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료들과 같이 술을 먹다가 화제가 고우영화백에 대해서 돌아가게 되었다.
얘기를 하다 보니 고화백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동료들이 서로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은 고화백의 그림들을 보면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그 당시 한창 때에 보고 느낀 명장면들을 이제 다시 그 때처럼 볼 수가 없게 돼서 참으로 아쉬워했다.
내가 학창 때에 본 고화백의 작품 중 최배달의 극진가라데에 대한 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정말 재미가 있었고 지금도 기억이 나는 장면들이 많이 있는 데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2번 정도 최배달이 진 승부가 있었던 걸로 기억이 되는 데 하나는 인도인하고의 승부이고 또 한번은 중국의 진노인하고의 승부였던 걸로 알고 있다.
그 중 진노인은 원의 공격과 수비로 최배달을 이겼는데 그 때의 장면을 보고 중국쿵푸를 배워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 후 또 한번의 젊은 시절의 충격이 왔는데, 아! 이소룡의 절권도. 혼자 방에서 연습도 참 많이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러나 충격은 충격으로 끝나고 앞으로 연결이 되지 않은 채로 감동만 마음속으로 계속 남아 있게 되었다. 대학 가랴, 놀랴, 직장 생활하랴 어찌 어찌 하다 보니 현재까지 오게 되었고 그 동안 고도의 생화학이론으로 심을 헬스와 러닝머신으로 신을 수련하게 되었다.
그렇게 살다가 약 2~3년 전에 몸이 많이 불어나게 되어서 헬스를 심하게 한 일이 있었는데 너무 단기간에 무리를 해서 오히려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래서 운동을 잠시 멈추고 러닝만 하고 있었는데 실내에서 뛰기만 하자니 재미도 없고 해서 고수부지에 나가서 러닝을 하게 되었다.
하나 겨울이나 날씨가 나쁠 때는 할 수가 없어서, 뭔가 집에서 작은 면적에 사시사철 날씨에 구애 받지 않고 항상 할 수 있는 그러나 일반적이지 않고 폼 나는 어떤 운동을 계속 찾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주위에서 동양무술과 양생에 관한 많은 정보를 주기도 하였고 그 때마다 옛날의 그 감동도 아스라이 느끼기도 하여 한 번 배워볼까 하기도 했지만, 여태 서양이론에 수련을 받았고 어느 덧 불혹의 나이도 훨씬 넘긴 나이에 동양무술의 부드러움을 내가 해 낼 수 있을 까 특히 무술을 내가 배울 수 있을 가하는 생각과 양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특히 양생에 관해서는 주위에서 들은 건강에 관한 좋은 이야기와 더불어서 약간은 건강과 다른 뭔가 주술적인 소문 때문에 내키지가 않았다.
기회가 왔는지 혹은 기연을 만나게 된 건 지 큰 형님 한데 오금희에 관해서 듣게 되고 계속 얘기를 듣다 보니 그 운동이 그렇게 무리를 주는 운동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특히 다른 동양운동과 다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무슨 권이니 무슨 도니 하는 이름이 아니라 논다는 의미를 갖는 운동이니 놀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무척 마음에 들었고 좀 이름이 특이하고 다른 사람한테 폼 나게 얘기할 수도 있고 해서 사실 그 이름 때문에 50%는 배우고 싶어졌다.
그러나 역시 혼자서 새로운 분야에 진입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오금희와 인연이 있어서 그런지 우리 기(15기) 주동환 반장님과 같이 서로 의지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최사부님의 첫 번째 제자들의 하나가 될 수 있는 축복까지 받게 되었다.
아마 어느 늦은 여름 이였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날인 데, 집에서 오금희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이미 초급 반은 끝났고 중급 교육을 받고 있을 때인데 어느 정도 몸의 중심도 잡히고 중심이동도 조금 되고 있었다.
