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희를 익히며
김 경 린
사람은 저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있다. 좋아하는 일은 교외에 나가 산천을 바라보는 것이고, 과자 등을 먹으며 영화나 TV를 보는 것이다. 반면 싫어하는 일은 운동, 노래, 춤 등이다. 우리 집안은 운동, 노래, 춤 등을 못한다. 형부는 갓 결혼한 언니에게 부탁하였다. 누가 노래하라고 하면 가능한 하지 말아요. 한 조카는 5년 동안 태권도 도장에 가서 놀기만 하다가 본격적으로 가르치자 코피만 흘리고 중단하였으며, 다른 조카는 쿵푸 사범님이 "너처럼 뻣뻣한 아이는 처음이다" 라고 하셨다. 결국, 쿵푸복만 장롱에 몇 년 있었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나는 10~20대를 제외하고는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였다. 집안에서는 또 병이 날까 두려워서 귀하게 대접하였으니, 억지로 공주가 된 셈이다. 알다시피 공주는 절대로 몸을 안 움직인다. 20대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병을 앓았다. 해마다 10월부터 이듬해 5월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는 기침을 하였으며, 눈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속담처럼 눈감는 수술과 입원을 교대로 하였으며, 40대 초반, 손에는 벌써 검버섯이 앉아 버렸다. 유명한 의사를 찾아서 순회공연(?)을 하였지만 전설의 명의 편작은 만나지 못하였다. 2001년 11월 하순에 편작과 쌍벽을 이루는 의성(醫聖) 화타께서 창시한 오금희를 배우게 되었다. 꼼짝하기 싫어하는 성정에도 불구하고 이젠 어쩔 수 없이 곰처럼 몸통을 틀고, 학처럼 걸으며, 사슴이 달리듯이 운동을 하여야 했다. 역시 난 화타 체질인가? 그 겨울을 기침 없이 보냈다. 가끔 몸살이 나서 결석을 할까 망설였으나 그래도 터덜터덜 수련장으로 향했다. 오금희를 한 시간 정도하면 몸에 땀이 배이면서 오한이 멎는다. 그리고 삼십분 정도 어렵기만한 동작을 정신 없이 익히다 보면 몸살은 곧 잊어버리고 만다. 운동 후 종해스님의 따듯한 차 한잔을 얻어 마시고 나면 감기 뚝! 상큼한 밤 공기를 마시며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뿐하기 그지없다. 오금희는 이상하다. 처음 익히는 동작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올 만큼 어색하여 감히 오금희라고 할 수 없는 정도였다. 그러나 효과는 동작의 완벽 정도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웅준우포를 하면서는 창피하게도 가스가 자꾸 나오더니 배가 조금은 편해졌다. 왼발로 전체 체중을 싣고 서있어야 하는 금계독립(金鷄獨立)과 우선녹분(右旋鹿奔)은 다리 힘이 부족하여 자꾸만 비틀거렸다. 그러나 삼사 개월 정도 지나니 동작이 어느 정도 안정되며, 지하철 계단쯤은 헐떡이지 않고 자연스레 한 번에 올라가게 되었다. 여세를 몰아 사진의 증거가 없어 집안에서는 지금도 믿지 않지만 지리산 천왕봉도 등반하였다. 평소에 낮은 산을 오르면서도 여러 사람을 괴롭혔던 그 실력을 뒤로한 채.
서우망월(犀牛望月)을 연습하니 점점 허리가 유연해져 욕심껏 뒤로 젖혔다가 몇 일간 허리가 아프기도 하였다. 나긋나긋할 요(拗) 자가 들어 있는 백학요보(白鶴拗步)는 아직도 게걸음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동작자체가 힘들지는 않다.
