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으로 시작해서 강한 믿음을 갖게 된 14기 김선호의 수련에 대한 추억을 적어봅니다.
2003. 12
- 어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암 투병으로 고통스러워 하시고 아파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고인다. 그전에 다른 알던 분들의 죽음에 무덤덤하던 나는 어머니를 보내고 충격을 받았다. 사람 몸이라는 것이 큰 병이 들면 참으로 참혹하고 약해지며 모든 것을 빼앗긴다는 비극을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큰 상처로 남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 실제로 회사에서 실시했던 건강검진에는 지방간 중증, 의사와 상당해야 할 정도의 비만 , 콩팥에 물혹, 소변에 죽은 세포 검출 등의 건강에 대한 적신호가 진단 결과로 적혀 있었다. 두려웠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늘 건강하고 살만 빼면 언제든 옛날 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몸은 이미 그런 상태를 지나 점점 수렁 속으로 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2004. 1
- 어머니의 빈자리를 가슴에 남긴 채 살아생전 나만 보면 살을 빼라고 하시던 말씀에 헬스를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배 및 옆구리를 잡으면 잡히고 더 남는 살를 보면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살찐 배로 인해 쉽게 피로를 느꼈고 사람들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제일 싫은 것은 거북함이다. 지하철, 버스, 식당 등 몸을 움직여야 하는 곳에서의 거북함!!! 약간 두꺼운 옷이나 양복을 입으면 그 조이는 은근한 고통은 생각하기도 싫다. 식탐은 대단해서 밤 늦게 먹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었다. 머리 속으로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이 그 동안 있었고 행동을 하지 않던 나는 헬스 장에서 드디어 끝장을 보겠다는 결심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운동은 그 결심만큼 대단하게 하지 못했다. 주로 걷기 운동만 했다. 달리기는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하여 시도하지 않고 가끔 지루하면 헬스 기구에 앉아서 배를 자극하고 다리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을 했다. 헬스장에서 스트레칭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배울 수가 없었다. 헬스장에서 운동은 재미는 없었지만 결심으로 한달 이상을 열심히 했다. 그렇지만 한 달이 지나도 크게 효과는 없었다. 성질이 느긋해서 인지 걷는 것도 천천히 했고 헬스기구에서의 운동은 심심풀이로 했다. 마음의 결심도 느슨해지기 시작할 무렵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태극권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극권의 느릿느릿한 몸짓이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해서 였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거라는 나만의 생각으로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나는 그런 결심 후 맨 먼저 한 일이 태극권에 관한 책을 사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과 직접 부딪히면서 뭔가를 배우는 것에 많이 서툴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지 관련된 책을 먼저 사보는 경향이 있다. 집에 와서 조금 보다가 책보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책 맨 뒤에 맨손체조 비슷한 건신12단금이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있었다. 나 나름대로 그 내용을 해석해서 몸에 적용해서 했다. 건신12단금에 대한 설명은 있었는데 동시에 언급한 오금희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었다. 건신12단금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몸에 익숙해질 무렵 오금희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오금희가 뭐지?
2004.2
- 인터넷에서 오금희를 쳐서 현재의 인터넷 게시판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서점에 가서 현재의 오금희 도해 책을 샀다. 그리고 또 나름대로 해석해서 처음 몇 동작을 해보다가 이것 역시 책보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 오금희 홈페이지에 와서 수련기 게시판을 보았다. 그리고 동영상도 보았다. 호기심으로 단지 보았다. 이때 회사를 옮기게 되는 시기였다. 회사를 옮기는 결심을 하면서 이때 마침 14기 모집공고를 보고 한번 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김성기 교수님께 전화를 하고 14기에 동참하게 되었다. 오금희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오금희가 인연지기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나한테는 정말 우연잖게 인연이 연결된 것 같다.
