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초봄의 일이니 벌써 3년 반이 흘렀다. 오금희를 접하게 된 역사적인 날이 말이다. 엄격히 말하면, ‘배우게 된 날’이 맞다. 600여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있는 은행나무와 자연적이고 인간적이고 학문적 건축의 최고인 명륜당의 양현재에서 기숙하던 학부시절(그러고 보니 1998년이다.) 이미 오금희와의 인연은 시작된 셈이다. 새벽녘 혹은 아침나절 그 나무 사이의 공터에서 손을 올리고 비틀고 이상한 모양을 하시던 선생님을 보았으니 말이다. 직접 건네지는 못하고 그저 마음 한켠으로만 동경했었다.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처음엔 참 열심히 했었다. “매일 9번 이상 예비공을 하셔야 합니다.”라는 선생님의 말에. 계단을 오르면 숨이 가쁘고 등줄기가 찌릿찌릿 하며 맥없던 내가 점차 발걸음이 가뿐해지고 몸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는 한참을 신기해 했었다. 그땐 애써 오금희 보다는 먹는 것의 영향이 더 컸겠지, 아님 다른 영향도 있었겠지 하고 부정했었다. 의심도 났고 다 배운것도 아니요 그저 몇 달 한 것일 뿐인데 효과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고 말이다.
지금에서야 그게 오금희의 효과였음을 알겠다. 하루에 내 몸을 단 5분 만이라도 아니 1분 만이라도 편안하게 놓아 둔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내 몸의 세세한 부분까지 참 바른 자세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취해보 적이 있었던가. 그 하나하나의 존재자와 함께 따뜻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던가.
3년 반의 시간. 물론 이제야 중급심사를 통과했지만. 많은 것이 변했음을 직감한다.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처음엔 참 열심히 했었다. “매일 9번 이상 예비공을 하셔야 합니다.”라는 선생님의 말에. 계단을 오르면 숨이 가쁘고 등줄기가 찌릿찌릿 하며 맥없던 내가 점차 발걸음이 가뿐해지고 몸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는 한참을 신기해 했었다. 그땐 애써 오금희 보다는 먹는 것의 영향이 더 컸겠지, 아님 다른 영향도 있었겠지 하고 부정했었다. 의심도 났고 다 배운것도 아니요 그저 몇 달 한 것일 뿐인데 효과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고 말이다.
지금에서야 그게 오금희의 효과였음을 알겠다. 하루에 내 몸을 단 5분 만이라도 아니 1분 만이라도 편안하게 놓아 둔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내 몸의 세세한 부분까지 참 바른 자세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취해보 적이 있었던가. 그 하나하나의 존재자와 함께 따뜻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던가.
3년 반의 시간. 물론 이제야 중급심사를 통과했지만. 많은 것이 변했음을 직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