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몸의 일부를 느낀다는 것은 그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라는 선배의 말을 기억한다. 나는 평소에 머리를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항상 등의 존재를 인식하며 살아왔다. 즉 등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은 무언가 편치 않음이 등에 있다는 말이다. 나에게는 항상 등의 통증이 문제가 되어 왔다. 컨디션이 좋을 때면 흉추부위 통증의 존재를 인식하지못하며 생활을 한다. 하지만 큰 일을 앞두고 집중을 할 필요가 있거나, 아니면 과로로 몸을 많이 쓰고 나면 흉추 부위의 통증으로 많은 장애를 겪곤 한다.
심장질환, 폐질환을 겪고 나면서 극도로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다. 현대의료의 항생제와 첨단수술요법으로 위급한 경우는 견디어 냈지만, 성공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잔존하는 숨가쁨, 만성적인 피로감, 흉추부위의 통증으로 많은 의사 선생님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운동방법들을 찾아다녔다.
몇 년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것은 사람마다 개체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치료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는 깨우침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라는 질문을 화두로 살아가는 삶. 내 약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는 인연들을 찾아가고, 내가 베풀수 있는 면들을 받아줄 수 있는 인연들을 찾아가는 삶.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인연을 만나는 것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종교, 영생도 그런 개념안에 포함되는 부분이다. 몇 년의 방황을 통해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내가 가야할 길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 운동을 만나게 되었다. 그 만남을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오금희가 단순한 체조라기 보다는 의학적 기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오금희의 작용기전을 안쓰는 근육군을 사용하고, 다리의 근육을 강화시키고....그런 해부생리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용되는 용어 하나하나, 행동의 동작 하나하나를 곰씹어 보면 그 안에 담긴 동양의학적 사고를 읽어낼 수 있다. 의학적 관점이 튼튼하지 못해 담긴 의미를 다 해석해내지 못함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공부가 깊어지면 그 의미를 보다 깊이 음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수련을 하면서 오금희를 이해하는 방법이 크게 두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동양의학 및 철학의 토대 위에서 오금희를 ‘공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몸으로 꾸준히 수행하면서 오금희를 ’느껴가는 것‘이다. 전자와 후자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되겠지만, 솔직히 운동신경이 둔한 나로서는 후자보다는 전자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사람이 잠을 자야하는 시간인 한밤중에 자지 않고 오락을 하거나 TV를 시청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사회생활이 바쁘다보니 한밤중에도 잠을 자지 않고 오히려 낮밤이 바뀐 직장인들을 종종 본다. 과도한 바깥 생활을 줄이고 1년의 생활을 갈무리하며, 동시에 새로 시작할 1년을 조심스럽게 펼쳐나가는 것이 겨울철에 마땅한 섭생의 원칙이지만 그것대로 살아갈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한의학이론에 ‘冬不藏精 春必溫病’라는 말이 있다. 봄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라가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땅속에 침장(沈藏)되어 있던 양기(陽氣)가 펼쳐져 나가는 것이 봄의 이치이다. 이 양기(陽氣)가 최고로 번성하는 것이 여름이지만, 여름의 이면(裏面)에는 최고로 펼쳐진 양의 기운이 꺾어져서 수렴되기 시작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있다. 그리고 가을의 숙살지기(肅殺之氣)를 거쳐 이 양기(陽氣)는 음(陰) 속에 갈무리가 된다. 음(陰)은 양(陽)을 담는 그릇이다. 음(陰)이 튼튼하지 못하면 만물의 생명력인 양(陽) 역시 제대로 발휘될 수가 없다. 동짓날이 추워야 풍년이 든다.’는 옛말에는 겨울에는 음(陰)이 튼튼해야 그 터전 속에서 양(陽)이 잘 갈무리 되어 있다가 봄에 양기(陽氣)가 발휘를 하게 되고, 이것이 가을철에 풍년의 결실로 이어진다는 자연의 섭리가 담겨있다. 음기(陰氣)가 충만한 한밤중에 잠을 자야하고, 음기(陰氣)가 충만한 한겨울에 내면으로 집중을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冬不藏精 春必溫病’으로 돌아가보자. 한의학에서는 겨울철에 음(陰) 속에 갈무리되어 있다가 봄에 갓 발휘되기 시작하는 어린 양기(陽氣)를 소양(少陽)의 영역에 배속시켜 놓았다. 이 소양(少陽)의 기운이 건강하려면 담아주는 그릇인 음(陰)이 튼튼해야 하고, 처음 소양(少陽)의 기운이 발휘될 때에 이를 막는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장애물이 있어 소양(少陽)의 기운이 원활하게 발휘되지 못하고 체(滯)하게 되면 열(鬱熱)이 발생하여 여러 가지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 전자의 이유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을 해놓았다.
