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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타오금희

정회원 수련기

민 종 덕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바로 오금희가 내게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010년 7월 직장일과 가사를 함께하며 건강이 점점 나빠지자, 우연히 남편이 아는 한의사로부터 오금희에 대한 말을 듣고 수소문하여 서대문 오금희본부에서 46기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부원장님의 우아하고도 아름다운 오금희 동작, 조별로 수업하고 스스로 깨우치도록 한 독특한 수업 방식, 편안하면서 화기애애한 46기 구성원, 그리고 김한섭 선생님을 비롯한 친절한 선배님들 덕분에 금방 오금희 분위기에 젖어들며 그 매력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본래 폐가 좋지 않아 쉽게 지치고 몸이 늘 무거웠는데, 오금희를 시작하면서 점점 몸이 가벼워지고 숨 쉬는 것이 편해지고 폐활량이 느는 것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하면서 오금희가 나에게 아주 잘 맞는 운동이라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저녁이면 가까운 양재 시민의 숲에 산책을 나가 고요한 숲 속에서 남편과 함께 오금희를 하는 것이 하루의 즐거움이 되었다.

한 마리의 우아한 사슴이 되어 뛰어놀기도 하고, 곰이 되어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호랑이가 되어 포효하기도 하고, 영민한 원숭이가 되어 이 나무 저 나무 날렵하게 옮겨 다니며 과일을 따기도 하고,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 비상하기도 하는 등 숲 속에서 하는 오금희는 집안에서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색다른 경험이었다.

매주 토요일 오금희를 마치고 맑은 정신과 가벼운 몸으로 시원한 바람 맞으며 경기대 옆 내리막길을 내려와 음식점에서 한 잔 술을 기울이며 사는 이야기 하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 부부는 오랫동안 생각만 해왔던 귀촌에 대해 결단을 내리고, 지리산 자락의 구례에 둥지를 틀기로 하였다. 나도 전라남도로 내신을 내고, 구례로 내려가면 매주 주말에 서울로 올라와서 오금희를 배우기로 하였다.

그런데 2011년 2월 해남 땅끝에서도 30분이나 배를 타고 더 가야하는 노화도라는 먼 섬으로 발령이 나버렸다. 주말부부 생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더 이상 오금희를 배울 수 없게 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노화도로 발령이 난 후 처음 한 달은 혼자 열심히 하느라고 했지만 어쩌다 며칠 거르면 동작을 잊어버리게 되고 하면서 점점 오금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언젠가 조건이 되면 오금희를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만은 하고 있었다.

2012년 2월, 이번에는 여수의 섬 학교로 발령이 났다.

여수는 마침 정천영 선생님과 노선미 선생님이 사시는 곳이다. 남편과 나는 다시 오금희를 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신이 났다. 연락을 받은 정천영 선생님 부부도 너무 기뻐하셨다.

이후 정천영 선생님 부부와 우리 부부는 매주 토요일 10시 30분 학원에서 오금희를 하게 되었다. 학기 초 다시 섬 학교로 발령이 나면서 상심이 컸던 나머지 독감에 폐렴까지 겹쳐 명예퇴직까지 생각할 정도로 악화되었던 건강이 다시 오금희를 시작하며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전에 배웠지만 다시 예비공부터 시작하는 오금희 초급은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새롭고 귀하게 생각되었다. 몸이 아플 때 배우니 더욱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고, 그렇게 초급이 끝날 때쯤 나는 다시 건강을 되찾았다.

중급이 되어 오금희를 배우면서 또 동작 하나하나가 새로운 깊이와 깨달음으로 다가오면서 오금희란 참으로 하면 할수록 오묘하고 깊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 오금희를 마친 후 여수의 맛집 기행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여수에는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싱싱한 이곳만의 해산물들이 많다. 이 음식들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풍요롭게 해 주었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기에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오금희.

그리고 오금희를 만났기에 만날 수 있었던 더 소중한 많은 분들.

배우는 제자보다 더 성심을 다해 오금희를 가르쳐주신 정천영 선생님, 노선미 선생님

연락하면 변함없이 늘 따뜻하게 환대해주시던 김한섭선생님, 박윤선 부원장님, 이미 앞서간 46기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