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과대학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나는 ‘도’나 ‘진리’에 대해 논리나 이성으로서가 아닌 직관적으로
또는 심적으로 터득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불교 선종에서 선문답을 통해 일순간에 퍼뜩 깨치는 그런 무언가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해탈의 경지도 꿈꾸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마음의 평화를 얻겠답시고 오쇼 라즈니쉬나 동양철학, 명상에 관한 책들도 읽어보고 책에서 나오는 내용을 겁도 없이 따라해 보기도 했었다.
대체로 그런 책들에서는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는 법에 대해 나온다. 난 엄마를 닮아서 몸이 매우 뻣뻣한 편이다. 그래서 책에서 나온 대로 가부좌를 틀수가 없었다. 게다가 척주의 요추 1번과 2번이 튀어나와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도 허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는 불편함이 따른다. 할 수 없이 요량껏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생각을 집중하고 책에 나온 대로 흉내내보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 만큼 나는 무언가를 일순간에 알고 싶었다.
어느 날 하루는 역시나 명상서적을 읽으면서 다시 책에서 나온 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반가부좌를 틀고 방석위에 앉아서 눈을 감고 숨을 들이 쉬고 내쉬고..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속에서부터 구토가 올라오는 것이었다. 식은땀이 쫙 나면서 화장실에서 몇 번 헛구역질을 하고는 그 후로는 명상과 깨침에 대한 선망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정말 놀랬기 때문이다. 그때는 호흡을 잘못해서 기가 상역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을 고등학생 시절이라, 겁만 잔뜩 집어먹고는 다시는 가부좌를 하지 않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나는 논리보다는 직관이,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발달되어 있는 아이기에 여러 좋으신 선생님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어떤 사이비나 신흥종교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내 성향이 그러했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나를 지도하시는 선생님들이 아셨으면 ‘사특하다’ 혹은 ‘무모하다’라고 경을 치셨을 일이다.
오금희의 박윤선 선생님도 정도와 사도를 분명히 구분하시는 분이셨다. 오금희 수련 중에서 처음에는 아쉽게 여겼지만 지금은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이와 관계가 있다. 오금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학교 선배의 권유로 인해서였다. 소개 받기로 ‘오금희는 치료기공이고, 기공의 원류이고, 몸에 무리도 없이 정말 좋다’라고 들어서 기 라는 것에 대한 실체를 느껴볼 수 있지 않나 하는 기대를 품고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한번 데인 경험이 있어서 내공보다는 외공을 해야겠다는 강한 욕구를 품고 있다가 오금희를 만났기에 그 기대는 더욱 컸다.
사실 나는 한의과 대학에 들어오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기공, 기체조였다. 입학시절 꿈은 기공 동아리에 들어서 열심히 기공을 연마해서 환자들에게 기치료도 하고, 내 몸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마 TV의 기인열전같은 프로그램에 도사가 나와서 기를 가지고 손 한번 내뻗으면 100m 앞 사람을 쓰러뜨리는 부류의 것을 꿈꿨던 듯싶다. 그러나 웬걸...내가 입학한 경원대 한의대에는 기공 동아리는커녕 기공강좌조차 없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동아리는 없지만 태극권을 수련하는 선배가 있었기에 따로 배우려고도 했다. 하지만 사적으로 하는 수련이라 배우는 것도 체계적이지 못했고 갖가지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던 차에 만난 것이 오금희였던 것이다.
