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시기적으로 참으로 절묘하였다.
서울 생활을 시작한지 2개월만에 오금희를 만났고 오금희 중급과정이 끝날 때쯤 서울 생활을 접었다. 아마 지방에 거주하였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오금희를 배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교수님께서 책 후기에 쓰셨듯이 인연이 있어야 만나는 것 같다. 2004년 한 해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긴 한 해였다. 올 한해를 결산해 볼 때 오롯이 남는 것은 오금희 뿐인 것 같다.
녹색 종이의 세종대왕님이 많이도 싫다고 떠나버렸다. 건강하게 큰 아이들, 식지않은 사랑, 시행착오로 겪은 경험, 오금희등 무형의 자산이 한 해를 기쁘게 마감할 수 있게 한다.
오금희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큰아이는 오금희 수련 때 먹었던 차와 비슷한 색의 음료를 보면 '오금희 차'라고하고,쑥이 섞인 시루떡을 보면 '오금희 떡'이라고 한다. 어느날은 공원에서 오금희를 하는데 "엄마, 학전좌시 해봐"라고 말하기도 하고, 혼자서 '녹참원조,웅부신요'까지만 외기도 한다. 처음 오금희를 시작할 때는 다리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옷깃을 잡고 놓지 않던 아이들이 이제는 제법 의젓하게 엄마,아빠가 오금희하는 것을 인정하며 자기들 끼리 놀 줄도 안다. 10개월간이지만 참 많은 변화인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가족과 함께 오금희를 한다면 교육적인 효과와 함께 가정의 화목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족끼리, 아이들과 함께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세대차와 의견차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오금희는 내게 몸를 움직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주었다. 몸치인 내가 오금희를 끝까지 배웠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자기 극복이 됨과 동시에 몸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학창시절 나는 운동회때 하는 형식적인 부채춤, 탈춤, 리듬체조같은 율동을 선생님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빠지기도 하고 하기싫다고 버티다가 미움을 사기도 할정도로 움직이고 리듬을 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운동은 시작한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 포기할 정도로 싫어 했다. 수영장은 염소냄새가 싫어서 테니스는 좀 과격한 것 같아서 달리기는 지루해서 헬쓰장은 답답해서 모두 이유를 달아서 포기했다.
우연히 시작했던 요가가 너무 좋아서 요가센터를 같이 운영해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내가 요가와 멀어지게 하였다. 경영을 해야하는 요가센터는 오히려 내게 스트레스로 작용했고 결국 하루 한시간씩 요가를 하면 좋겠다던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일주일에 한 시간도 요가를 못하게 되었다. 그즈음 배우기 시작했던 오금희를 좁은 원장실에서 틈틈히 하는 것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며 1년을 보낸 것 같다. 모든 것은 탐진치심에 가린 무명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한해였다. 요가든 오금희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어야 더욱 잘되는 것 같다.
오금희 수련기가 한해를 돌아보는 회고기가 되는 것 같다. 무언가를 배웠다는 것은 닦기 위한 첫 걸음인 것 같다. 앞으로 더욱 갈고 닦아야 하는 보석을 얻은 기분이다. 항상 열심히 가르쳐 주신 교수님, 14기 동기분들, 선후배님들, 그리고 언제나 고마운 my endless love, 우리 꼬마들 모두 새해에는 더욱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고 수련에 발전 있으시길 두손 모아 기원합니다.
서울 생활을 시작한지 2개월만에 오금희를 만났고 오금희 중급과정이 끝날 때쯤 서울 생활을 접었다. 아마 지방에 거주하였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오금희를 배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교수님께서 책 후기에 쓰셨듯이 인연이 있어야 만나는 것 같다. 2004년 한 해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긴 한 해였다. 올 한해를 결산해 볼 때 오롯이 남는 것은 오금희 뿐인 것 같다.
녹색 종이의 세종대왕님이 많이도 싫다고 떠나버렸다. 건강하게 큰 아이들, 식지않은 사랑, 시행착오로 겪은 경험, 오금희등 무형의 자산이 한 해를 기쁘게 마감할 수 있게 한다.
오금희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큰아이는 오금희 수련 때 먹었던 차와 비슷한 색의 음료를 보면 '오금희 차'라고하고,쑥이 섞인 시루떡을 보면 '오금희 떡'이라고 한다. 어느날은 공원에서 오금희를 하는데 "엄마, 학전좌시 해봐"라고 말하기도 하고, 혼자서 '녹참원조,웅부신요'까지만 외기도 한다. 처음 오금희를 시작할 때는 다리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옷깃을 잡고 놓지 않던 아이들이 이제는 제법 의젓하게 엄마,아빠가 오금희하는 것을 인정하며 자기들 끼리 놀 줄도 안다. 10개월간이지만 참 많은 변화인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가족과 함께 오금희를 한다면 교육적인 효과와 함께 가정의 화목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족끼리, 아이들과 함께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세대차와 의견차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오금희는 내게 몸를 움직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주었다. 몸치인 내가 오금희를 끝까지 배웠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자기 극복이 됨과 동시에 몸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학창시절 나는 운동회때 하는 형식적인 부채춤, 탈춤, 리듬체조같은 율동을 선생님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빠지기도 하고 하기싫다고 버티다가 미움을 사기도 할정도로 움직이고 리듬을 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운동은 시작한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 포기할 정도로 싫어 했다. 수영장은 염소냄새가 싫어서 테니스는 좀 과격한 것 같아서 달리기는 지루해서 헬쓰장은 답답해서 모두 이유를 달아서 포기했다.
우연히 시작했던 요가가 너무 좋아서 요가센터를 같이 운영해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내가 요가와 멀어지게 하였다. 경영을 해야하는 요가센터는 오히려 내게 스트레스로 작용했고 결국 하루 한시간씩 요가를 하면 좋겠다던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일주일에 한 시간도 요가를 못하게 되었다. 그즈음 배우기 시작했던 오금희를 좁은 원장실에서 틈틈히 하는 것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며 1년을 보낸 것 같다. 모든 것은 탐진치심에 가린 무명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한해였다. 요가든 오금희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어야 더욱 잘되는 것 같다.
오금희 수련기가 한해를 돌아보는 회고기가 되는 것 같다. 무언가를 배웠다는 것은 닦기 위한 첫 걸음인 것 같다. 앞으로 더욱 갈고 닦아야 하는 보석을 얻은 기분이다. 항상 열심히 가르쳐 주신 교수님, 14기 동기분들, 선후배님들, 그리고 언제나 고마운 my endless love, 우리 꼬마들 모두 새해에는 더욱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고 수련에 발전 있으시길 두손 모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