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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타오금희

정회원 수련기

최 귀 웅
하늘은 호수가 되고

오랜 세월 시간에 쫓기면서, 일에 떠밀리면서, 비정한 경쟁 속에서 초초하게 살아온 내게 하루는 늘 24시간이 아닌 23시간의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주변의 사람들도, 무언가에 추격당하듯 무거운 몸놀림으로 피로회복제를 마셔가며, 어디를 향해 가는지 바쁘게 움직이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오금희를 접할 때까지는......

오금희의 느림과 부드러움의 흥취(興趣)에 빠져 지내온 세월이 벌써 해를 넘긴지 오래다. 그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동물들의 몸동작은 시간에 대한 나의 관념과 사물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바쁜 생업에 골몰했던 내 자신이, 시골 촌부처럼 표정과 걸음걸이가 한가로워진 것 같기도 하고 사회생활과 생활습관 - 비즈니스나 사람과의 관계에서부터 운전습관과 걸음걸이에 이르기까지 - 모든 면에서 전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느낀다. 모든 일상이 一日如25時같은 여유로움 속에 있다. 누군가 습관은 제2의 탄생이라 했는데 내가 이 나이에 다시금 새로운 사춘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광교산 형제봉 자락 밑의 옛 절터(고려시대 성불사의 폐사지)는 휴일이면 운동 삼아 노력봉사를 자청하여 자주 오르는 곳이다. 부처님이 앉아 계셨을 자리에 섰노라면 발아래 먼 남쪽의 산등성 날망들 위로 펼쳐졌을 아침노을과 포란형으로 둘러쌓인 능선의 숲에서 들려왔을 새소리와 벌레소리 그리고 스치는 바람과 지나는 구름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온하였을지 절로 짐작이 간다. 이른 아침 이곳에서의 오금희는 내게 가장 큰 행복이고 축복이다.

오금희를 하면 아미타불의 마음이 된다는 어느 사형의 말씀에 쉽게 동감하는 것은 오금희의 시작이 녹참원조이기 때문일까? 녹참원조는 언제나 자애롭고 다감하신 어머님의 모습같다. 아들이 온다는 기별에 마을 능성이에 올라서서 아들의 자취가 산모퉁이 자락을 돌아 나타날 때까지 말없이 지켜서 계시던 어머님. 돌아가는 아들의 뒷모습에도 어머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선채 녹참원조를 하고 계셨었다.

동작마다 느낌의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웅부신요를 할 때면 바람이 일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바람이 불어 눈 앞의 나뭇가지와 들꽃들을 흔들어 주면 웅부신요는 더욱 확연해진다. 천년 전부터 하던 바람의 장난, 나뭇가지와 들풀들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는 바람을 읽는 웅부신요는 가을의 동작이다. 지난 가을 광주로 가는 출장길에 창 밖으로 넘실대던 황금들녘은 바람을 느끼게 했고 바람은 웅부신요를 일깨워 주었다.

백원헌과는 내가 일상적으로 사람을 대하거나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것이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보는 각도를 달리하면 새로운 면과 아름다운 비밀을 찾아낼 수가 있음을 깨우쳐 주었다. 거꾸로 샅(股間)을 통해 보니 굴곡이 심한 산의 능선도 유장하게 보일뿐더러 숲의 빛깔도 원색이 낱낱이 분해되어 멀고 가까움이 선명하게 드러나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다. 녹앙회고, 웅운견과로 본 하늘은 호수가 되고, 산은 호수에 잠긴 그림자가 되었다.

인간이 새가 될 수 있음을 몸으로 보여 주신 분은 박성희 선생님이다. 조전쌍시를 하면 지금도 선생님이 이끄는 아름다운 비행의 대열속에 있는 것 같은 환상에 빠져든다. 그것은 필시 유연하고 부드러운 선생님의 팔 동작 때문일 것이다. 새의 깃털처럼 가벼운 손과 팔이 허공을 가르며 내려올 때면 자칫 바람에 날릴까 숨이 멎을 것 같다. 선생님의 조전쌍시는 가장 미학적이고 승화된 춤사위같다.

원숭이의 팔 동작(원비정·우·좌거, 원서우·좌비, 원비반신)들은 나뭇가지와 잎새들 사이로 부서지는 햇빛과 산을 지나는 구름들을 만나게 한다. 어느새 보았던 구름은
없어지고 새롭게 일어나고...... 어쩌면 삶도 한조각 구름이 일어나고 스러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같은 영장류의 동작에 기인함일까?

학전좌시와 학전우시)는 내 몸을, 눈 앞에 펼쳐진 절경과 선경(仙境)을 연속으로 촬영하는, 파노라마 사진기가 되게 한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설악산 마등령의 안부에서 단애를 이룬 기암들을 배경으로, 남해 남산의 정상에서 푸른 다도해(多島海)를 피사체로 학전좌·우시를 한번 해보리라.

