해」(김 교빈))의 연구에 의하면 기 개념은 다음과 같은 특질을 갖는다고 한다.

첫째, 기(氣) 개념 속에 개별성(個別性)과 보편성(普遍性)의 통일을 지향하는 사고가 들어있다.
둘째, 기(氣) 개념 속에 물질성(物質性)과 비물질성(非物質性)의 통일성을 지향하는 사고가, 들어 있다. 이 관점은 구체성(具體性)과 추상성(抽象性)의 통일을 추구하는 사고이기도 하다.
셋째, 감각되지 않는 객관(客觀) 실체(實體)이면서 끊임없이 운동 변화하는 존재(存在)로 파악된다는 점

그 깊은 성격을 천착하는 문제는 내가 다룰 문제도 그럴 개재도 아니지만 혜강의 『기학(氣學)』은 이러한 기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서 동서의 소통을 통한 통섭의 학문체계를 모색했다고 생각된다. 강단동양학적 측면에서 본 것이리라.
강호동양학의 감각으로 기(氣)를 비유해 본다면 기(氣)는 바람(風) 같고 기(氣)는 물(水)같다. 기는 바람처럼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것이어서 말로 설명이 안 되면서, 물처럼 보이고 만져지는 듯 다룬다. 그래서 기는 풍수(風水)이다.
사람은 氣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혼백(魂魄)이며 이것들은 氣가 다할 때까지 존속(存續)하다가 다하게 되면 혼(魂)은 양(陽)이니 하늘(天)로 돌아가고 백(魄)은 음(陰)이니 땅(地)으로 돌아가는 것을 죽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때 魂은 天, 魄은 地로 돌아간다는 것이니 天은 風, 地는 水로 대비하여 혼백(魂魄), 천지(天地), 풍수(風水)의 대응관계를 상정(想定)해 볼 수 있다. 동양인의 사생관(死生觀)과 제사의식(祭祀儀式)의 배경과 연결되고 이는 풍수지리(風水地理)로 결부된다.
동양의학은 기(氣)의 울체(鬱滯)가 여러 가지 병변(病變; 병의 변화양식)을 초래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유체(流體)모델(앞에서 말한 액체병리설(液體病理說))의 도입이 질병관(疾病觀)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명백하다.
원래 바람(風)은 병인론(病因論)과 연관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질병을 가져오는 실재(實在 entity)라고 하는 관념이 강했다. 바람의 이러한 측면까지도 이어 받은 ‘氣’는 신체 밖에서 침입하는 이물(異物)임과 동시에 생체 내를 환류(還流)하는 일종의 에너지이기도 하다는 이중성(二重性)을 가지기에 이른다. 고대 중국인의 사고에서 일원적(一元的) ‘氣’라는 연속체가 분절화(分節化)되어 갖가지 ‘氣’, 즉 실체(實體)를 같이 하면서도 기능(機能)을 달리하는 ‘氣’가 되었음에 틀림없다.(『몸으로 본 중국사상』 가노우 요시미츠(加納喜光) 134쪽)

반풍수 집안 망친다고 수련기 쓰다가 오금희 망칠라. 이제 사설을 접고 몸으로 느낀 체험을 살펴보아야겠다. 형법공해(形法功解)의 단계에서 형(形)을 통해 오금희의 깊은 체득(法功解)을 강조한시는 사부님의 깊은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닐까 저어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편의상 초급과정, 중급과정으로 나눠서 살피고, 마지막으로 전반적인 느낌을 적어보기로 하련다.