기공의 원류라고 하기에 오금희를 하면 모든 기공의 기초는 섭렵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역사도 오래 된 외공이라고 하니 마치 기공의 왕이라도 되는 양 여겼다. (첫 OT를 못 간 것이 허황된 생각을 하게한 것이다.) 그러나 박윤선 선생님은 기감을 느껴 보라든지, 뭐가 앞에 보인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일체 나오지 못하게끔 오금희를 가르치셨다. 나의 학교 선배가 하는 호흡수련에서는 잘만하면 전시대 사람들을 만나고 올 수도 있다고도 하였고, 그것이나마 배우고자 했을 때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좀 위험하다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오금희는 수련에 있어서의 ‘단계’와 나의 한탕주의적인 성격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수련을 시작한지 서너달 동안은 오금희를 하러 다니면서도 의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가장 큰 이유로는 허리가 계속 아파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키는 큰 편인데 알맹이는 실하지 못 한편이라서 허리부분과 내장 장기가 약한 편이다. 또 항상 자세가 구부정한 학생 이다보니 요추가 밖으로 튀어나와서 허리도 바르지 못하다. 그래서 조금만 오래 걷거나 서있으면 허리가 자주 쑤시고 아프다. 오금희를 하러 갔더니 한번 가면 적어도 두 시간 동안은 서있어야 하니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게다가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아니고 팔과 다리를 휘둘러야 하니 허리가 더 쑤셔왔다. 다른 날에는 두 시간 동안 걸어 다녀도 그렇게는 안 아팠을 것 같은데 오금희만 하면 왜 그렇게 아팠는지. 마치 높은 산 등반이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오금희를 다녀온 토요일 저녁은 파스를 허리에 덕지덕지 붙인 채 누워있어야 했다. 가족들은 몸에 좋다는 기공한다면서 허리는 왜 아픈 것이냐고 실소하면서 물었다. 그래서 오금희를 내가 제대로 맞게 배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오금희가 허리에 무리가 가게 하는 운동인건지 자주 헷갈렸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넉 달째쯤 되자 어느 날인가부터 오금희를 해도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나의 어설픈 짐작이지만 웅부신요 같은 동작에서 시선은 앞을 바라보면서 허리를 굽히다보니 구부정한 척추가 아프지 않다고 할 리가 만무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자꾸 그런 동작을 반복하다보니 허리가 펴지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허리를 감싸고 있는 근육과 인대들이 익숙해지고 단단해져서 통증을 덜 느끼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아주 어린 꼬마 때부터 엄마와 쇼핑을 다니면 금새 피곤해져서 할머니처럼 허리 아프다고 저쪽 가서 앉아 있곤 했었다. 오금희를 하면서 허리가 좀더 강해진 것 같아 다행스럽다.
허리가 좋아진 것 이외에 가장 좋고 또 신기하게 여겼던 효능은 바로 감기에 관한 것이다. 난 환절기가 되거나 감기가 유행처럼 번지면 꼭 한번씩 걸리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고3때는 대입 때문에 어떻게 하면 감기에 안 걸리고 넘어갈 수 있을까를 궁리해보기도 하였다. 지금도 시험기간이 되면 체력이 달리다 보니 감기기운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오금희를 열심히 한 기간에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말 오금희 때문에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인가 궁금해졌던 나는 오금희를 하는 동안 일부러 감기 걸린 친구의 음료수를 빼앗아서 마셔보기도 하고 몸을 좀 피곤하게 굴려보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정말 감기에 걸리지 않고 계속 유행감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제대로 된 원인은 알 수가 없지만 그저 운동의 효능으로 치기에는 뭔가 아쉬운 부분은 남는다. 다른 운동을 했더라도 이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 다음으로 좋아진 점은 바로 생리통이다. 여성들 대부분의 질병은 월경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즉 血 의 문제가 많은데 난 생리통이 심해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중 고등학교 때는 월경 첫날이 되면 거의 학교에서 죽어지내야만 했다. 통증 때문에 허리도 펼 수 없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서 진통제류의 약으로 버텨야했다. 한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도 ‘제일 먼저 고쳐야 할 것은 나의 생리통!’이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오금희를 하기 전까지만, 아니 시작하고 나서도 몇 달 동안은 꼭 월경 첫날에는 약을 먹어줘야 살 것 같았다. 