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타오금희와 나의 인연은, 그 인연의 깊이를 별개로 한다면,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다시 생각하면, 이것도 단순한 나의 착오로 인한 것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화타와 오금희라는 단어를 처음 인지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대학교 4학년 때 ‘경당’이라는 단체에서 24반 민족무예를 수련하면서 다시 한번 그 존재를 어렴풋이 알았고, 다시 20여 년이 지나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직원을 대상으로 수련을 시작하면서 지근거리까지 다가왔으나 그 기회를 붙잡지 못했다.
언젠가 만나게 될 인연이었을까, 결국 2015년 황인철 지도자님을 만나 수련을 시작했고 어느 덧 횟수로 2년째 지속되고 있다. 황 선생님의 지도방식은 내가 느끼기에는 수련자 친화적이다.
지도자의 권위를 내세워 본인의 지도방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수련자가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방식으로 수련을 진행하는데, 본인의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는 수련자 개개인에 맞춰주는 방식이다. 이 문제는 수련자에게는 매우 중요한데, 대부분의 수련자는 처음 한두 달 사이에 수련을 지속할지 포기할지 마음의 결단을 내리기 때문에, 수련자에게 동기 부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2년에 걸쳐 화타오금희를 수련하고 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매주 참석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한 한 걸음 한 걸을 나아가면서 느끼는 오금희 깊이를 조금이나마 엿보면서 앞으로 갈 길이 요원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느끼고 있다.
그 어떤 운동이나 무예도 마찬가지겠지만 오금희야말로 세월의 깊이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켜켜이 쌓인 그 세월을 내 몸으로 체화해 나가는 과정을 묵묵히 감내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이 순간 다시 생각하면, 이것도 단순한 나의 착오로 인한 것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화타와 오금희라는 단어를 처음 인지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대학교 4학년 때 ‘경당’이라는 단체에서 24반 민족무예를 수련하면서 다시 한번 그 존재를 어렴풋이 알았고, 다시 20여 년이 지나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직원을 대상으로 수련을 시작하면서 지근거리까지 다가왔으나 그 기회를 붙잡지 못했다.
언젠가 만나게 될 인연이었을까, 결국 2015년 황인철 지도자님을 만나 수련을 시작했고 어느 덧 횟수로 2년째 지속되고 있다. 황 선생님의 지도방식은 내가 느끼기에는 수련자 친화적이다.
지도자의 권위를 내세워 본인의 지도방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수련자가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방식으로 수련을 진행하는데, 본인의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는 수련자 개개인에 맞춰주는 방식이다. 이 문제는 수련자에게는 매우 중요한데, 대부분의 수련자는 처음 한두 달 사이에 수련을 지속할지 포기할지 마음의 결단을 내리기 때문에, 수련자에게 동기 부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2년에 걸쳐 화타오금희를 수련하고 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매주 참석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한 한 걸음 한 걸을 나아가면서 느끼는 오금희 깊이를 조금이나마 엿보면서 앞으로 갈 길이 요원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느끼고 있다.
그 어떤 운동이나 무예도 마찬가지겠지만 오금희야말로 세월의 깊이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켜켜이 쌓인 그 세월을 내 몸으로 체화해 나가는 과정을 묵묵히 감내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