눈을 감지 말라. 무리하지 말라, 호흡에 신경 쓰지 말라 등 닦달하지 않고 편안한 기분을 주려는 수련 분위기가 그래도 포근했다. 그러나 초급과정 7개월은 나 같은 몸치에게는 따라 하기가 그리 수월치 않았다. 젊은 도반(道伴)들의 교정을 많이 받으며 힘겹게 따라 한 적이 많았다. 안마동작 18개 동작과 수공(收功)의 고치(叩齒)를 뺀 84동작이 8절(節)로 나뉘어 7개월 동안 수련하는 과정이다. 생소한 한자가 많은 사언절구(四言絶句)의 동작명칭이 인상적이고 매 동작에 거의 다섯 동물이 등장하고 이 동물들의 동작이 인체의 오장육부(五臟六腑)와 대응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전체 과정의 동작을 빨리 조감해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금희는 연결된 일관 동작이 유기적으로 흐르는 것이 특징으로 보였다. 그 동안 다른 기공수련에서 도인체조 동작과 장기(臟器)의 연결성을 말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지만 늘 아쉬웠던 점은 전체적 맥락의 연결 없이 단편적이고, 유기적 흐름이 없이 모자이크식 설명에 그쳐왔다는 점이다. 물론 한의학적 시술수준의 음양오행과 경락, 경혈의 전문적 지식과 틀까지는 별도의 노력과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도인체조의 수련수준에 걸 맞는 정도 체계적 상식을 늘 아쉬워 해왔던 터이고 도반들 중에는 한의학적 배경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었던 것이 이러한 바람을 촉발했는지도 모르겠다.
섬세, 명쾌하고 분석적인 수련 및 지도방법보다 애매한 듯, 은근한 긴장감의 도입을 통해 전체의 흐름을 체득하게 함으로써 종합감각을 강조하고 지향하는 사부의 의도를 차츰 알아차렸다. 그에 따르려고 애썼지만 공학계에 오래 몸담아 오면서 나도 모르게 체질화된 나지신의 분석적 버릇이나 사고습벽을 다시금 살피며 반성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84개 동작의 오금희 수련 중 내내, 나는 상당히 오랫동안 강의해왔던 동작?시간연구(motion and time study)중의 서브릭(Therblig)이란 동작분석방법이, 머릿속을 맴돌기도 했다.
산업현장에서 서구적 사고방법, 즉 요소환원주의와 기계론적 사고방식을 잘 드러내주는 실용적, 분석적 사고체계의 좋은 사례가 될 듯하다. 차원은 다르지만 화타오금희와 대비시켜보는 것도 재미있어 보인다.
길브레스(Gilbreth)라는 미국의 건축기사가 인간(노동자)의 다양한 작업동작을 18개의 요소동작으로 분해해서 일반적인 작업동작의 특징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고안한 체계로 자기이름의 알파벳 철자를 역순으로 써서 서브릭(Therblig)이라 명명했다. 다양하고 복잡한 사물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사물을 구성하는 궁극의 요소를 찾아내고 이들 요소를 조합하여 다시 전체를 알아가는 방법이다. 이 세상의 다양한 각양각색의 물질을 100개 남짓의 원소(元素)(atom)로 이해하는 현대 물리학의 틀과 같다.
서브릭은 임의의 작업동작을 18가지의 동작요소(動作要素)(動素)의 조합으로 표현하고 그 동소(動素)의 성격을 1) 부가가치(附加價値)를 생산하는 동소, 2) 원가(原價)를 높일 뿐인 동소, 3) 불가피한 시간지연(時間遲延) 동소, 4) 피할 수 있는 지연동소 등으로 분류하여 가장 생산적인 작업동작을 고안하고 작업소요시간을 단축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표준작업시간의 설정, 필요한 인력과 장비의 소요량 산정을 바탕으로 생산계획 수립에 긴요한 업무가 된다.
오금희 수련 중급과정에서 동작의 시점과 종점, 중심(重心)의 이동, 시선의 흐름 등은 서브릭과는 시각과 의도가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섬세한 동작의 흐름을 이해하는 틀에서는 유사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물론 오금희가 궁극적으로 심기신(心氣身), 정기신(精氣神)의 유기적 조화를 지향하여 주객(主客)의 소통과 통합이 전제라면, 서브릭 같은 기법(技法)은 인간의 작업동작이라는 신체적 동작의 객관?합리에 탐닉된 실용적 접근일 것이다.
오금희 동작의 전체적 틀과 흐름에 있어 음양오행과 해부 생리적 이해에 대한 아쉬움은 초급반 시작 얼마 후부터 오행의 상생상극도(相生相剋圖)에 매주 배우는 동작을 대비해보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다.