하루는 오금희를 배우러 갔다가 선생님께서 월경불순이나 생리통에도 좋다는 말씀을 해 주시길래 월경 시작하기 한 2주전부터 열심히 해본 적이 있었다. 과연 그 달에 했던 월경때는 약을 먹지 않을 정도로 통증이 많이 경감되어서 스스로 놀라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달에는 오금희를 소홀히 했더니 다시 통증이 커졌었다. 생리통이 가장 좋아진 것은 오금희에서 안마동작이 들어간 후부터이다. 안마 동작을 배우고 나서도 그 부분은 허리를 굽히고 오랫동안 머물러야 하기에 집에서 빼놓고 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조금씩 하기를 늘였더니 생리통에 가장 효과가 있었다. 안마 동작을 빼놓고 한번 하는 것 보다 동작을 다 넣어서 끝내면 훨씬 생리통이 줄었던 것이다. 생리통은 한의학적으로 어혈을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오금희를 함으로써 뭉친 어혈을 푸는 작용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해보고 있다. 그리고 약을 먹어서 낫는 것보다 몸이 스스로 건강해지는 모습이 더 건강해지는 방법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 외에도 뻣뻣하기만한 내 몸이 자연스럽게 많이 부드러워지고 평형감각도 더 좋아졌다. 나는 방광경 라인을 타고 뒷다리와 허리 쪽이 뻣뻣하기 만했었는데 오금희의 느리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뻣뻣한 근육과 관절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느림’과 ‘자연스러움’이다. 요즘 요가나 필라테스, 태보 같은 운동요법들이 사람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데 오금희와의 다른 점을 꼽으라면 그것은 ‘자연스러움’이었다. 다른 어떤 운동요법도 따라올 수 없는 자연스럽고 완만히 이어지는 동작이 오금희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는 주로 오금희를 일종의 체조로 생각하다시피 하여 느낀 바를 몇 자 적어본 것이다. 그러나 오금희는 체조로 끝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안다. 이것은 분명히 수련이고 앞으로의 보다 높은 차원의 수준으로 가는 과정 중에서 얻을 수 있는, 정말 백분의 일도 안 되는 경험과 효과라고 난 믿고 있다. 이것저것 핑계대면서 수련을 게을리 해왔던 지난 시간들을 반성하며, 꾸준히 수련하여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는 날을 꿈꿔본다.
또는 심적으로 터득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불교 선종에서 선문답을 통해 일순간에 퍼뜩 깨치는 그런 무언가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해탈의 경지도 꿈꾸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마음의 평화를 얻겠답시고 오쇼 라즈니쉬나 동양철학, 명상에 관한 책들도 읽어보고 책에서 나오는 내용을 겁도 없이 따라해 보기도 했었다.
대체로 그런 책들에서는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는 법에 대해 나온다. 난 엄마를 닮아서 몸이 매우 뻣뻣한 편이다. 그래서 책에서 나온 대로 가부좌를 틀수가 없었다. 게다가 척주의 요추 1번과 2번이 튀어나와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도 허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는 불편함이 따른다. 할 수 없이 요량껏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생각을 집중하고 책에 나온 대로 흉내내보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 만큼 나는 무언가를 일순간에 알고 싶었다.
어느 날 하루는 역시나 명상서적을 읽으면서 다시 책에서 나온 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반가부좌를 틀고 방석위에 앉아서 눈을 감고 숨을 들이 쉬고 내쉬고..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속에서부터 구토가 올라오는 것이었다. 식은땀이 쫙 나면서 화장실에서 몇 번 헛구역질을 하고는 그 후로는 명상과 깨침에 대한 선망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정말 놀랬기 때문이다. 그때는 호흡을 잘못해서 기가 상역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을 고등학생 시절이라, 겁만 잔뜩 집어먹고는 다시는 가부좌를 하지 않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나는 논리보다는 직관이,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발달되어 있는 아이기에 여러 좋으신 선생님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어떤 사이비나 신흥종교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내 성향이 그러했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나를 지도하시는 선생님들이 아셨으면 ‘사특하다’ 혹은 ‘무모하다’라고 경을 치셨을 일이다.