아울러 비장과 위장(脾胃)은 한의학적 관점에서 승강(昇降)의 축이 된다. 흔히 수화교제(水火交濟), 심신교제(心腎交濟)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물기운과 불기운이 오르내리는 현실적인 축의 역할을 하는 것이 토(土)의 장부인 비위(脾胃)의 중요한 기능중의 하나라는 말이다. 오금희에서는 원숭이(猿)을 오행 중 토(土)에 배속을 시켰고, 한의학의 경락이론에 따르면 삼초(三焦)경락(經絡)은 소양(少陽)의 경락에 배속된다.
오금희 4장에 나오는 원리삼초(猿理三焦)에 대해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소양(少陽)의 기운이 왕성하게 움직이는 삼초에서는 상 중 하초 기의 순환에 장애가 있으면 안된다. 그런데 소양(少陽)의 기운은 병리적인 조건하에서 쉽게 울체(鬱滯)가 되어 열을 발생시키고, 이것이 질병을 야기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이에 인체승강(人體昇降)의 중심이 되는 토(土)의 기능을 조절하여 인체 상 중 하초의 원할한 기기(氣機)의 소통을 돕는다는 것이 원리삼초(猿理三焦)의 내면에 담긴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면 근거없는 비약일까. 손을 뻗는 동작을 원숭이의 행동에서 취하여 원리삼초(猿理三焦)라는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 내면에 담긴 뜻을 헤아려 볼때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동양철학에 대한 공부가 깊지 않아 오금희의 동작이나 명칭에 대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정도가 이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지금의 한계라 생각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동양의철학에 대한 공부를 수련하고, 오금희에 담긴 의미를 화두로 삼으며 살아간다면 언젠가 오금희에 담긴 뜻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날을 기대해 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오금희를 이해하는 방법은 부지런한 수련을 통해 몸으로 변화를 체득하던지, 아니면 학문적인 학습을 통해 이론을 깨달아가는 두가지의 방법이 있으리라 보인다.
오금희가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운동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병통치약이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듯이, 오금희가 잘맞는 사람이 있는 만큼 큰 효과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건강문제로 인해 방황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권해주고 싶다. 항상 자상하게 이끌어주시는 여러 사범님들, 그리고 1년이란 시간동안 막내를 많이 챙겨주시고 또 인정해주셨던 우리 동기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심장질환, 폐질환을 겪고 나면서 극도로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다. 현대의료의 항생제와 첨단수술요법으로 위급한 경우는 견디어 냈지만, 성공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잔존하는 숨가쁨, 만성적인 피로감, 흉추부위의 통증으로 많은 의사 선생님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운동방법들을 찾아다녔다.
몇 년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것은 사람마다 개체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치료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는 깨우침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라는 질문을 화두로 살아가는 삶. 내 약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는 인연들을 찾아가고, 내가 베풀수 있는 면들을 받아줄 수 있는 인연들을 찾아가는 삶.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인연을 만나는 것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종교, 영생도 그런 개념안에 포함되는 부분이다. 몇 년의 방황을 통해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내가 가야할 길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 운동을 만나게 되었다. 그 만남을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오금희가 단순한 체조라기 보다는 의학적 기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오금희의 작용기전을 안쓰는 근육군을 사용하고, 다리의 근육을 강화시키고....그런 해부생리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용되는 용어 하나하나, 행동의 동작 하나하나를 곰씹어 보면 그 안에 담긴 동양의학적 사고를 읽어낼 수 있다. 의학적 관점이 튼튼하지 못해 담긴 의미를 다 해석해내지 못함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공부가 깊어지면 그 의미를 보다 깊이 음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수련을 하면서 오금희를 이해하는 방법이 크게 두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동양의학 및 철학의 토대 위에서 오금희를 ‘공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몸으로 꾸준히 수행하면서 오금희를 ’느껴가는 것‘이다. 