예비공(豫備功)의 녹참원조(鹿站遠眺), 웅부신요(熊俯身腰), 백원헌과(白猿獻果), 조전쌍시(鳥展雙翅), 호송견배(虎?肩背)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동작을 그림에 따라 추적해 보는 것이었다. 예비공은 전형적인 오행구도인 것 같다.위의 그림에서 원(猿)(脾胃, 土)을 중앙에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초급수련 중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면 오금희 동작을 익혀가면서 자꾸만 무예(武)와 춤(舞)의 양면이 무의식중에 교차되어 부각된다는 점이다. 부드럽고 유연한 동작의 흐름이 춤으로, 공격과 수비의 연결을 연상하게 하는 중심이동의 강조가 무예로 부각되었는지 모르겠다.
하기는 오금희의 기원(『화타오금지희 도해』29쪽)에서 “사람들은 관절을 이용한 춤으로 질병을 고치고 다른 사람에게도 춤으로 병을 고치도록 하였다. 이를 대무(大舞)라 한다.” 고 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단순한 신체적 움직임에 안마(按摩), 행기(行氣), 맑음 들어 마시기, 탁함 내뱉기 등이 부가되면서 양생술(養生術)의 내용이 풍부해지고 치료술로 까지 발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니 오금희가 기공과 무술의 원류가 되는 운동이다는 말의 타당성에 수긍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불인(不仁)이라는 용어의 맥락적 이해의 묘미에 대한 깨달음이다. 사실 나는 어느 때부턴가 인(仁)과 관련된 어휘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상적 의미는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행동하는 일로 국어사전에 정의한다. 그러나 인(仁)이라 하면 아무래도 공자(孔子)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자가 주장한 도덕이념, 또는 정치이념, 윤리적인 모든 덕(德)의 기초라는 복잡한 내용이 되어 결코 쉽지 않은 철학적 의미의 용어가 되어버린다. 생물학적 용어로 ‘씨에서 껍질을 벗긴 배(胚)와 배젖’으로 살구 씨(seed)를 행인(杏仁)이라 하고, 세포핵안의 단백질과 리보 핵산으로 이루어진 핵소체(核小體)를 인(仁)이라 한다. 이는 생명의 에센스(씨)이다. 인공강우에서는 구름이 빗방울로 응결하는 반응을 씨딩(seeding)이라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 노인들은 일반적으로 수족의 거동이 둔해져서 기거동작이 경직되거나 힘들어진다. 나도 그런 것을 느끼면서 기공수련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하게 한의학에서 수족마비위불인(手足痲痺爲不仁)이란 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수족마비가 불인(不仁)이면 수족마비의 경직이 풀리고 유연해지면 그것이 인(仁)이 되는 샘이다. 반어법을 통한 인(仁)의 이해인 샘이다. 마비(痲痺)가 폐쇄(閉鎖)와 경직(硬直)으로 이어져 불인(不仁)이라면, 소통(疏通)은 개방(開放)과 유연(柔軟)으로 인(仁)에의 진입인 것인가?
마음(心)의 개방과 유연은 기혈(氣血)의 원활한 소통과 흐름을 통해 정(精)과 조화되어(心氣血精) 인(仁)에의 소망을 지향한다.
어느 날 김 사부님은 천지불인(天地不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또 불인(不仁)이다. 한의학적 불인에 빠져있던 나에게 이 불인은 신선한 자극이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노자의 『도덕경(道德經)』5장의 하늘과 땅은 편애(仁)하지 않습니다 (天地不仁) 였다. 이는 공자의 인(仁)의 강조에 대한 노자의 비판과 연결되어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한 생각이지만 궁극은 참된 무위(無爲)의 인(仁)이라 볼 수도 있다.
무(武)와 무(舞)의 소통 , 수족마비(불인)의 경직을 풀어가는 기공으로서 오금희의 체감(體感)이 초급과정에서 큰 소득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의 구체적 체득(體得)은 또 다른 숙제이겠지만 말이다. 34기 도반 중에는 서예(書藝)와 회화(繪畵)비평의 중진들이 포진하고 있다. 기(氣)로 말하면 기운(氣韻)(글이나 글씨, 그림 따위에서 느껴지는 생동감과 아담한 멋)의 달인(達人)들인 샘인데 오금희 수련을 계기로 무도(武道)와 예도(藝道)의 소통을 느끼고 터득하는 자연스런 기회가 이분들을 통해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중급수련 과정으로 넘어가 보련다.
