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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반 수시 모집 : 화, 수, 목, 금, 토요일 가능 시간은 별도 문의
화타오금희

정회원 수련기

김 용 필
어느날 우연히 평소에 잘 보지않던 중화방송의 특집을 보고 있던 중 오금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저런 운동도 있구나 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적이며 찾아 보던 중 화타 오금희를 국내에서도 가르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분당에서 서대문까지 거리와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머뭇거리며 결정을 못내리고 몇 달이 흘러갔다.

한 해도 거의 끝자락에 가깝게 치닫던 중, 평소 동양의 전통과 문화에 관심이 있어 마음으로부터 깊은 정을 느끼고 있던차에 불현듯 다시 생각난 오금희에 대한 그리움과 호기심, 새해에 대한 새로운 시작의 결심 등이 어우러져 한번 도전해보기로 마음을 정하였고 그로부터 수련을 시작한지 어느덧 1년이 되었다.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련만큼은 나에게 있어 커다란 축복과 기쁨이요 평생 잊을 수 없는 행복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처음 시작한지 한두달은 가족과 같은 훈훈한 분위기와 순수한 표정으로 성실하게 임해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멋도 모르고 이럭저럭 배우며 지나갔다. 오히려 특이하고 별난 동작이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했던 나는 손발만 체조하듯이 움직이는듯한 단순함에 이것이 과연 운동이 될까 라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시작한지 서너달즈음 지나서자, 일주일에 한번쯤 열심히 하면 충분하리라고 쉽게 여기고 편안한 생각 속에 다니던 나는 얻고자 하는 기대감은 크고 들이고자 하는 정성은 부족하여 가르쳐 주는 동작을 맹목적으로 익히기에도 급급했고, 평일에도 한번 복습하지 못하니 감각이 생길만하면 잊어버리고 리듬이 깨져서 다음 주에 와서 다시 새로 시작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숙달치 않은 손끝은 여물지 못하고 몸은 따라주지 못하는데다 마음만 바빠지니 순서를 익히는데도 혼란이 가중되었다. 더구나 직장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조금씩 게으름까지 피게되니 그저 일주일에 한번이나마 열심히 나오는 것에 위안을 삼고 다녔다. 그래도 토요일마다 거의 빠짐없이 오금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일주일동안 지쳐있던 내 몸과 마음의 무게를 오금희를 통해서 한꺼플 벗겨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초급 7개월 과정 내내, 동작을 할 때마다 선생님께서는 어깨의 힘을 풀고 “放?”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내 몸의 힘을 풀고 이완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더 잘 하려고 욕심을 부리면 몸에는 어느덧 힘이 들어가 있고 쉬워 보이는 동작이 내 몸에서는 쉽게 이루어지지를 않았다. 나의 몸이 이렇게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하자는 각오와 끝은 보아야 한다는 의지로 꾸준히 수련에 참여했다.

솔직히 초급과정 동안 나는 어떤 변화를 기대하지 않고 그냥 열심히 꾸준히 해왔다. 그러나 나의 몸과 마음에는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가 찾아 왔고 그래서인지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연습하지만 할때마다의 느낌은 너무도 달랐다. 오금희를 수련할 때면 물이 서서히 데워지듯이 나의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면서 땀이 촉촉이 젖어 들었고, 수련을 마치고 언덕을 내려갈 때의 상쾌한 기분과 가벼운 발걸음은 일주일의 묵은 때를 깨끗이 씻어 내렸다.

중급과정에 들어서자, 오금희 한동작 한동작의 수련효과와 동작의 요점을 세밀하게 지도해 주시며 자기자신이 직접 해보면서 스스로 깨닫도록 연습시키는 부회장님의 자상한 지도 덕분에 비로소 오금희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그 의미를 한단계 더 깊이를 느끼게 되었다. 초급과정동안 단순히 동작만 그저 건성으로 흉내내고 따라하던 나는 이제야 그동안 수차 들었던 “放?”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왜 시선과 무게중심 그리고 동작의 시작과 끝이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자연스러움. 부드럽지만 강한 몸짓.
겉은 부드럽지만 마음깊이 숨어 있는 그 강력함.
몸과 마음을 모두 아우러서 드러내는 아름다운 운동. 오금희.
동작 하나 하나 부드러우니 마음도 부드러운 것인가? 오금희를 마치고 나면 몸뿐만이 아니라 기분이 좋아지고 평온해지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

우리는 시작이라는 단어를 만나게 될 때 기대와 설렘을 느끼며 누군가를 통해서 기법을 배운다. 그러나 복을 주는 사람이 있어도 받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배운 것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 녹이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고 몸과 마음의 수련을 통해서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이론과 머리 속으로만 하는 이해가 아닌 끊임없이 갈고 닦아 정진하는 체험을 통해야만 느낌에서 느낌으로 전해지고 그 흔적은 나의 몸짓과 마음에 남아 내 안에 또 새로운 나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주영환 선생님의 부드러우면서도 맺고 끊는 절도, 박윤선 부회장님의 체득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기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오랜 인고의 세월이 흘러야만 이룰 수 있는, 그래서 어느 누구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경지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언젠가 부회장님께서는 오금희의 배우는 목적이 건강한 생활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건강한 생활인”. 이 말을 처음 들을 때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 심오함에 숙연해진다.

오금희는 어쩌면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과정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꾸준히 배우며 몸에 익혀 생활 속에 실천할 때 진정으로 내 몸과 마음을 다스리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고, 얼마나 내가 내마음에 느껴서,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가가 중요한 듯 싶다. “終則有始”. 지금이 끝이 아니고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을 위한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앞으로도 오금희와의 인연의 끈을 놓지않고 내 인생의 반려로서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오금희의 본질을 알아보는 눈이 생기고 몸과 마음이 하나로 만나는 이 수련이 나의 인생의 삶의 길에 크게 동반되어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오금희의 수련을 통해서 스스로 깨닫는 자가 되어 생활에서 실천한다면 그 어느 것에도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며, 건강한 생활인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내가 오금희와의 인연을 맺는데 일조해주신 박성희 선생님과 김경린 선생님,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의 철부지에게 착실히 기초를 닦는데 헌신의 노력을 기울여주신 주영환 선생님, 그리고 한단계 더 성숙해지고 오금희가 무엇인지 비로소 눈을 뜨게 해주신 박윤선 부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