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을 만나면 운동이 꼭 대화의 화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퇴근후 헬스를 꾸준히 하니 몸에 균형이 잡힌다거나, 재즈댄스를 하면서 스트레칭을 자주 하니 안쓰던 근육을 풀어준다는 등의 이야기들 말이다. 운동하는걸 싫어하고 운동에 대한 부담감마저 느끼고 있던 나였지만 매스컴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웰빙’이니 ‘2,30대의 자기관리’ 따위의 말을 들을 때마다 자극을 받은건 사실이다. 게다가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쳤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을 꾸준히 해야한다는 권유도 많이 받았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먼저 ‘오금희’라는 운동을 접하셨고, 나는 집에서 매일 연습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처음 아버지께서 연습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솔직히 ‘절대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상하게 동물 흉내나 내고 특히 <백원헌과> 같은 동작은 얼마나 웃기고 이상했던지...다른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몇 개월이 지났다. 2월 초쯤 누워 있는데 이상하게 허리도 아프고 몸이 안 좋았다. 그 전까진 아버지께서 나에게 열심히 ‘오금희’의 좋은 점을 말씀에 주시며 함께 하자고 권유만 하셨었는데 그 날 힘들어하는 날 보시곤 등록해 놓을 테니 시간 맞춰서 엄마와 함께 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내 의지로 선택한 운동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황금같은 토요일 오후 6시에 운동을 해야 한다니 너무 부담스러웠다. 운동에 한해서는 늘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었기 때문에 ‘오금희’를 시작할 때도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몇 번 다니다 중도에 그만 둘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중급반을 마치고 수련기를 쓰게 되었다.
‘오금희’를 시작할 때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몸의 유연성 기르기였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몸이 너무 뻣뻣해서 체육 시간에 유연성을 요하는 종목 시험은 항상 최저 점수를 받았고, 남녀 공학을 다녀서 무용 시간이 없다는 것을 늘 감사하며 생활했다. 선생님이 된 지금은 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아이들과 국민체조를 할 때 ‘등배운동’ 할 차례가 되면 참 난감했다. 팔이 땅에 닿질 않았으니 말이다. ‘오금희’를 하러 간 날도 <웅부신요>를 하는데 나만 팔이 땅에 닿질 않아서 좀 당황했었다. 그 때 선생님께서 “다른 사람이 손바닥이 땋에 닿는다고 따라하려고 무리하면 절대 안된다. 매일 연습해서 조금씩 조금씨 나아지면 된다. 오금희는 자기 몸에 맞춰서 하는 운동이다.”라는 말씀을 해 주셔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리곤 <웅반족첨>을 배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팔이 발 끝에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금희’를 시작하고 처음 느낀 성취감이어서 그 때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오금희’를 통해 얻은 것이 하나 더 있다면 혈액순환이 잘 된다는 점이다. 유난히 손발이 찬 나는 날씨가 조금만 추워져도 손이 시려워서 장갑을 껴야 하고 손이 꽁꽁 얼면서 머리도 아프고 그랬었다. 다른 친구들 손과 비교해보면 친구들 손바닥이 붉은 빛은 띄고 있는데 반해 내 손바닥은 거의 하얀색에 가까웠다. 그 땐 내 피부가 하얘서 그런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오금희’를 하고 나서 그게 아니라는걸 알게 되었다. ‘오금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고 나면 내 손에서 열이 나고, 손바닥이 아주 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래서 요즘엔 교실에 혼자 있을 때 손이 시렵다고 느껴지면 가끔 예비공을 하곤 한다. 그러면 박수를 치고, 손을 비비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미비하지만 내가 ‘오금희’를 하면서 느낀 것을 적는 수련기를 쓰게 되니 참 뿌듯하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중급반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된 건 내 자신의 노력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친구들과의 약속, 모임이 많은 토요일날 그 유혹을 뿌리치고 ‘오금희’에 출석하도록 옆에서 늘 잔소리(?) 