8절 84개 오금희 동작과 안마 18동작을 모두 마쳤다. 아직은 버벅대고 어색하지만 전체의 흐름에 대한 감각은 익힌 샘이다. 중급이 되면서 수련장이 불교 법당으로 바뀌고 김 사부님의 수련지도법이 토의식으로 바뀌었다.
오금희 본부의 유도가적(儒?道家的) 분위기와 불당(佛堂)의 불가적(佛家的) 분위기의 대비가 인상적이고 유불도(儒佛道) 원융(圓融)의 세월들이 아련히 그립다. 이를 풍류(風流)라 했던가? 토의식 수련법은 일련의 오금희 동작을 (1) 동작의 시점과 종점, (2) 동작의 흐름에 따른 시선이동, (3) 동작의 흐름에 따른 무게중심의 이동이라는 시각에서 분석하면서 일련 동작의 흐름을 조별로 토의하고 시연(試演)하는 방법이다. 동일한 일련동작이 여러 시각에서 반복 시연되는 중에 애매하거나 불분명했던 동작이 확실해지고 반복을 통한 재음미와 체득의 묘미를 만끽하면서 몸치의 미흡(未洽)을 보완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화타 오금희의 동작 전체를 조감하게 되고 오행의 상생상극을 그려보던 초급과정이후 14경맥(經脈)(12經脈과 임?독맥(任?督脈))의 성격과 오금희 동작을 연결하고 싶은 욕심이 동했다.
육장(六臟)과 육부(六腑), 음경맥(陰經脈)과 양경맥(陽經脈), 복부(腹部)의 임맥(任脈), 등(背) 부위의 독맥(督脈), 손발(手足)의 등과 바닥 , 태음(太陰), 소음(少陰), 궐음(厥陰), 양명(陽明), 태양(太陽), 소양(少陽) 등의 개념이 조합되어 구성되는 12경맥(經脈)의 경혈(經穴)과 그 흐름의 특성을 아래 그림과 같이 정리해 놓고 오금희 관련 동작을 요모조모로 비교하고 상호관계를 살피는 재미가 생겼다.





이때 마침 『한의학(韓醫學)과 러셀 역설(逆說) 해의』(김상일 저)와 양리(楊力)의 저서, 『周易과 中國醫學』(1,2,3)을 입수하게 되어 시야를 넓히고 초점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과 깨우침을 얻었다.

오금희 동작의 유연한 흐름과 임?독맥을 중추로 한 12경맥의 흐름을 대비하며 구체적 동작의 성격을 그려보는 것은 두고두고 음미해 볼만 하다고 생각된다. 몸동작과 안마로 보이고 만져지는 체표(體表)의 경혈(經穴)이 보이지 않는 6장6부와 연결되는 기(氣)소통의 길목이고 작용점(作用點)이라는 신기한 믿음이 두 밀레니엄이상 믿어져 왔고 오늘도 동양의학의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왕 나왔으니 신체부위와 12경맥 흐름의 관계를 정리한 자료를 옮겨와 앞으로 도반들 상호간 체감(體感)과 체득(體得)의 교류에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아직 체험으로 확신할 수는 없고, 더욱 진지한 오금희 수련과 도반들의 활발한 소통과 교류를 통해 형(形)과 법공해(法功解)가 관통되는 장(場)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유형(有形)과 무형(無形), 가시(可視)와 비가시(非可視)의 연결인가?
일본의 피터 드러커로 통하는 지식경영의 대가 노나카 이쿠지로(野中郁次郞·71)가 '지식창조'의 실천 시스템을 "암묵지(暗默知)와 형식지(形式知)의 소용돌이치는 상호작용"으로 개념화 한 것이 떠오른다. 여기서 암묵지란 표현하기 힘든 주관적·직관적 지식, 형식지는 표현할 수 있는 체계적·논리적 지식을 말한다. 경혈과 5장6부의 상호작용을 그려 본다.