중급부터는 사부님이 이 운동은 인연이 있어야 배우고 내가 생각했을 때에도 이 운동은 아날로그 타입이라 한 만큼 효과가 있고 초급 때 경험 해 보니 결석을 하면 뭔가 연결이 끊어진 것 같아서 2~3주 동안은 헛공부한 것 같은 느낌을 가졌던 것이 기억이 남아서 정말로 한번도 결석을 하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그 결과 이제는 몸도 유연해지고 폼도 괜찮아져서 집에서 연습을 해도 옛날처럼 아내와 두 딸들한테 그리 크게 구박을 안 당하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오금희를 한 바퀴 돌리고 나니 초등학교 다니는 막내 딸 아이가 아빠가 더워한다고 하며 부채질을 해 주고 있었는데, 아빠가 같이 오금희하자고 하면 절대 안 한다고하고 부채질만 하고 도망 다녔다.
사실 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내 자신의 운동에서 느끼는 놀라움보다는 오금희에 같이 입문한 주동환 반장의 변화에 대해서 더 놀라고 이 운동의 가치에 대해서 상당한 찬사를 보내게 되었다.
주반장의 수련기에도 나와 있겠지만 목 디스크에 걸려서 행동에 제약을 많이 받고 있던 친구가 거의 정상의 상태에 도달하고 있는 과정을 직접 보고 느낀 나는 양생에 대한 감정은 그저 놀라울 뿐 이었다.
그래서 도인들이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는 구나 하고 생각하고 나는 어떻게 변화될 것 인가하고 궁금해 하지만 사실 아직도 나는 내부의 어떤 움직임은 알지 못하고 단순히 스트레칭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그 감각은 상당히 좋았다. 특히 원서우비, 원서좌비를 하면서 한 손은 하늘이 닿아가고 다른 한 손은 땅 속으로 길어지는 느낌은 기분이 좋음과 동시에 팔도 길어지고 몸도 길어진다는 느낌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실제로 느낀 효과와 주반장의 변화는 내게 확신을 주었다.
그래서 이 운동을 할 때 아이들이 앞에서 왔다갔다거리면 먼저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이거 애들이 배우면 좋을 텐데. 저 작은 놈을 빨리 잡아서 오금희를 가르치면 좋을 텐데.” 여자아이들한테는 과격하지도 않고 어린 시절부터 이 운동을 하면 양생이 되여 에너지도 많아질 것 같고 신체도 곧고 바르게 클 것 같고 건강하고 외형적으로 보기도 좋게 키도 커질 것 같았다.
또한 안마를 통해 성장판을 자극하는 것도 아이들한테는 좋을 것이 확실한데 정작 아이는 배우려고 하지를 않으니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배우게 하기 위해서 먼저 아내를 배우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첫 번째인데 이것이 참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금희를 배울 때부터 아내에게 수없이 잘 난척하고 배우라고 강요하고 해서 이제는 대화에 “오”자만 나와도 표정이 달라진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건방을 많이 부렸다. 그러나 앞으로는 말로만은 안 통할 것 같고 이제는 열심히 수련해서 sample를 멋있게 만드는 방법이 정공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sample이 좋아져서 즉 나에게도 변화가 생겨 몸이 날씬해지고 건강해져서 감기 같은 잡병에 걸리지 않게 되면(실제 몸은 아직 날씬 해 지지는 않았지만 요새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을 본 아내가 혹시 배우게 되지 않을 가하는 기대가 있고 또한 그렇게 되면 딸들도 오금희를 배우고 싶어 할 테니깐 그 때 오금희를 전수해 주고 내친 김에 앞으로 사위들까지 전수 하면 어떨 가하는 계획을 잡고 장기 플랜을 짜게 되었다.
그 때에는 아마 임독 양맥이 트여 있지 않을 까 기대해 본다. 이런 꿈들을 갖게 만들고 심신으로도 집중하게 만드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기프랜을 짤 수 있게 만드는 힘을 주는 것과 동시에 늙어 죽을 때까지도 할 수 있는 놀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나의 행운이라고 표현 할 수밖에 없다.
기연을 주신 화타조사님, 김성기, 박윤선 교수님 부부와 최정식사부님께 감사 드립니다. 또한 수련할 때 도와주신 여러 선배님께 감사 드립니다. 1년 동안 황금 같은 시간인 토요일 6시에 나와서 서로 의지하며 배우다가 이번에 중급을 졸업한 우리 15기 동료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열심히 수련하셔서 한 100년 뒤에 함께 모여 오금희 한차례 하시지요.