2004.3
- 처음 예비공을 배우고 나서 별다른 좋은 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박영선 선생님이 꺼억꺼억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무슨 효과가 있긴 있는 모양인데 나한테는 혓바늘이 돋는 정도였다. 단지 호기심으로 운동을 계속했던 것 같다. 기공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호기심(솔직히 기공이라는 말은 오금희를 하고 처음 알게 된 단어임). 나는 사람이 뜬다든가. 물속에서 오랫동안 있다든가 아니면 빨리 위치를 옮길 수 있다든가 등의 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를 오금희를 배우면서 들었다면 아마 그만 두었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상식에서는 사람을 홀리는 말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금희 강의시간은 그런 말도 없었다. 대신에 오금희에 대해서 너무 과신하지 말고 금방 뭐가 도가 트일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게 생각했던 것은 호흡에 대한 자연스러움이었다. 어떻게 들이쉬고 내쉬어라 하는 주문 없이 그저 동작만 하면 되는 점이 정말 좋았다. 동작이 호흡을 이끌어 준다는 말이 심오하면서 자연스럽다. 나한테는 자리에 앉아서 호흡하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 것 중에 하나다. 단전호흡에 대해서는 옛날 어렸을 적에 한때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책을 통해 얻은 몇 가지 지식을 스스로 내 몸에 적용해서 복식호흡 한다고 설쳤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모든 문제가 없어질 것처럼 그 당시에는 믿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앉아서 호흡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명상이라면 몰라도.
2004.4
- 호기심으로 아침점심저녁으로 열을 올리면서 열심히 해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다리가 옛날보다 힘이 많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걸음을 걷는 것이 매우 기쁘게 생각된 적이 있었다. 다리가 깃털처럼 가벼워서 앞으로 쑥쑥 나가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살은 전혀 빠지지 않았고 단지 다리가 조금 튼튼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변을 보는 것이 좀더 쉬워졌다. 그전에 대변이 물이 많았는데 오금희를 배우고 나서 대변이 찰 졌다. 그리고 대변의 빛깔도 좋아졌다. 재미가 있고 어떤 희망을 실낱 같이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게시판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김교수님이 매번 느끼는 몸의 증상을 기록하는 일기를 써보라고 권했을 때 내가 생각한 것이 게시판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2004.5
- 어느 순간에 오금희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강의시간이 재미도 있었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오금희 동작들과 다음 동작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했다. 한때는 왜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알려주는 것이지 하면서 조급함을 보인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난 뒤에 이렇게 배우는 것이 참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강의 시간에 김교수님의 묵직하면서도 아름다운 동작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 근처의 산에 가서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 눈에 뛰지 않는 평지를 찾다가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사람들 눈이 두렵지가 않고 오금희를 하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곳에 가서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한 두 번 보고 기체조 하나 보다 하고 별 관심 없이 지나쳤다. 내가 주로 하던 참나무 숲을 건강을 위해서 주위를 빙빙 걷는 것과 내가 그 중간에 서서 건강을 위해서 오금희하는 것은 모두 몸에 대한 관심으로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2004.6, 2004.7. 2004.8
- 이 기간은 땀과의 전쟁이었다. 강의시간에 해도 엄청나게 땀이 났고 집의 거실에서 해도 파자마가 다 젖을 정도로 땀이 났다. 강의시간을 마치고 집으로 올 때 너무나 갈증을 많이 느껴서 신길역에서 음료수 3개를 연속으로 먹은 적이 있었다. 오금희가 느리지만 의외로 땀을 많이 흘렸던 것 같다. 아내는 옆에서 오금희의 느린 동작을 하면서 그렇게 땀 흘리는 나를 보면서 참 신기하다며 놀라워 했다. 주말에 시골에 가지 않고 집에 혼자 있게 되면 어김없이 산으로 가서 오금희를 했다. 산속에서 하는 것과 집 거실에서 하는 것은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오금희가 다가왔다. 나무들로 둘러싸인 숲에서 천천히 하늘 , 땅 , 나무, 풀들을 더 자세히 여유 있게 보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심신에 더 많은 충만감과 행복감을 가져다 주는 느낌이었다. 오금희를 하고 나서의 개운함과 살이 빠질 수 있다는 기대감등으로 열심히 했다. 실제로 살도 빠졌다. 아내는 이런 모습을 보고 기특하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오금희를 할 때 얼마 되지 않아 그만 둘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5개월이 지나도 더 열심으로 계속 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아내에게 중간에 해보도록 억지로 권했지만 아내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아내를 가르치려고 생각해서 몇 번 하다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보고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차이가 많이 난다. 확실하게 오금희를 알고 있지 않으면 가르칠 때 아무래도 말이 꼬이는 것 같았다. 아내가 싫은 것 억지로 시킨다고 짜증까지 냈다. 그 때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차후 내가 몸이 더 좋아진 모습을 아내에게 보여 설득해보자고 생각을 고쳤던 것 같다. 그때 내 마음속에는 오금희를 쉬지 않고 꾸준히 하면 몸이 아주 정상적으로 될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굳건한 믿음이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10개월을 토요일 6시에 남편 없이 저녁을 보내 준 아내에게 내가 받을 오금희 수료증을 보여주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살아 생전 그렇게 살을 빼라고 말씀하셨던 어머니께 더 이상은 못난 아들의 건강에 대해서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수료증을 보여드리고 싶다.