중급 수련 중 또 하나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경혈은 있으나 배당된 장기(臟器)가 없는 삼초(三焦), 심포(心包) 등 경맥(經脈)이었다. 그중 특히 삼초는 상초(上焦), 중초(中焦), 하초(下焦)를 총괄하는 기능적(機能的)(fuctional) 경맥(經脈)이라는 것이다. 해부생리학적 시각으로 설명이 안 되는 특이점(特異點)이다. 상초가 심폐(心肺)를, 중초가 위장(胃腸)과 비장(脾臟)을, 하초가 간장(肝腸), 신장(腎臟), 대소장(大小腸), 방광(膀胱)과 관계된다면 삼초의 역할은 서양식으로 보아 호흡?순환기, 소화기, 배설기를 총괄한다는 것으로 부분이면서 전체를 총괄한다는 것이 된다. 부분이면서 전체이고 전체이면서 부분이다. 그럼 기능적이란 말은 외형상 부분이면서 전체적 맥락, 즉 그때그때 6장6부의 상호관계 속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기능(機能)이란 특정의 고정된 역할이 아니라 마치 수학의 함수(函數)(fuction)와 같이 함수식의 구조 여하, 즉 맥락에 따라 함수 값이, 그 기능이 결정되는 것인가?

동양의학의 기틀에는 이러한 삼초의 경우 말고도 부분과 전체를 극단적으로 양극화하지 않고 상보적 내지는 상승적으로 이해하는 구조가 두드러진 특질로 보인다. 전체는 부분의 합이다. 그러므로 전체를 부분으로 분리하여 탐구하고 그 결과를 모으면 전체를 인식할 수 있다. 소위 서구적 탐구방법의 중요한 기본원리인 요소환원주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고방법이다.
4절 대붕전시(大鵬殿翅)의 원리삼초(猿理三焦) (원숭이가 삼초를 다스린다)는 음양오행의 상생상극에서 중앙 토의 원숭이가 구성 부분이면서 전체를 통어하는 조절자이고, 12경맥의 부분으로 전체를 통어하는 삼초와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오금희의 수련동작에는 예비공 마무리의 조식(調息)동작이나 전신수세(轉身收勢)동작, 원서좌우비(猿舒左?右臂)동작 등에 다섯 손가락을 펴고 접는 동작이 많고, 4節 대붕전시, 5節 공작개병(孔雀開屛), 6節 희작등지(喜鵲登枝) 등에는 발바닥, 발등으로 지면과 접촉시 발가락을 고루 자극하도록 배려하는 동작이 고루 배분되어 있다. 손가락, 발가락을 오장육부에 대응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시와 비가시의 연결이며 부분이 전체를 포함하는 고려 수지침(手指針)아나 이침(耳針)을 생각하면 되리라.
또 8절 수공(수공)동작에서는 무척 어렵고 민망스러운 혀 놀리는 동작이 많은데 처음에는 왜 수공에 혀가 동원 되는가 했는데 혀 역시 부분이면서 전체를 나타내는 부위라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임맥과 독맥을 연결하는 접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수공에 아주 적절한 동작이리라 생각이 들었다. 안마동작에도 삼음교(三陰交)처럼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연상케 하는 한의학적 기틀이 여기저기 느껴졌다.
어쨌든 오금희는 막연하게 느껴왔던 한의학적 사고틀과 연관된 기공 동작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경혈(經穴)의 명칭과 관련하여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다. 이상하게도 경혈의 명칭에는 풍수지리학의 용어나 개념체계와 연관된 용어가 대단히 많다고 한다. 기(氣)가 바람(風)을 타면 흩어져 버리고 물(水)에 닿으면 머문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자(葬者)가 생기(生氣)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법술(法術)은 바람과 물 즉 풍수(風水)라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바람과 물 이기(二氣)가 융합해야 산(山)이 되고 물(水)이 되는 것이니 산수(山水)를 음양(陰陽)이라 일컫는다. 산수가 상보(相補)해야 음양이 화(和)하고 화해야 충기(沖氣)된다. 또 산수를 체(體)와 용(用), 혹은 형체(形體)와 혈맥(血脈)으로 대비시켰다는 것이다. 대개 산은 사람의 형체와 같고 물는 사람의 혈맥과 같은 것으로 사람에 있어 형체의 생장고영(生長枯榮)은 모두 혈맥으로 비롯된다는 것이다. 혈맥이 사람의 몸속을 흘러다님에 있어서 그 도수(度數)가 순조로우면 그 사람은 반드시 건강하고 튼튼할 것이요, 그렇지 않고 실절(失節)하게 되면 그 사람은 병들어 망함이 자연의 이치다고 보았다”. (최창조, 『한국의 풍수사상』 여기가 바로 풍수지리와 경혈(經穴) 만나는 접점인 듯하다.