얘기를 하다 보니 고화백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동료들이 서로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은 고화백의 그림들을 보면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그 당시 한창 때에 보고 느낀 명장면들을 이제 다시 그 때처럼 볼 수가 없게 돼서 참으로 아쉬워했다.
내가 학창 때에 본 고화백의 작품 중 최배달의 극진가라데에 대한 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정말 재미가 있었고 지금도 기억이 나는 장면들이 많이 있는 데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2번 정도 최배달이 진 승부가 있었던 걸로 기억이 되는 데 하나는 인도인하고의 승부이고 또 한번은 중국의 진노인하고의 승부였던 걸로 알고 있다.
그 중 진노인은 원의 공격과 수비로 최배달을 이겼는데 그 때의 장면을 보고 중국쿵푸를 배워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 후 또 한번의 젊은 시절의 충격이 왔는데, 아! 이소룡의 절권도. 혼자 방에서 연습도 참 많이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러나 충격은 충격으로 끝나고 앞으로 연결이 되지 않은 채로 감동만 마음속으로 계속 남아 있게 되었다. 대학 가랴, 놀랴, 직장 생활하랴 어찌 어찌 하다 보니 현재까지 오게 되었고 그 동안 고도의 생화학이론으로 심을 헬스와 러닝머신으로 신을 수련하게 되었다.
그렇게 살다가 약 2~3년 전에 몸이 많이 불어나게 되어서 헬스를 심하게 한 일이 있었는데 너무 단기간에 무리를 해서 오히려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래서 운동을 잠시 멈추고 러닝만 하고 있었는데 실내에서 뛰기만 하자니 재미도 없고 해서 고수부지에 나가서 러닝을 하게 되었다.
하나 겨울이나 날씨가 나쁠 때는 할 수가 없어서, 뭔가 집에서 작은 면적에 사시사철 날씨에 구애 받지 않고 항상 할 수 있는 그러나 일반적이지 않고 폼 나는 어떤 운동을 계속 찾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주위에서 동양무술과 양생에 관한 많은 정보를 주기도 하였고 그 때마다 옛날의 그 감동도 아스라이 느끼기도 하여 한 번 배워볼까 하기도 했지만, 여태 서양이론에 수련을 받았고 어느 덧 불혹의 나이도 훨씬 넘긴 나이에 동양무술의 부드러움을 내가 해 낼 수 있을 까 특히 무술을 내가 배울 수 있을 가하는 생각과 양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특히 양생에 관해서는 주위에서 들은 건강에 관한 좋은 이야기와 더불어서 약간은 건강과 다른 뭔가 주술적인 소문 때문에 내키지가 않았다.
기회가 왔는지 혹은 기연을 만나게 된 건 지 큰 형님 한데 오금희에 관해서 듣게 되고 계속 얘기를 듣다 보니 그 운동이 그렇게 무리를 주는 운동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특히 다른 동양운동과 다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무슨 권이니 무슨 도니 하는 이름이 아니라 논다는 의미를 갖는 운동이니 놀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무척 마음에 들었고 좀 이름이 특이하고 다른 사람한테 폼 나게 얘기할 수도 있고 해서 사실 그 이름 때문에 50%는 배우고 싶어졌다.
그러나 역시 혼자서 새로운 분야에 진입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오금희와 인연이 있어서 그런지 우리 기(15기) 주동환 반장님과 같이 서로 의지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최사부님의 첫 번째 제자들의 하나가 될 수 있는 축복까지 받게 되었다.
아마 어느 늦은 여름 이였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날인 데, 집에서 오금희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이미 초급 반은 끝났고 중급 교육을 받고 있을 때인데 어느 정도 몸의 중심도 잡히고 중심이동도 조금 되고 있었다.