2004.9
- 마침내 오금희를 다 배우게 되었다.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중간에 한 두 번 어쩔 수 없이 빠진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강의에 참가했고 마침내 초급 반을 마친 것이다. 이때 마지막으로 수공을 배우기 전날 나는 너무나도 떨린 적이 있었다. 뭐라 할 수 없는 감동 같은 것이었다. 오금희의 완만하고 부드러운 동작처럼 배우는 과정 그 자체도 참 느릿 느릿 한 것이었다. 성격 급하고 단숨에 일하는 것을 즐겨 하는 나로서는 이런 식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배움은 처음이었고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니 그런 시간을 참아 내는 마지막 순간이 아무래도 감동이었던 것이다. 체력도 더 나아졌고 다리는 더 튼튼해졌다. 피로감도 줄었다. 전체적으로 내 몸이 나아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처음에는 단지 살 빠지는 것에 중점을 두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몸의 모든 곳에서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하루하루 계속해서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되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 오금희를 열심히 하지 못한 후회는 없었다. 내 스스로도 놀랄 만큼 노력을 기울인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확하게 동작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은 있었다. 그렇지만 큰 틀에서는 많이 벗어나지 않게 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점점 오금희를 하면서 회사에서 하는 축구시합에서 점점 더 잘 뛰고 체력적으로 오랫동안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느린 동작을 하는 데 체력이 강해지는 것도 이상했다. 몸이 한결 부드러워 졌고 체력적으로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술도 강해졌다. 하면서 뼈의 한 마디 한 마디 느끼면서 한다는 기분으로 하면 몸에서 어떤 따뜻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뱃살은 상당히 없어진 것 같은데 몸무게는 오금희 시작하기 전에 비해서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 보다 체중이 많이 줄지는 않은 것 같다. 오금희 시작 전에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에 비해서 7kg 정도 줄었다. 다만 줄어든 살이 신기하게도 뱃살에서 모두 빠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몸의 거북함이라든가 피곤함은 정말로 많이 개선된 느낌이다. 오금희를 하면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르지만 결과는 그렇다.
2004.10 ~ 현재
- 중급반에서 동작 하나하나를 다시 짚어가면서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나의오금희가 좀더 오금희스러워 지는 것 같다. 초급반에서 많이 부드러워지고 튼튼해진 몸과 동작들의 큰 모양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세세한 교정을 하면서 오금희가 단순하게 체조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의미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14기 분들하고 세세히 동작에 대해서 의논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교정했던 것 같다. 나는 강의 시간에 다른 분들이 앞에 나와서 하는 것을 보고 아주 사소한 것 까지 언급했다. 좀더 정확하게 확실하게 알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나는 저녁 6시부터 강의가 있었지만 그 전에 일찍 서대문 수련장에 가서 나 혼자 연습하고 박영선 선생님하고 같이 연습하는 시간을 6월부터 갖고 있었다. 그리고 오금희 도해 책도 열심히 읽었다. 좀더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 나름대로 오금희를 만든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았다. 중급반을 거치면서 그런 부분들을 고쳐야 했다. 그리고 시선이 손을 따라가면서 좀더 여유가 있게 내 몸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면서 좀더 정확하게 동작을 바로 잡으려고 생각했다. 완전하지 않지만 혼자서도 엉뚱하게 하지 않고 기본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정도의 수준으로 가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최근에는 몸이 아주 편안하다. 거북함이 없어졌다. 사람들하고 더 많이 어울려도 피곤해 하지 않는 것 같다. 신체적인 능력이 향상되어서 인지 정신력도 더 강해진 느낌이다. 집중력도 더 강해졌다.