앞에서 양생법(養生法)과 기공(氣功)이 지향하는 핵심사상은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 조화한다는 철학적 원리와 인간의 생명력(生命力)인 기(氣)를 기르고 그 순환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는 의학적 원리가 깔려있다고 생각 했다. 이를 다른 시각에서 보면 자연의 산수(山水)든 지구적 차원이든 우주적 차원이든 거시적 환경의 문제와 인체와 그 생명력이라는 미시적 차원의 관계이다. 그래서 동양사회는 전통적으로 환경의 대우주(大宇宙)와 이와 상응, 조화되는 인간을 소우주(小宇宙)로 유비(類比)하여 세계를 인식하는 사고방식을 오랫동안 견지해왔다.
풍광(風光)과 산수(山水)가 수려한 도원(桃園)에서 오금희를 수련한다고 상상(想像)하는 것은 호사스런 풍류라 할지라도 대우주의 소우주의 어우러짐을 그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꿈일 수 있다. 허황한 꿈을 깨고 거시(巨示)와 미시(微示)의 만남, 환경과 인간의 동적 조화와 화합을 염원하는 참된 꿈을 꾸자고 시대는 인류에게 호소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일년간의 수련과정을 통해 느낀 점을 종합하면서 수련기를 마무리하고 싶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장황한 글이 되어버렸다. 어찌 보면 가볍게 넘어 갈수도 있는 소재를 지나치게 확대, 발산시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금희 수련과정 1년이, 과거 5-6년간 산만하게 수집해 왔던 기와 기공관련 자료의 재음미와 유기적 이해의 모색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시류(時流)를 타지 않는 김 사부님의 기품(氣稟) 있는 지도와 수련장 분위기, 정말 운 좋게 만나진 34기 도반(道伴)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나 같은 노털에게는 다시없는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의도적으로 팀을 짜기라도 한 것처럼 다양한 특성들이 묘하게 엮어졌다. 남녀가 각각 5명, 연령대도 넓게 3,4,5,6 십대가 고루, 내내 접착제 역할을 한 잉꼬부부 한 쌍, 심신의학의 재야(在野) 달인 남녀 두 분, 예술 비평의 달인 남녀 두 분, 독실한 여성 크리스챤 한 분, 학구파 남성 회사원 한분, 속이 꽉 찬 여한의사 한분, 60대 후반의 정년 교직자인 나 이렇게 10명이다. 노털 몸치가 의지할만한 막강 성원(成員)이 아닐 수 없었다. 나온 김에 여기서 12기 정 천영, 노 선미 선배부부와 14기 박 영선(선배요 제자)의 보살핌에 감사하며 오래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의성 화타의 마비산(痲痺散)을 기리는 수련후의 주연(酒宴)은 1년 수련기간을 통해 구김 없고 소탈한 대화의 향연으로 오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이를 못 잊어 고급반 합동진급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오금희라는 기공수련을 통해 나는 가시(可視)와 비가시(非可視), 부분(部分)과 전체(全體), 거시(巨示)와 미시(微示)의 창조적 소통과 흐름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내가 ‘미립보’라 하는 창조와 보람의 동아리가 오금희 도반들의 모습 속에 오버랩 된다.

내가 이글을 쓰는 동안 내내 내 머리 속을 맴돌던 말이 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많은 일화를 남긴 아일랜드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달변, 궤변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AD18656/7-1950/11)의 묘비명(墓碑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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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최종현,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움직여라! (心氣身修練) (디자인하우스)
(2) 이 동현, 健康氣功 (정신세계사)
(3) 이 승헌, 뇌호흡 (한문화)
(4) 楊力 지음, 김 충렬 외 옮김, 周易과 中國醫學(1,2,3)(법인 문화사)
(5) 김 상일, 한의학과 러셀 역설 해의 ( 지성산업사)
(6) 김 교빈, 박 석준 외, 동양철학과 한의학( 아카넷)
(7) 가노우 요시미츠(加納喜光) 지음, 동의과학연구소 옮김
몸으로 본 중국사상 (소나무)
(8) 최 창조, 한국의 풍수사상(대우학술총서) (민음사)
(9) 조 용헌, 담화 (랜덤하우스코리아)
(10) 이 수광, 의성 화타 (소설 의인열전) (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