전자와 후자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되겠지만, 솔직히 운동신경이 둔한 나로서는 후자보다는 전자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사람이 잠을 자야하는 시간인 한밤중에 자지 않고 오락을 하거나 TV를 시청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사회생활이 바쁘다보니 한밤중에도 잠을 자지 않고 오히려 낮밤이 바뀐 직장인들을 종종 본다. 과도한 바깥 생활을 줄이고 1년의 생활을 갈무리하며, 동시에 새로 시작할 1년을 조심스럽게 펼쳐나가는 것이 겨울철에 마땅한 섭생의 원칙이지만 그것대로 살아갈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한의학이론에 ‘冬不藏精 春必溫病’라는 말이 있다. 봄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라가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땅속에 침장(沈藏)되어 있던 양기(陽氣)가 펼쳐져 나가는 것이 봄의 이치이다. 이 양기(陽氣)가 최고로 번성하는 것이 여름이지만, 여름의 이면(裏面)에는 최고로 펼쳐진 양의 기운이 꺾어져서 수렴되기 시작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있다. 그리고 가을의 숙살지기(肅殺之氣)를 거쳐 이 양기(陽氣)는 음(陰) 속에 갈무리가 된다. 음(陰)은 양(陽)을 담는 그릇이다. 음(陰)이 튼튼하지 못하면 만물의 생명력인 양(陽) 역시 제대로 발휘될 수가 없다. 동짓날이 추워야 풍년이 든다.’는 옛말에는 겨울에는 음(陰)이 튼튼해야 그 터전 속에서 양(陽)이 잘 갈무리 되어 있다가 봄에 양기(陽氣)가 발휘를 하게 되고, 이것이 가을철에 풍년의 결실로 이어진다는 자연의 섭리가 담겨있다. 음기(陰氣)가 충만한 한밤중에 잠을 자야하고, 음기(陰氣)가 충만한 한겨울에 내면으로 집중을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冬不藏精 春必溫病’으로 돌아가보자. 한의학에서는 겨울철에 음(陰) 속에 갈무리되어 있다가 봄에 갓 발휘되기 시작하는 어린 양기(陽氣)를 소양(少陽)의 영역에 배속시켜 놓았다. 이 소양(少陽)의 기운이 건강하려면 담아주는 그릇인 음(陰)이 튼튼해야 하고, 처음 소양(少陽)의 기운이 발휘될 때에 이를 막는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장애물이 있어 소양(少陽)의 기운이 원활하게 발휘되지 못하고 체(滯)하게 되면 열(鬱熱)이 발생하여 여러 가지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 전자의 이유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을 해놓았다.
아울러 비장과 위장(脾胃)은 한의학적 관점에서 승강(昇降)의 축이 된다. 흔히 수화교제(水火交濟), 심신교제(心腎交濟)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물기운과 불기운이 오르내리는 현실적인 축의 역할을 하는 것이 토(土)의 장부인 비위(脾胃)의 중요한 기능중의 하나라는 말이다. 오금희에서는 원숭이(猿)을 오행 중 토(土)에 배속을 시켰고, 한의학의 경락이론에 따르면 삼초(三焦)경락(經絡)은 소양(少陽)의 경락에 배속된다.
오금희 4장에 나오는 원리삼초(猿理三焦)에 대해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소양(少陽)의 기운이 왕성하게 움직이는 삼초에서는 상 중 하초 기의 순환에 장애가 있으면 안된다. 그런데 소양(少陽)의 기운은 병리적인 조건하에서 쉽게 울체(鬱滯)가 되어 열을 발생시키고, 이것이 질병을 야기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이에 인체승강(人體昇降)의 중심이 되는 토(土)의 기능을 조절하여 인체 상 중 하초의 원할한 기기(氣機)의 소통을 돕는다는 것이 원리삼초(猿理三焦)의 내면에 담긴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면 근거없는 비약일까. 손을 뻗는 동작을 원숭이의 행동에서 취하여 원리삼초(猿理三焦)라는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 내면에 담긴 뜻을 헤아려 볼때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동양철학에 대한 공부가 깊지 않아 오금희의 동작이나 명칭에 대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정도가 이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지금의 한계라 생각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동양의철학에 대한 공부를 수련하고, 오금희에 담긴 의미를 화두로 삼으며 살아간다면 언젠가 오금희에 담긴 뜻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날을 기대해 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오금희를 이해하는 방법은 부지런한 수련을 통해 몸으로 변화를 체득하던지, 아니면 학문적인 학습을 통해 이론을 깨달아가는 두가지의 방법이 있으리라 보인다.
오금희가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운동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병통치약이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듯이, 오금희가 잘맞는 사람이 있는 만큼 큰 효과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건강문제로 인해 방황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권해주고 싶다. 항상 자상하게 이끌어주시는 여러 사범님들, 그리고 1년이란 시간동안 막내를 많이 챙겨주시고 또 인정해주셨던 우리 동기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