-언젠가 14기 박영선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화타오금지희가 우리 몸 중 만져주지 않는 곳이 있는가? 박선생님은 뭐 그런 골치 아픈 것 생각하느냐고 넘기셨지만 가끔 나는 오금희가 내 몸 중 빼놓는 곳은 어디인가 하는 생각을 숨은 그림 찾듯이 머리 속에서 궁리해본다. 아직까지 적당한 신체부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발가락, 발바닥, 발목, 무릎, 다리, 몸통, 허리, 척추, 내장, 폐, 간, 가슴, 어깨, 목, 눈, 귀, 코, 혀, 입술 등 정말 세세히도 한 두 번 씩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온몸을 빼놓지 않고 하나하나 자극을 한다. 예전에 나는 걷는 운동이나 오금희 하는 것이나 모두 같은 운동이니까 하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오금희가 갖는 전체적인 몸에 대한 관심은 걷은 운동이 따라 올 수 없다는 것이 최근의 내 결론이다. 그래서 걷을 거라면 오금희를 배워서 하는 것이 더 몸을 세밀하고 적당하게 자극을 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금희는 척추운동이 많은 것 같다. 꼬리뼈부터 한 마디 한마디 움직이면서 해보라는 선생님 말씀이 중급반을 마치면서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면서 사람 몸이 참 복잡하고도 신비하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오금지희를 하다 보면서 사람 몸의 생김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람의 뼈, 관절이 오금희를 하면서 어떻게 움직이고 팔,다리,목의 움직임이 내부 장기와 어떻게 연결되어 움직이는가? 왜 이런 동작들이 만들어 졌는가? 하는 궁금증도 크다. 아마 이런 분야는 한의학을 공부하신 분들이 더 관심을 갖겠지만 말이다.
-초급반을 어느 정도 하고 나서 오금희를 하지 않은 적이 있다. 게으름이 생긴 것이었다. 오랫동안 배우다 보니 마음이 처음과 같지 않고 풀려서 매일 하지 못하는 것이다. 10개월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루에 1시간 정도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나는 게을러졌던 시간을 제외하고 아침 일찍 저녁 늦게 점심 시간 등 나한테 주어지는 자투리 시간을 오금희에 투자했다. 주말에 혼자 있을 때 오금희는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고 몸이 불편하다 싶으면 오금희를 하고 나서 개운해지는 것이 좋았다. 오금희가 진정 빛 날려면 내 몸에 맞도록 계속 다듬어 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게을러져서 바빠서 오금희를 놓는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이 오금지희도 결국은 개인의 노력이 있어야만 그 가치가 생기는 것 같다. 배우는 시간은 중급반으로 끝나지만 이를 놓지 않고 일생을 가져가려고 한다면 꾸준한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동작이 약간 어설프고 정확하지 않더라도 매일매일 꾸준히 하면서 바른 동작을 몸에 맞혀가는 것은 각 개인의 몫인 것 같다. 결국은 구슬도 꿰매야 보배인 것이다.
-오금희를 하다 보면 눈의 시선이 손을 꾸준히 쫓아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그 것이 잘 안될 때 즉 마음이 심란할 때는 동작을 끝까지 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중간에 멈추고 하지 않았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왠지 힘이 없고 몸을 움직이는 것에 거북함이 들었다. 녹참원조를 하기 전에 오랫동안 마음을 가라 앉히고 집중하려는 노력이 그래서 필요한 듯 하다. 몰입하지 않으면 끝나고 나서도 느낌이 반감되는 것 같다.