해 주셨던 부모님, 내 몸 상태를 아시고 제일 어설프게 동작하는데도 “잘한다, 훨씬 부드러워졌다”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선생님, 우리가 운동할 때 옆에서 잘못된 부분을 자상하게 하나하나 꼼꼼히 가르쳐 주셨던 선배 선생님들, 마지막으로 늘 열심히 땀 흘리며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 나에게 자극을 주셨던 동료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오금희’를 통해서 알게 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먼저 ‘오금희’라는 운동을 접하셨고, 나는 집에서 매일 연습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처음 아버지께서 연습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솔직히 ‘절대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상하게 동물 흉내나 내고 특히 <백원헌과> 같은 동작은 얼마나 웃기고 이상했던지...다른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몇 개월이 지났다. 2월 초쯤 누워 있는데 이상하게 허리도 아프고 몸이 안 좋았다. 그 전까진 아버지께서 나에게 열심히 ‘오금희’의 좋은 점을 말씀에 주시며 함께 하자고 권유만 하셨었는데 그 날 힘들어하는 날 보시곤 등록해 놓을 테니 시간 맞춰서 엄마와 함께 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내 의지로 선택한 운동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황금같은 토요일 오후 6시에 운동을 해야 한다니 너무 부담스러웠다. 운동에 한해서는 늘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었기 때문에 ‘오금희’를 시작할 때도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몇 번 다니다 중도에 그만 둘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중급반을 마치고 수련기를 쓰게 되었다.
‘오금희’를 시작할 때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몸의 유연성 기르기였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몸이 너무 뻣뻣해서 체육 시간에 유연성을 요하는 종목 시험은 항상 최저 점수를 받았고, 남녀 공학을 다녀서 무용 시간이 없다는 것을 늘 감사하며 생활했다. 선생님이 된 지금은 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아이들과 국민체조를 할 때 ‘등배운동’ 할 차례가 되면 참 난감했다. 팔이 땅에 닿질 않았으니 말이다. ‘오금희’를 하러 간 날도 <웅부신요>를 하는데 나만 팔이 땅에 닿질 않아서 좀 당황했었다. 그 때 선생님께서 “다른 사람이 손바닥이 땋에 닿는다고 따라하려고 무리하면 절대 안된다. 매일 연습해서 조금씩 조금씨 나아지면 된다. 오금희는 자기 몸에 맞춰서 하는 운동이다.”라는 말씀을 해 주셔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리곤 <웅반족첨>을 배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팔이 발 끝에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금희’를 시작하고 처음 느낀 성취감이어서 그 때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오금희’를 통해 얻은 것이 하나 더 있다면 혈액순환이 잘 된다는 점이다. 유난히 손발이 찬 나는 날씨가 조금만 추워져도 손이 시려워서 장갑을 껴야 하고 손이 꽁꽁 얼면서 머리도 아프고 그랬었다. 다른 친구들 손과 비교해보면 친구들 손바닥이 붉은 빛은 띄고 있는데 반해 내 손바닥은 거의 하얀색에 가까웠다. 그 땐 내 피부가 하얘서 그런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오금희’를 하고 나서 그게 아니라는걸 알게 되었다. ‘오금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고 나면 내 손에서 열이 나고, 손바닥이 아주 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래서 요즘엔 교실에 혼자 있을 때 손이 시렵다고 느껴지면 가끔 예비공을 하곤 한다. 그러면 박수를 치고, 손을 비비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미비하지만 내가 ‘오금희’를 하면서 느낀 것을 적는 수련기를 쓰게 되니 참 뿌듯하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중급반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된 건 내 자신의 노력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친구들과의 약속, 모임이 많은 토요일날 그 유혹을 뿌리치고 ‘오금희’에 출석하도록 옆에서 늘 잔소리(?) 해 주셨던 부모님, 내 몸 상태를 아시고 제일 어설프게 동작하는데도 “잘한다, 훨씬 부드러워졌다”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선생님, 우리가 운동할 때 옆에서 잘못된 부분을 자상하게 하나하나 꼼꼼히 가르쳐 주셨던 선배 선생님들, 마지막으로 늘 열심히 땀 흘리며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 나에게 자극을 주셨던 동료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오금희’를 통해서 알게 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