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타 오금희’ 돌이켜 보면, 참으로 인연이 깊다. 오금희와의 인연으로 말하자면 벌써 10여년 전을 떠올린다. 당시 한의학도였던 나는 예과생으로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호기심 많은 학생이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던 중 우연히 화타에 대한 책을 발견하였다. 한의학에서 화타는 여러 방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의성(醫聖)으로 추앙받는 존재이다. 책을 읽던 중에 도인술 부분에서 오금희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였다. 당시 나는 운동이나 무술, 기공 등에 관심이 많던 차에, 오금희에 대한 내용을 보자 상당한 관심과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마침 책의 말미에 ‘화타 오금희’에 대한 내용이 그림과 함께 나와 있어, 그 부분을 따로 복사하고 혼자서 흉내를 내어 보곤 하였다. 하지만 독학(?)에는 한계가 있어, 바쁜 생활 속에 살다보니, 오금희는 차츰 기억의 한 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학창시절 나는 합기도, 태권도, 검도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던 나는 이러한 운동들이 생활의 활력이 되었다. 그러던 차에 주변에서 태극권이나 소림권, 현무, 기천 등을 하는 친구들을 보게 되었다.(당시 한의대에는 기공 동아리가 다수 있었다.) 그 중에서 태극권을 한 번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참으로 좋아 보였다. 그리고 시범을 보이신 분께서 오금희에 대한 내용도 언급을 해 주셨다. 그리고는 태극권 또한 다른 도시 생활을 하는 젊은 사람들의 핑계와 같이, 바쁘다는 명목아래 맛만 보고서 정작 수련은 해 보지 못 했다
그리고 졸업을 하게 되고, 몇 해가 지났다. 여느 도시의 직장인과 같이 하루하루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고, 몇 해가 지났는지도 세어 볼 마음의 여유도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가끔 한의대 졸업동기 사이트에서 3기 조미숙 선생님의 오금희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오금희에 대한 오래된 기억을 되새기며 괜찮겠다는 생각만을 가진 채, 또 다시 바쁜 생활 속에서 잊어버리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2003년 초, 어느 겨울날, 7기 동기생인 정은아 선생님이 오금희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조미숙 선생님은 자주 볼 기회가 없었지만, 같은 병원 동기인 정은아 선생님은 병원내에서 자주 볼 기회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오금희에 대한 언급과 얼마간 하였는데 벌써 몸이 많이 좋아 졌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오금희와의 인연은 이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오금희를 시작하던 2003년 겨울에 나는 몸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학창시절 근육 운동이나 격한 운동 위주로 하였던 이유로 인해, 졸업후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자 온몸의 근육이 다 풀리고 약해져, 평소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보다도 몸이 건강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학창시절 했던 운동이 내 몸에 맞는, 또한 평생할 수 있는 운동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던 나에게 오금희는 새로운 활력과 운동의 기쁨을 주게 된 것이다.
평소 매주 토요일 오후는 나에게 음주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 잡담을 나누며 헛되이 보내기 쉬운 그런 날들이었다. 오금희를 시작하게 된 이후부터는 이러한 불필요한 약속들이 없어지고, 몸과 마음을 수양할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에 한번 생긴 셈이 되었다. 8개월가량 오금희를 배워 오면서 한 가지 아쉬운 사항이 있다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말 하루에 한번씩 매일 규칙적으로 하지 못 한 것이 후회가 된다. 몸이 시작하기 전보다는 많이 좋아 졌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했을 경우를 생각하면 아직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적으로 부지런하지 못 한 내 자신의 탓이라고 반성해 본다. 하지만 오금희를 하는 토요일이 지나면 몸과 마음이 너무 가벼워지고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다른 운동은 주로 신체의 건강을 추구하지만, 기공의 원류인 오금희의 경우 여느 동양학문과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수양이 저절로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10년 인연의 오금희 초급반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뿌듯한 마음을 가진다. 또한 8개월 동안의 시간동안 무사히 마쳤지만 열심히 하지 못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뒤이어 시작하게 되는 중급반에서는 더욱 열심히 하여, 열심히 지도해 주시는 김성기, 박윤선 교수님과 여러 사범님들께 부끄럽지 않는 제자가 될 것을 약속하며, 너무나도 분위기 좋은 7기 동기생 여러분들과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마음뿐이다.
학창시절 나는 합기도, 태권도, 검도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던 나는 이러한 운동들이 생활의 활력이 되었다. 그러던 차에 주변에서 태극권이나 소림권, 현무, 기천 등을 하는 친구들을 보게 되었다.(당시 한의대에는 기공 동아리가 다수 있었다.) 그 중에서 태극권을 한 번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참으로 좋아 보였다. 그리고 시범을 보이신 분께서 오금희에 대한 내용도 언급을 해 주셨다. 그리고는 태극권 또한 다른 도시 생활을 하는 젊은 사람들의 핑계와 같이, 바쁘다는 명목아래 맛만 보고서 정작 수련은 해 보지 못 했다
그리고 졸업을 하게 되고, 몇 해가 지났다. 여느 도시의 직장인과 같이 하루하루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고, 몇 해가 지났는지도 세어 볼 마음의 여유도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가끔 한의대 졸업동기 사이트에서 3기 조미숙 선생님의 오금희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오금희에 대한 오래된 기억을 되새기며 괜찮겠다는 생각만을 가진 채, 또 다시 바쁜 생활 속에서 잊어버리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2003년 초, 어느 겨울날, 7기 동기생인 정은아 선생님이 오금희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조미숙 선생님은 자주 볼 기회가 없었지만, 같은 병원 동기인 정은아 선생님은 병원내에서 자주 볼 기회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오금희에 대한 언급과 얼마간 하였는데 벌써 몸이 많이 좋아 졌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오금희와의 인연은 이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오금희를 시작하던 2003년 겨울에 나는 몸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학창시절 근육 운동이나 격한 운동 위주로 하였던 이유로 인해, 졸업후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자 온몸의 근육이 다 풀리고 약해져, 평소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보다도 몸이 건강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학창시절 했던 운동이 내 몸에 맞는, 또한 평생할 수 있는 운동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던 나에게 오금희는 새로운 활력과 운동의 기쁨을 주게 된 것이다.
평소 매주 토요일 오후는 나에게 음주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 잡담을 나누며 헛되이 보내기 쉬운 그런 날들이었다. 오금희를 시작하게 된 이후부터는 이러한 불필요한 약속들이 없어지고, 몸과 마음을 수양할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에 한번 생긴 셈이 되었다. 8개월가량 오금희를 배워 오면서 한 가지 아쉬운 사항이 있다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말 하루에 한번씩 매일 규칙적으로 하지 못 한 것이 후회가 된다. 몸이 시작하기 전보다는 많이 좋아 졌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했을 경우를 생각하면 아직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적으로 부지런하지 못 한 내 자신의 탓이라고 반성해 본다. 하지만 오금희를 하는 토요일이 지나면 몸과 마음이 너무 가벼워지고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다른 운동은 주로 신체의 건강을 추구하지만, 기공의 원류인 오금희의 경우 여느 동양학문과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수양이 저절로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10년 인연의 오금희 초급반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뿌듯한 마음을 가진다. 또한 8개월 동안의 시간동안 무사히 마쳤지만 열심히 하지 못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뒤이어 시작하게 되는 중급반에서는 더욱 열심히 하여, 열심히 지도해 주시는 김성기, 박윤선 교수님과 여러 사범님들께 부끄럽지 않는 제자가 될 것을 약속하며, 너무나도 분위기 좋은 7기 동기생 여러분들과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