오금희의 박윤선 선생님도 정도와 사도를 분명히 구분하시는 분이셨다. 오금희 수련 중에서 처음에는 아쉽게 여겼지만 지금은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이와 관계가 있다. 오금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학교 선배의 권유로 인해서였다. 소개 받기로 ‘오금희는 치료기공이고, 기공의 원류이고, 몸에 무리도 없이 정말 좋다’라고 들어서 기 라는 것에 대한 실체를 느껴볼 수 있지 않나 하는 기대를 품고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한번 데인 경험이 있어서 내공보다는 외공을 해야겠다는 강한 욕구를 품고 있다가 오금희를 만났기에 그 기대는 더욱 컸다.
사실 나는 한의과 대학에 들어오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기공, 기체조였다. 입학시절 꿈은 기공 동아리에 들어서 열심히 기공을 연마해서 환자들에게 기치료도 하고, 내 몸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마 TV의 기인열전같은 프로그램에 도사가 나와서 기를 가지고 손 한번 내뻗으면 100m 앞 사람을 쓰러뜨리는 부류의 것을 꿈꿨던 듯싶다. 그러나 웬걸...내가 입학한 경원대 한의대에는 기공 동아리는커녕 기공강좌조차 없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동아리는 없지만 태극권을 수련하는 선배가 있었기에 따로 배우려고도 했다. 하지만 사적으로 하는 수련이라 배우는 것도 체계적이지 못했고 갖가지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던 차에 만난 것이 오금희였던 것이다.
기공의 원류라고 하기에 오금희를 하면 모든 기공의 기초는 섭렵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역사도 오래 된 외공이라고 하니 마치 기공의 왕이라도 되는 양 여겼다. (첫 OT를 못 간 것이 허황된 생각을 하게한 것이다.) 그러나 박윤선 선생님은 기감을 느껴 보라든지, 뭐가 앞에 보인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일체 나오지 못하게끔 오금희를 가르치셨다. 나의 학교 선배가 하는 호흡수련에서는 잘만하면 전시대 사람들을 만나고 올 수도 있다고도 하였고, 그것이나마 배우고자 했을 때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좀 위험하다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오금희는 수련에 있어서의 ‘단계’와 나의 한탕주의적인 성격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수련을 시작한지 서너달 동안은 오금희를 하러 다니면서도 의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가장 큰 이유로는 허리가 계속 아파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키는 큰 편인데 알맹이는 실하지 못 한편이라서 허리부분과 내장 장기가 약한 편이다. 또 항상 자세가 구부정한 학생 이다보니 요추가 밖으로 튀어나와서 허리도 바르지 못하다. 그래서 조금만 오래 걷거나 서있으면 허리가 자주 쑤시고 아프다. 오금희를 하러 갔더니 한번 가면 적어도 두 시간 동안은 서있어야 하니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게다가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아니고 팔과 다리를 휘둘러야 하니 허리가 더 쑤셔왔다. 다른 날에는 두 시간 동안 걸어 다녀도 그렇게는 안 아팠을 것 같은데 오금희만 하면 왜 그렇게 아팠는지. 마치 높은 산 등반이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오금희를 다녀온 토요일 저녁은 파스를 허리에 덕지덕지 붙인 채 누워있어야 했다. 가족들은 몸에 좋다는 기공한다면서 허리는 왜 아픈 것이냐고 실소하면서 물었다. 그래서 오금희를 내가 제대로 맞게 배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오금희가 허리에 무리가 가게 하는 운동인건지 자주 헷갈렸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넉 달째쯤 되자 어느 날인가부터 오금희를 해도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나의 어설픈 짐작이지만 웅부신요 같은 동작에서 시선은 앞을 바라보면서 허리를 굽히다보니 구부정한 척추가 아프지 않다고 할 리가 만무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자꾸 그런 동작을 반복하다보니 허리가 펴지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허리를 감싸고 있는 근육과 인대들이 익숙해지고 단단해져서 통증을 덜 느끼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아주 어린 꼬마 때부터 엄마와 쇼핑을 다니면 금새 피곤해져서 할머니처럼 허리 아프다고 저쪽 가서 앉아 있곤 했었다. 오금희를 하면서 허리가 좀더 강해진 것 같아 다행스럽다.