제일 힘든 것은 수공(收功)의 선유녹경이다. 빈혈이 심한 상황에서 목을 돌리니 어지럽다 못해 뱃속이 뒤집어 지는 것 같았다. 특히 십 년 전에 목을 다쳐 오른 쪽으로는 고개를 돌리기가 불편하였으며, X-레이 결과 정상인의 목은 유연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뒤로 젖혀지는데, 내 목은 그저 뻣뻣하게 일직선을 유지할 뿐이었다. 당연히 선유녹경은 넘기 힘든 산과 같았다. 목도 잘 돌려지지 않았으며, 돌릴 때마다 뚝뚝 소리가 났다. 일 주일 동안 열심히 돌렸다. 오금희를 배우는 중에 가장 열심히 진지하게 하였다. 하루 이틀 조금씩 조금씩 부드러워 졌다. 재미가 나서 마구 돌려댔다. 그 다음 주에 동작이 너무 크다고 잘못됨을 지적 받았다. 역시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그러는 동안 병원 출입은 정기 검진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니지 않았다. 자연히 복용하던 약도 줄면서 약으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복용하던 여성 호르몬제도 모험이지만 끊어버렸다. 당연히 대가를 치루고 있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열이 났다 식었다하는 증상은 없으니 견딜 만하다. 이제 더 이상 길을 떠날 때 약 보따리를 챙기지 않아도 되었다. 위의 글은 자칫 오금희를 열심히 하였다는 오해를 불러오기 쉽다. 그러나 게으른 그 천성이 어디로 가겠는가? 처음에는 병원에 다니느니 오금희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일 주일에 삼일은 연습을 하였다. 그러나 몸이 조금 나아지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다가 일 주일에 이틀 연습, 그러다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에는 수업시간조차 자꾸만 앉아서 쉬었다. 여름이 지나 황금의 계절 가을, 이 좋은 계절에 우리 아들 손잡고 단풍놀이 다닙니다.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께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인가! 선생님의 사부님이신 대만 본원의 곽정헌 대사부님이 돌아가셨다. 오금희의 일원으로 그 분을 뵐 수 있으리라는 야무진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역시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이다. 아마 열심히 했더라면.....
삼가 명복을 빕니다.
이제 이런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곰이 몸을 깊숙이 웅크리고, 사슴이 우두커니 바라보며, 원숭이가 저 해를 가리키는 동작을 부단히 연습하려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대사부님이나 선생님께서 그리도 변형되지 않은 오금희를 전하려고 노력하셨으니 말이다. 나긋나긋한 학의 걸음을 걸어야지 절대로 게걸음은 용납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지를 학의 걸음으로 내딛을 것이다.
2002년 11월 김 경 린
김 경 린
사람은 저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있다. 좋아하는 일은 교외에 나가 산천을 바라보는 것이고, 과자 등을 먹으며 영화나 TV를 보는 것이다. 반면 싫어하는 일은 운동, 노래, 춤 등이다. 우리 집안은 운동, 노래, 춤 등을 못한다. 형부는 갓 결혼한 언니에게 부탁하였다. 누가 노래하라고 하면 가능한 하지 말아요. 한 조카는 5년 동안 태권도 도장에 가서 놀기만 하다가 본격적으로 가르치자 코피만 흘리고 중단하였으며, 다른 조카는 쿵푸 사범님이 "너처럼 뻣뻣한 아이는 처음이다" 라고 하셨다. 결국, 쿵푸복만 장롱에 몇 년 있었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나는 10~20대를 제외하고는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였다. 집안에서는 또 병이 날까 두려워서 귀하게 대접하였으니, 억지로 공주가 된 셈이다. 알다시피 공주는 절대로 몸을 안 움직인다. 20대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병을 앓았다. 해마다 10월부터 이듬해 5월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는 기침을 하였으며, 눈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속담처럼 눈감는 수술과 입원을 교대로 하였으며, 40대 초반, 손에는 벌써 검버섯이 앉아 버렸다. 유명한 의사를 찾아서 순회공연(?)을 하였지만 전설의 명의 편작은 만나지 못하였다. 2001년 11월 하순에 편작과 쌍벽을 이루는 의성(醫聖) 화타께서 창시한 오금희를 배우게 되었다. 꼼짝하기 싫어하는 성정에도 불구하고 이젠 어쩔 수 없이 곰처럼 몸통을 틀고, 학처럼 걸으며, 사슴이 달리듯이 운동을 하여야 했다. 역시 난 화타 체질인가? 그 겨울을 기침 없이 보냈다. 가끔 몸살이 나서 결석을 할까 망설였으나 그래도 터덜터덜 수련장으로 향했다. 오금희를 한 시간 정도하면 몸에 땀이 배이면서 오한이 멎는다. 그리고 삼십분 정도 어렵기만한 동작을 정신 없이 익히다 보면 몸살은 곧 잊어버리고 만다. 운동 후 종해스님의 따듯한 차 한잔을 얻어 마시고 나면 감기 뚝! 상큼한 밤 공기를 마시며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뿐하기 그지없다. 오금희는 이상하다. 처음 익히는 동작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올 만큼 어색하여 감히 오금희라고 할 수 없는 정도였다. 그러나 효과는 동작의 완벽 정도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웅준우포를 하면서는 창피하게도 가스가 자꾸 나오더니 배가 조금은 편해졌다. 왼발로 전체 체중을 싣고 서있어야 하는 금계독립(金鷄獨立)과 우선녹분(右旋鹿奔)은 다리 힘이 부족하여 자꾸만 비틀거렸다. 그러나 삼사 개월 정도 지나니 동작이 어느 정도 안정되며, 지하철 계단쯤은 헐떡이지 않고 자연스레 한 번에 올라가게 되었다. 여세를 몰아 사진의 증거가 없어 집안에서는 지금도 믿지 않지만 지리산 천왕봉도 등반하였다. 평소에 낮은 산을 오르면서도 여러 사람을 괴롭혔던 그 실력을 뒤로한 채.