중급부터는 사부님이 이 운동은 인연이 있어야 배우고 내가 생각했을 때에도 이 운동은 아날로그 타입이라 한 만큼 효과가 있고 초급 때 경험 해 보니 결석을 하면 뭔가 연결이 끊어진 것 같아서 2~3주 동안은 헛공부한 것 같은 느낌을 가졌던 것이 기억이 남아서 정말로 한번도 결석을 하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그 결과 이제는 몸도 유연해지고 폼도 괜찮아져서 집에서 연습을 해도 옛날처럼 아내와 두 딸들한테 그리 크게 구박을 안 당하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오금희를 한 바퀴 돌리고 나니 초등학교 다니는 막내 딸 아이가 아빠가 더워한다고 하며 부채질을 해 주고 있었는데, 아빠가 같이 오금희하자고 하면 절대 안 한다고하고 부채질만 하고 도망 다녔다.
사실 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내 자신의 운동에서 느끼는 놀라움보다는 오금희에 같이 입문한 주동환 반장의 변화에 대해서 더 놀라고 이 운동의 가치에 대해서 상당한 찬사를 보내게 되었다.
주반장의 수련기에도 나와 있겠지만 목 디스크에 걸려서 행동에 제약을 많이 받고 있던 친구가 거의 정상의 상태에 도달하고 있는 과정을 직접 보고 느낀 나는 양생에 대한 감정은 그저 놀라울 뿐 이었다.
그래서 도인들이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는 구나 하고 생각하고 나는 어떻게 변화될 것 인가하고 궁금해 하지만 사실 아직도 나는 내부의 어떤 움직임은 알지 못하고 단순히 스트레칭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그 감각은 상당히 좋았다. 특히 원서우비, 원서좌비를 하면서 한 손은 하늘이 닿아가고 다른 한 손은 땅 속으로 길어지는 느낌은 기분이 좋음과 동시에 팔도 길어지고 몸도 길어진다는 느낌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실제로 느낀 효과와 주반장의 변화는 내게 확신을 주었다.
그래서 이 운동을 할 때 아이들이 앞에서 왔다갔다거리면 먼저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이거 애들이 배우면 좋을 텐데. 저 작은 놈을 빨리 잡아서 오금희를 가르치면 좋을 텐데.” 여자아이들한테는 과격하지도 않고 어린 시절부터 이 운동을 하면 양생이 되여 에너지도 많아질 것 같고 신체도 곧고 바르게 클 것 같고 건강하고 외형적으로 보기도 좋게 키도 커질 것 같았다.
또한 안마를 통해 성장판을 자극하는 것도 아이들한테는 좋을 것이 확실한데 정작 아이는 배우려고 하지를 않으니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배우게 하기 위해서 먼저 아내를 배우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첫 번째인데 이것이 참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금희를 배울 때부터 아내에게 수없이 잘 난척하고 배우라고 강요하고 해서 이제는 대화에 “오”자만 나와도 표정이 달라진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건방을 많이 부렸다. 그러나 앞으로는 말로만은 안 통할 것 같고 이제는 열심히 수련해서 sample를 멋있게 만드는 방법이 정공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sample이 좋아져서 즉 나에게도 변화가 생겨 몸이 날씬해지고 건강해져서 감기 같은 잡병에 걸리지 않게 되면(실제 몸은 아직 날씬 해 지지는 않았지만 요새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을 본 아내가 혹시 배우게 되지 않을 가하는 기대가 있고 또한 그렇게 되면 딸들도 오금희를 배우고 싶어 할 테니깐 그 때 오금희를 전수해 주고 내친 김에 앞으로 사위들까지 전수 하면 어떨 가하는 계획을 잡고 장기 플랜을 짜게 되었다.
그 때에는 아마 임독 양맥이 트여 있지 않을 까 기대해 본다. 이런 꿈들을 갖게 만들고 심신으로도 집중하게 만드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기프랜을 짤 수 있게 만드는 힘을 주는 것과 동시에 늙어 죽을 때까지도 할 수 있는 놀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나의 행운이라고 표현 할 수밖에 없다.
기연을 주신 화타조사님, 김성기, 박윤선 교수님 부부와 최정식사부님께 감사 드립니다. 또한 수련할 때 도와주신 여러 선배님께 감사 드립니다. 1년 동안 황금 같은 시간인 토요일 6시에 나와서 서로 의지하며 배우다가 이번에 중급을 졸업한 우리 15기 동료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열심히 수련하셔서 한 100년 뒤에 함께 모여 오금희 한차례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