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여러 가지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량이 많았던 내게 오금희는 그다지 미덥지가 않았다. 엎어지고 젖치고 내뻗고 거두어들이는 과정이 지루하고 싱겁게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렇게 속는 셈 치고 시작했던 것 같다.
시작이야 어찌 되었건, 일단 시작을 했으니 제대로 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단순한 몇 개 동작이라서 전부 머리 속에 넣었다고 믿었는데, 혼자서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뭔가 어설프고 타이밍이 틀리다는 느낌이 강했다. 간단한 동작일 뿐인데 이상했다.
눈에 비쳐지는 것과 달리 오금희가 그렇게 만만한 동작들이 아니었다. 먼저 지금까지 해왔던 운동들과는 움직임의 속도와 궤도가 다르고 따라서 쓰이는 근육과 자극이 달랐다. 약간씩 더 꼬아주고 비틀어주는 조그만 차이로 인하여 결과적으로는 전혀 다른 운동이 되고 있는 셈이었다. 섣부른 판단이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무엇이 되었건 인내심을 가지고 찬찬히 살펴 보아야만 비밀이 보이는 법이다.
주변의 반응은 유학대학원을 다닐 때 만큼이나 가관이었다. 남들은 비즈니스를 위해 골프채를 들고 한 타에 집중하고 있는 이 시기에 무슨 캐캐 묵은 체조란 말인가. 굳이 주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할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정이 개인적으로는 제법 험난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가피하게 빠지는 날들이 늘어갔다. 아무래도 일이 우선이었다. 빼먹은 동작들로 인해서 흐름이 이어지지 못했고, 더 이상 이런 상황을 유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싸부님과 상의해서 교대 수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 기수인 36기의 수업을 통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자 했다. 빼먹은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지 집중도는 높아졌다. 그렇게 수공까지 마무리를 하였고 부족하지만 전체 흐름은 마침내 이어졌다.
여전히 나는 오금희를 일통하는 신비의 운동으로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늘 수련의 과정에서 내 몸의 구석구석을 객관적으로 세심하게 살펴보고 보완할 수 있게 하는 점에 만족한다. 수련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붙은 호흡법은 일상에서도 행동의 리듬을 이끈다. 작게는 걸음걸이에 리듬이 생기고 나아가 일과에서도 강약과 빠르고 느림을 조절하게 한다.
오금희에서 만나는 도반들은 덤이다. 제 각각의 삶의 궤적이 워낙 동떨어져 있어서 오금희가 아니었으면 만나기 어려웠을텐데 거리낌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사람 사이의 거리란 늘 측량하기가 어렵다.
이제 수료심사가 목전에 있다. 그 동안의 수련을 평가하고 과정의 한 단락을 짓는 중요한 절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먼 여정에서 겨우 한걸음을 뗐을 뿐일 터. 녹참원조로 다만 먼 곳을 응시하려 한다.
끝.
시작이야 어찌 되었건, 일단 시작을 했으니 제대로 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단순한 몇 개 동작이라서 전부 머리 속에 넣었다고 믿었는데, 혼자서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뭔가 어설프고 타이밍이 틀리다는 느낌이 강했다. 간단한 동작일 뿐인데 이상했다.
눈에 비쳐지는 것과 달리 오금희가 그렇게 만만한 동작들이 아니었다. 먼저 지금까지 해왔던 운동들과는 움직임의 속도와 궤도가 다르고 따라서 쓰이는 근육과 자극이 달랐다. 약간씩 더 꼬아주고 비틀어주는 조그만 차이로 인하여 결과적으로는 전혀 다른 운동이 되고 있는 셈이었다. 섣부른 판단이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무엇이 되었건 인내심을 가지고 찬찬히 살펴 보아야만 비밀이 보이는 법이다.
주변의 반응은 유학대학원을 다닐 때 만큼이나 가관이었다. 남들은 비즈니스를 위해 골프채를 들고 한 타에 집중하고 있는 이 시기에 무슨 캐캐 묵은 체조란 말인가. 굳이 주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할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정이 개인적으로는 제법 험난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가피하게 빠지는 날들이 늘어갔다. 아무래도 일이 우선이었다. 빼먹은 동작들로 인해서 흐름이 이어지지 못했고, 더 이상 이런 상황을 유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싸부님과 상의해서 교대 수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 기수인 36기의 수업을 통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자 했다. 빼먹은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지 집중도는 높아졌다. 그렇게 수공까지 마무리를 하였고 부족하지만 전체 흐름은 마침내 이어졌다.
여전히 나는 오금희를 일통하는 신비의 운동으로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늘 수련의 과정에서 내 몸의 구석구석을 객관적으로 세심하게 살펴보고 보완할 수 있게 하는 점에 만족한다. 수련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붙은 호흡법은 일상에서도 행동의 리듬을 이끈다. 작게는 걸음걸이에 리듬이 생기고 나아가 일과에서도 강약과 빠르고 느림을 조절하게 한다.
오금희에서 만나는 도반들은 덤이다. 제 각각의 삶의 궤적이 워낙 동떨어져 있어서 오금희가 아니었으면 만나기 어려웠을텐데 거리낌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사람 사이의 거리란 늘 측량하기가 어렵다.
이제 수료심사가 목전에 있다. 그 동안의 수련을 평가하고 과정의 한 단락을 짓는 중요한 절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먼 여정에서 겨우 한걸음을 뗐을 뿐일 터. 녹참원조로 다만 먼 곳을 응시하려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