-아내는 지금 내가 중급반을 마무리할 즈음 월요일반에서 2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아내는 내가 생일선물로 수료증을 원한다는 말에 남편 소원 들어 준다고 시작했다. 하면서 아내의 고질병이었던 변비에 효과를 조금씩 보고 있으며 몸이 시원한 느낌이 있을 때가 가끔 있다고 한다. 아내는 평소 두통, 어깨 결림, 변비, 감기 등의 잔병이 자주 있다. 그리고 등이 약간 구부정하기도 하다. 오금희의 시작이 나의 강제에 의한 것인지 몰라도 나는 확신한다. 아내가 차후 분명히 오금희를 좋아하고 고맙게 생각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내 경험상 잘하든 못하든 쉬지 않고 큰 원칙만을 아내가 지켜간다면 분명히 그 대가를 얻을 것이다. 아내가 하루에 최소한 배운데 까지 한 번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더 많이 하도록 하지도 않고 한번 이면 될 듯하다. 오금희는 스스로 한 만큼만 그 진가를 드러내는 운동인 것 같다.
-지난 10개월을 비가오나 더우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꾸준히 수련에 참가한 나 스스로가 대견하다. 그것도 운동하려는 목적으로 꾸준하게 강의에 참가하고 집에서도 몇번의 게으름을 빼놓고는 항상 했던 나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낀다. 이렇게 내가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성격과 잘 맞는 오금희가 갖고 있는 재미에 나도 모르게 빠져 있어 그랬던 같다. 천천히 한 동작 한 동작을 집중해서 시선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적당하게 땀이 나고 온몸을 구석구석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찾아 일일이 움직여 준다. 비틀고 앉고 일어서고 돌리고 쳐다보는 등의 동작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 된다. 그래서 일상 생활하다가 어떤 동작을 하게 될 때 오금희 동작이 약간 응용이 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빨래를 널거나 높은 곳에서 물건을 내릴 때 등은 원리삼초/원비정거/원비우거가 생각나고 탁자 밑이나 의자 밑에 떨어진 물건을 집으려고 할 때 호선우좌나 원섬좌반 같은 앉는 동작이 생각난다.
- 나는 주말에 3번 이상은 오금희를 했던 것 같다. 주말에 아내가 회사에 가는 바람에 나한테 주어진 시간 동안 나는 시흥계곡으로 가서 오금희를 했다. 오금희하기 위해서 시흥계곡에 가게 되면서 그 계곡을 좀더 자세하게 구석구석 살펴 보았다.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봄의 파릇파릇하던 숲에서 여름의 불타는 녹색의 숲에서 가을의 낙엽진 숲에서 시간의 흐름과 같이 나의 오금희는 흘러가면서 점점 더 영글어 갔던 것 같다. 오금희를 숲에서 하면서 바람이 불어줄 때 너무 좋았던 것 같다. 5월의 아카시아 꽃잎이 바람에 눈처럼 나부낄 때 그 꽃잎이 내 어깨에 내려 앉으면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던 기억이 있다. 여름날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을 때 살며시 산으로 불어 올라가던 바람에 땀이 식으면서 시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을날 뒹구는 낙엽과 아직 채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을 보면서 금계독립 자세에 머물렀을 때 불던 바람은 황홀하게 나를 만들었다. 바람에 낙엽이 날렸고 나도 같이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아직 겨울의 바람속에서의 경험은 없지만 언제 한번 눈 밭 위에서 차디찬 겨울 바람을 맞으면서 해보련다. 그리고 시흥계곡을 감싸앉고 있는 호암산을 자주 올랐다. 오금희 하기 전에 높지도 않은 그 산을 오르기 위해서 중간에 숨이 차서 여러 번 쉬었다. 오금희로 단련된 후 부터는 한번도 쉬지 않고 올라 갈 수가 있었다.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듯이 오금희 배우는 과정도 초급을 거쳐 중급에 끝이 났다. 끝은 또 하나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했던가! 오금희를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서 평생을 하려고 다짐해 본다. 좋은 운동이 많지만 나한테는 내 몸에 너무나 잘 맞는 오금희면 충분한 것 같다. 오금희 하나 제대로 하기도 힘든 것 같다. 어떤 운동이든 쉬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오금희는 나이가 들어서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인 듯 하다. 차후 10년, 20년 , 30년 뒤에도 나는 녹참원조에서 선호배월까지 하고 있을 것 같다.
