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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타오금희

정회원 수련기

김 수 진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하며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노랫말이 좋아 아이들을 만나면 꼭 함께 부르는 노래다.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꿈을 꾼다. 나도 여러 꿈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춤’이다. 춤추는 사람의 몸을 보며 늘 그 섬세한 움직임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그 표현의 자유로움에 대해 부러움이 함께 일었다. 어쩌면 표현에 서툰 나여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춤추는 사람은 손 하나를 뻗기 위해 긴 시간을 들여 몸을 살피고, 움직임을 연구할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몸을, 자신을 더 알고,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이유로 난 언제고 춤을 배워 멋들어지게 추고 싶은 꿈이 있다.

오금희를 처음 접한 것은 2003년 가을이었다. 관심도, 하고 싶은 일도 많던 그 때, 토요일 오후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주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점심도 거른 채, 지하철을 탔다. 쏟아지는 졸음에 서대문 역을 지나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몇 번 보고, 해본 후, 앞에 나와 배운 동작을 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3개월 정도 지나며 거짓말처럼 조금씩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하는 일은 그대로인데 서대문을 지나치는 일도 줄어들었고, 공간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오늘은 어떤 동작을 배울까?’ 살짝 기대가 되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오금희 속에서 춤을 발견했을지 모른다.

부회장님이 추는 춤에 눈멀어(^^) 그렇게 6개월을 지날 즈음, 중국 대련으로 가게 되었다. 한국을 잠시 떠나며 여러 아쉬움이 있었는데 오금희도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 매일 새벽4시에 일어나 오금희를 했다. 배운 데까지 한 후, 공부하고 출근하기를 한달 보름을 했다. 그 후엔 너무 힘이 들어 새벽 운동은 그만 두었지만, 잊어버리지 않도록 수련을 했다. 북경으로 옮긴 후에는 사람들과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수련을 하여 외롭지 않게 수련할 수 있었고, 방학 중에 한국에 오게 되면, 꼭 수련장을 들러 못 배운 부분을 배웠다. 그리고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와 42기에 들어가 다시 본부에서 수련하게 되었고, 또 이렇게 수료 심사를 받게 되었다.

아는 부분을 다시 배우니 지루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놓쳤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처음 배울 때의 재미 못지않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풀리지 않는 부분을 동기들이 다가와 이야기 해줄 때가 있다. 나는 선생님을 따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동작은 ‘내 식’대로 굳어진 경우이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동작을 수정할 때의 짜릿함이란! 그런 날은 집에 돌아가는 길까지 즐겁다.

2003년에 시작하여 2010년에 중급 수료심사를 받는다. 만6년 9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빨리 변화하는 사회에 살며 어떤 한 가지를 지속적으로 하기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임을 안다. 그런데 전혀 지루하거나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래할 운동임을 알기에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그저 춤추듯 수련하는 것이 즐겁다. 그렇게 수련하며, 내 몸을 한층 더 알아가고, 살피고, 또 나아가 사랑하게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