서우망월(犀牛望月)을 연습하니 점점 허리가 유연해져 욕심껏 뒤로 젖혔다가 몇 일간 허리가 아프기도 하였다. 나긋나긋할 요(拗) 자가 들어 있는 백학요보(白鶴拗步)는 아직도 게걸음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동작자체가 힘들지는 않다.
제일 힘든 것은 수공(收功)의 선유녹경이다. 빈혈이 심한 상황에서 목을 돌리니 어지럽다 못해 뱃속이 뒤집어 지는 것 같았다. 특히 십 년 전에 목을 다쳐 오른 쪽으로는 고개를 돌리기가 불편하였으며, X-레이 결과 정상인의 목은 유연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뒤로 젖혀지는데, 내 목은 그저 뻣뻣하게 일직선을 유지할 뿐이었다. 당연히 선유녹경은 넘기 힘든 산과 같았다. 목도 잘 돌려지지 않았으며, 돌릴 때마다 뚝뚝 소리가 났다. 일 주일 동안 열심히 돌렸다. 오금희를 배우는 중에 가장 열심히 진지하게 하였다. 하루 이틀 조금씩 조금씩 부드러워 졌다. 재미가 나서 마구 돌려댔다. 그 다음 주에 동작이 너무 크다고 잘못됨을 지적 받았다. 역시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그러는 동안 병원 출입은 정기 검진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니지 않았다. 자연히 복용하던 약도 줄면서 약으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복용하던 여성 호르몬제도 모험이지만 끊어버렸다. 당연히 대가를 치루고 있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열이 났다 식었다하는 증상은 없으니 견딜 만하다. 이제 더 이상 길을 떠날 때 약 보따리를 챙기지 않아도 되었다. 위의 글은 자칫 오금희를 열심히 하였다는 오해를 불러오기 쉽다. 그러나 게으른 그 천성이 어디로 가겠는가? 처음에는 병원에 다니느니 오금희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일 주일에 삼일은 연습을 하였다. 그러나 몸이 조금 나아지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다가 일 주일에 이틀 연습, 그러다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에는 수업시간조차 자꾸만 앉아서 쉬었다. 여름이 지나 황금의 계절 가을, 이 좋은 계절에 우리 아들 손잡고 단풍놀이 다닙니다.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께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인가! 선생님의 사부님이신 대만 본원의 곽정헌 대사부님이 돌아가셨다. 오금희의 일원으로 그 분을 뵐 수 있으리라는 야무진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역시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이다. 아마 열심히 했더라면.....
삼가 명복을 빕니다.
이제 이런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곰이 몸을 깊숙이 웅크리고, 사슴이 우두커니 바라보며, 원숭이가 저 해를 가리키는 동작을 부단히 연습하려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대사부님이나 선생님께서 그리도 변형되지 않은 오금희를 전하려고 노력하셨으니 말이다. 나긋나긋한 학의 걸음을 걸어야지 절대로 게걸음은 용납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지를 학의 걸음으로 내딛을 것이다.
2002년 11월 김 경 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