-지난 10개월은 오금희에 대한 배움과 수련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강의시간에 같이 땀 흘리고 서로의 동작을 봐주었던 14기 분들과의 행복한 배움의 시간은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같이 응원하면서 웃고 차와 떡을 나누면서 지나간 따스한 시간이 고맙게 생각된다. 오금희의 올바른 길로 성심으로 인도해주신 김성기 교수님께는 너무나 큰 은혜를 입었다. 감사합니다. 늘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동작하나하나 세심하게 시연해 주시던 모습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화타 오금지희는 몸으로 말한다는 것을 체험했던 것 같습니다. 수련시간에 뒤에서 강의에 차질이 없도록 이것 저것 신경 써주신 고급반 선생님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최정식 선생님과 박윤선 선생님의 가르침도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수료증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1900년이라는 시간과 중국과 한국이라는 공간을 넘어 인연이 닿은 화타선생님의 인간의 몸에 대한 처방인 오금희를 접하게 된 것은 큰 행운입니다. 화타선생님께 감사합니다.
2003. 12
- 어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암 투병으로 고통스러워 하시고 아파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고인다. 그전에 다른 알던 분들의 죽음에 무덤덤하던 나는 어머니를 보내고 충격을 받았다. 사람 몸이라는 것이 큰 병이 들면 참으로 참혹하고 약해지며 모든 것을 빼앗긴다는 비극을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큰 상처로 남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 실제로 회사에서 실시했던 건강검진에는 지방간 중증, 의사와 상당해야 할 정도의 비만 , 콩팥에 물혹, 소변에 죽은 세포 검출 등의 건강에 대한 적신호가 진단 결과로 적혀 있었다. 두려웠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늘 건강하고 살만 빼면 언제든 옛날 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몸은 이미 그런 상태를 지나 점점 수렁 속으로 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2004. 1
- 어머니의 빈자리를 가슴에 남긴 채 살아생전 나만 보면 살을 빼라고 하시던 말씀에 헬스를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배 및 옆구리를 잡으면 잡히고 더 남는 살를 보면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살찐 배로 인해 쉽게 피로를 느꼈고 사람들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제일 싫은 것은 거북함이다. 지하철, 버스, 식당 등 몸을 움직여야 하는 곳에서의 거북함!!! 약간 두꺼운 옷이나 양복을 입으면 그 조이는 은근한 고통은 생각하기도 싫다. 식탐은 대단해서 밤 늦게 먹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었다. 머리 속으로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이 그 동안 있었고 행동을 하지 않던 나는 헬스 장에서 드디어 끝장을 보겠다는 결심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운동은 그 결심만큼 대단하게 하지 못했다. 주로 걷기 운동만 했다. 달리기는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하여 시도하지 않고 가끔 지루하면 헬스 기구에 앉아서 배를 자극하고 다리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을 했다. 헬스장에서 스트레칭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배울 수가 없었다. 헬스장에서 운동은 재미는 없었지만 결심으로 한달 이상을 열심히 했다. 그렇지만 한 달이 지나도 크게 효과는 없었다. 성질이 느긋해서 인지 걷는 것도 천천히 했고 헬스기구에서의 운동은 심심풀이로 했다. 마음의 결심도 느슨해지기 시작할 무렵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태극권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극권의 느릿느릿한 몸짓이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해서 였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거라는 나만의 생각으로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나는 그런 결심 후 맨 먼저 한 일이 태극권에 관한 책을 사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과 직접 부딪히면서 뭔가를 배우는 것에 많이 서툴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지 관련된 책을 먼저 사보는 경향이 있다. 집에 와서 조금 보다가 책보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책 맨 뒤에 맨손체조 비슷한 건신12단금이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있었다. 나 나름대로 그 내용을 해석해서 몸에 적용해서 했다. 건신12단금에 대한 설명은 있었는데 동시에 언급한 오금희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었다. 건신12단금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몸에 익숙해질 무렵 오금희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오금희가 뭐지?