허리가 좋아진 것 이외에 가장 좋고 또 신기하게 여겼던 효능은 바로 감기에 관한 것이다. 난 환절기가 되거나 감기가 유행처럼 번지면 꼭 한번씩 걸리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고3때는 대입 때문에 어떻게 하면 감기에 안 걸리고 넘어갈 수 있을까를 궁리해보기도 하였다. 지금도 시험기간이 되면 체력이 달리다 보니 감기기운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오금희를 열심히 한 기간에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말 오금희 때문에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인가 궁금해졌던 나는 오금희를 하는 동안 일부러 감기 걸린 친구의 음료수를 빼앗아서 마셔보기도 하고 몸을 좀 피곤하게 굴려보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정말 감기에 걸리지 않고 계속 유행감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제대로 된 원인은 알 수가 없지만 그저 운동의 효능으로 치기에는 뭔가 아쉬운 부분은 남는다. 다른 운동을 했더라도 이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 다음으로 좋아진 점은 바로 생리통이다. 여성들 대부분의 질병은 월경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즉 血 의 문제가 많은데 난 생리통이 심해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중 고등학교 때는 월경 첫날이 되면 거의 학교에서 죽어지내야만 했다. 통증 때문에 허리도 펼 수 없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서 진통제류의 약으로 버텨야했다. 한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도 ‘제일 먼저 고쳐야 할 것은 나의 생리통!’이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오금희를 하기 전까지만, 아니 시작하고 나서도 몇 달 동안은 꼭 월경 첫날에는 약을 먹어줘야 살 것 같았다. 하루는 오금희를 배우러 갔다가 선생님께서 월경불순이나 생리통에도 좋다는 말씀을 해 주시길래 월경 시작하기 한 2주전부터 열심히 해본 적이 있었다. 과연 그 달에 했던 월경때는 약을 먹지 않을 정도로 통증이 많이 경감되어서 스스로 놀라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달에는 오금희를 소홀히 했더니 다시 통증이 커졌었다. 생리통이 가장 좋아진 것은 오금희에서 안마동작이 들어간 후부터이다. 안마 동작을 배우고 나서도 그 부분은 허리를 굽히고 오랫동안 머물러야 하기에 집에서 빼놓고 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조금씩 하기를 늘였더니 생리통에 가장 효과가 있었다. 안마 동작을 빼놓고 한번 하는 것 보다 동작을 다 넣어서 끝내면 훨씬 생리통이 줄었던 것이다. 생리통은 한의학적으로 어혈을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오금희를 함으로써 뭉친 어혈을 푸는 작용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해보고 있다. 그리고 약을 먹어서 낫는 것보다 몸이 스스로 건강해지는 모습이 더 건강해지는 방법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 외에도 뻣뻣하기만한 내 몸이 자연스럽게 많이 부드러워지고 평형감각도 더 좋아졌다. 나는 방광경 라인을 타고 뒷다리와 허리 쪽이 뻣뻣하기 만했었는데 오금희의 느리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뻣뻣한 근육과 관절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느림’과 ‘자연스러움’이다. 요즘 요가나 필라테스, 태보 같은 운동요법들이 사람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데 오금희와의 다른 점을 꼽으라면 그것은 ‘자연스러움’이었다. 다른 어떤 운동요법도 따라올 수 없는 자연스럽고 완만히 이어지는 동작이 오금희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는 주로 오금희를 일종의 체조로 생각하다시피 하여 느낀 바를 몇 자 적어본 것이다. 그러나 오금희는 체조로 끝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안다. 이것은 분명히 수련이고 앞으로의 보다 높은 차원의 수준으로 가는 과정 중에서 얻을 수 있는, 정말 백분의 일도 안 되는 경험과 효과라고 난 믿고 있다. 이것저것 핑계대면서 수련을 게을리 해왔던 지난 시간들을 반성하며, 꾸준히 수련하여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는 날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