먼 옛날 구도자들께서 가사장삼을 끌고 다녔을 이 산자락의 고토(古土)에서 우선녹분을 하고 있노라니 돌 틈에 둥지를 튼 박새가 나를 사슴으로 보고 안도했는지 경계를 풀고 사뭇 벌레를 물고 들락거린다. 어느새 나는 하늘에서 백학이 되었다가 땅으로 내려와 구렁이가 되기도 하고 또 곰이 되어 거꾸로 매달린다. 점점 무아지경 속으로 몰입되는 나는 태고의 자연과 어우러져 노니는 한 마리의 행복한 동물이 된다.

야외수련의 묘미를 일깨워 주신 박윤선 선생님은 항시 우리 반원에게 연공(練功)시 유념해야 할 시선과 몸의 중심, 동작의 시작과 끝을 강조하셨는데 이렇게 야외에서 감상적으로 연공하는 것이 혹시 강조하신 내용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것 아닌지 걱정도 된다. 기공에서 의수(意守)가 마음의 평온을 방해하는 잡념을 물리치기 위한 일념(一念)이라면 의수의 대상이 푸른 숲이나 맑은 호수 등의 자연 경관도 좋고 자애로운 어머님의 얼굴이나 예수님, 부처님의 모습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복이 많아서 초급과 중급과정 모두 여(女)선생님을 모시게 되었다. 다감하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선생님들 덕분에 수련기간 내내 쉽고 편안하고 행복했다. 다른 교육과 달리 수업방식도 기공식이었던 것이다. 항상 웃음 머금은 얼굴로 자상하게 이끌어 주셨던 박윤선 선생님은 연공자로서의 마음가짐과 오금희의 심화과정이 어떠한지를 당신의 몸을 통하여 스스로 느끼게 하셨다. 선생님에 대하여 몇 가지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 도반들 모두 수련복을 땀으로 적시며 연신 손수건으로 맺힌 땀을 닦는 동안 수련을 이끄시는 선생님은 어떻게 땀 한 방울 안흘리고 계셨는지 정말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어떤 경지에 이르러 무엇을 체득하셨는지 사뭇 궁금하다. 안마동작 “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선생님이 가린 머리를 쓸어올렸을 때 드러난 분첩처럼 보드라워 보이는 우유빛 살결을 보고, 난 그만 ‘앗!’하고 비명을 지를뻔 했다. 박성희, 김경린 선생님도 한결같이 살갗이 유난히 희다. 선생님들은 언제부터 화장을 하지 않았을까? 선생님들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오금희의 인기가 치솟게 되면 가장 긴장과 걱정을 하게 될 곳이 제약회사와 의료기관, 화장품회사가 아닐까 싶다.

중급과정에서 어깨의 긴장이완 즉 방송(放?)이 미흡하다고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 부분에서 나는 많은 핸디캡을 갖고 있다고 자인한다. 불행한 군사문화의 덕(?)으로 청소년기부터 제식과 총검술을 익혔고 3년간의 군생활도 보병과는 다른 특수부대원으로 복무하였기에 기공의 출발인 방송이 어려웠다. 오랫동안 배우고 익힌 몸동작들이 결국 적을 살상하기 위함이었으니 그렇게 남을 공격하려는 자세가 방송이 될리 있었겠는가? 지금도 가끔 바로 설 때면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뒤로 제껴 가슴을 내미는 차렷자세가 되니...... 만시지탄이지만 내가 오금희를 만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겨울, 무릎까지 차오른 눈을 밟고 오른 오대산에서 이 골짝 저 골짝에 넘어지고 부러진 나무들을 보았다. 모진 바람에도 그떡 않던 꼿꼿한 나무들도 부드러운 것 앞에 꺽이는 묘리(妙理)를 오금희를 만나지 않았던들 내 어찌 알 수 있었으랴......

며칠 전 휴가지에서 아들녀석이 깻잎같은 손바닥을 펴보이며 잡은 오색풍뎅이를 자랑하던 그 날 밤,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에 쉽게 잠을 못이루었다. 별이 빛나는 밤 하늘과 어우러진 오금희는 경험하지 못한 황홀경 그 자체였다. 좌·우유녹경...... 나의 작은 미려를 중심으로 펼쳐진 무변광대한 우주를 보았을 때, 그 곳의 나는 사슴뿐만 아니라 곰, 새, 호랑이, 원숭이, 물소, 구렁이, 여우의 별자리와 하나 되어 평생을 유영해도 끝이 없을 은하계를 노닐고 있었다.

두견이 울음 뒤에 머언 산이 가까이 다가서듯 오금희는 언제부턴가 그렇게 성큼 내게 다가와 있었고 나의 삶 속에 항상 새롭고 경이로움을 가져다 주었다. 그 생경하고 오묘한 동작들은 마른 나뭇가지 같은 내 몸에 푸른 수액(樹液)이 돌게 하였고 온화한 표정과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덕성을 지니게 해주었다. 건강은 물론 정신수양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준 오금희는 앞으로도 내게 끊임없이 감동과 새로운 활력으로 다가올 것이고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이어줄 것이라 믿는다.

미천한 제자를 이끌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