2004.2
- 인터넷에서 오금희를 쳐서 현재의 인터넷 게시판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서점에 가서 현재의 오금희 도해 책을 샀다. 그리고 또 나름대로 해석해서 처음 몇 동작을 해보다가 이것 역시 책보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 오금희 홈페이지에 와서 수련기 게시판을 보았다. 그리고 동영상도 보았다. 호기심으로 단지 보았다. 이때 회사를 옮기게 되는 시기였다. 회사를 옮기는 결심을 하면서 이때 마침 14기 모집공고를 보고 한번 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김성기 교수님께 전화를 하고 14기에 동참하게 되었다. 오금희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오금희가 인연지기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나한테는 정말 우연잖게 인연이 연결된 것 같다.
2004.3
- 처음 예비공을 배우고 나서 별다른 좋은 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박영선 선생님이 꺼억꺼억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무슨 효과가 있긴 있는 모양인데 나한테는 혓바늘이 돋는 정도였다. 단지 호기심으로 운동을 계속했던 것 같다. 기공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호기심(솔직히 기공이라는 말은 오금희를 하고 처음 알게 된 단어임). 나는 사람이 뜬다든가. 물속에서 오랫동안 있다든가 아니면 빨리 위치를 옮길 수 있다든가 등의 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를 오금희를 배우면서 들었다면 아마 그만 두었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상식에서는 사람을 홀리는 말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금희 강의시간은 그런 말도 없었다. 대신에 오금희에 대해서 너무 과신하지 말고 금방 뭐가 도가 트일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게 생각했던 것은 호흡에 대한 자연스러움이었다. 어떻게 들이쉬고 내쉬어라 하는 주문 없이 그저 동작만 하면 되는 점이 정말 좋았다. 동작이 호흡을 이끌어 준다는 말이 심오하면서 자연스럽다. 나한테는 자리에 앉아서 호흡하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 것 중에 하나다. 단전호흡에 대해서는 옛날 어렸을 적에 한때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책을 통해 얻은 몇 가지 지식을 스스로 내 몸에 적용해서 복식호흡 한다고 설쳤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모든 문제가 없어질 것처럼 그 당시에는 믿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앉아서 호흡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명상이라면 몰라도.
2004.4
- 호기심으로 아침점심저녁으로 열을 올리면서 열심히 해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다리가 옛날보다 힘이 많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걸음을 걷는 것이 매우 기쁘게 생각된 적이 있었다. 다리가 깃털처럼 가벼워서 앞으로 쑥쑥 나가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살은 전혀 빠지지 않았고 단지 다리가 조금 튼튼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변을 보는 것이 좀더 쉬워졌다. 그전에 대변이 물이 많았는데 오금희를 배우고 나서 대변이 찰 졌다. 그리고 대변의 빛깔도 좋아졌다. 재미가 있고 어떤 희망을 실낱 같이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게시판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김교수님이 매번 느끼는 몸의 증상을 기록하는 일기를 써보라고 권했을 때 내가 생각한 것이 게시판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2004.5
- 어느 순간에 오금희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강의시간이 재미도 있었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오금희 동작들과 다음 동작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했다. 한때는 왜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알려주는 것이지 하면서 조급함을 보인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난 뒤에 이렇게 배우는 것이 참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강의 시간에 김교수님의 묵직하면서도 아름다운 동작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 근처의 산에 가서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 눈에 뛰지 않는 평지를 찾다가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사람들 눈이 두렵지가 않고 오금희를 하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곳에 가서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한 두 번 보고 기체조 하나 보다 하고 별 관심 없이 지나쳤다. 내가 주로 하던 참나무 숲을 건강을 위해서 주위를 빙빙 걷는 것과 내가 그 중간에 서서 건강을 위해서 오금희하는 것은 모두 몸에 대한 관심으로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2004.6, 2004.7. 2004.8
- 이 기간은 땀과의 전쟁이었다. 강의시간에 해도 엄청나게 땀이 났고 집의 거실에서 해도 파자마가 다 젖을 정도로 땀이 났다. 강의시간을 마치고 집으로 올 때 너무나 갈증을 많이 느껴서 신길역에서 음료수 3개를 연속으로 먹은 적이 있었다. 오금희가 느리지만 의외로 땀을 많이 흘렸던 것 같다. 아내는 옆에서 오금희의 느린 동작을 하면서 그렇게 땀 흘리는 나를 보면서 참 신기하다며 놀라워 했다. 주말에 시골에 가지 않고 집에 혼자 있게 되면 어김없이 산으로 가서 오금희를 했다. 산속에서 하는 것과 집 거실에서 하는 것은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오금희가 다가왔다. 나무들로 둘러싸인 숲에서 천천히 하늘 , 땅 , 나무, 풀들을 더 자세히 여유 있게 보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심신에 더 많은 충만감과 행복감을 가져다 주는 느낌이었다. 오금희를 하고 나서의 개운함과 살이 빠질 수 있다는 기대감등으로 열심히 했다. 실제로 살도 빠졌다. 아내는 이런 모습을 보고 기특하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오금희를 할 때 얼마 되지 않아 그만 둘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5개월이 지나도 더 열심으로 계속 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아내에게 중간에 해보도록 억지로 권했지만 아내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아내를 가르치려고 생각해서 몇 번 하다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보고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차이가 많이 난다. 확실하게 오금희를 알고 있지 않으면 가르칠 때 아무래도 말이 꼬이는 것 같았다. 아내가 싫은 것 억지로 시킨다고 짜증까지 냈다. 그 때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차후 내가 몸이 더 좋아진 모습을 아내에게 보여 설득해보자고 생각을 고쳤던 것 같다. 그때 내 마음속에는 오금희를 쉬지 않고 꾸준히 하면 몸이 아주 정상적으로 될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굳건한 믿음이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10개월을 토요일 6시에 남편 없이 저녁을 보내 준 아내에게 내가 받을 오금희 수료증을 보여주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살아 생전 그렇게 살을 빼라고 말씀하셨던 어머니께 더 이상은 못난 아들의 건강에 대해서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수료증을 보여드리고 싶다.
2004.9
- 마침내 오금희를 다 배우게 되었다.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중간에 한 두 번 어쩔 수 없이 빠진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강의에 참가했고 마침내 초급 반을 마친 것이다. 이때 마지막으로 수공을 배우기 전날 나는 너무나도 떨린 적이 있었다. 뭐라 할 수 없는 감동 같은 것이었다. 오금희의 완만하고 부드러운 동작처럼 배우는 과정 그 자체도 참 느릿 느릿 한 것이었다. 성격 급하고 단숨에 일하는 것을 즐겨 하는 나로서는 이런 식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배움은 처음이었고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니 그런 시간을 참아 내는 마지막 순간이 아무래도 감동이었던 것이다. 체력도 더 나아졌고 다리는 더 튼튼해졌다. 피로감도 줄었다. 전체적으로 내 몸이 나아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처음에는 단지 살 빠지는 것에 중점을 두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몸의 모든 곳에서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하루하루 계속해서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되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 오금희를 열심히 하지 못한 후회는 없었다. 내 스스로도 놀랄 만큼 노력을 기울인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확하게 동작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은 있었다. 그렇지만 큰 틀에서는 많이 벗어나지 않게 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점점 오금희를 하면서 회사에서 하는 축구시합에서 점점 더 잘 뛰고 체력적으로 오랫동안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느린 동작을 하는 데 체력이 강해지는 것도 이상했다. 몸이 한결 부드러워 졌고 체력적으로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술도 강해졌다. 하면서 뼈의 한 마디 한 마디 느끼면서 한다는 기분으로 하면 몸에서 어떤 따뜻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뱃살은 상당히 없어진 것 같은데 몸무게는 오금희 시작하기 전에 비해서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 보다 체중이 많이 줄지는 않은 것 같다. 오금희 시작 전에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에 비해서 7kg 정도 줄었다. 다만 줄어든 살이 신기하게도 뱃살에서 모두 빠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몸의 거북함이라든가 피곤함은 정말로 많이 개선된 느낌이다. 오금희를 하면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르지만 결과는 그렇다.
2004.10 ~ 현재
- 중급반에서 동작 하나하나를 다시 짚어가면서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나의오금희가 좀더 오금희스러워 지는 것 같다. 초급반에서 많이 부드러워지고 튼튼해진 몸과 동작들의 큰 모양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세세한 교정을 하면서 오금희가 단순하게 체조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의미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14기 분들하고 세세히 동작에 대해서 의논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교정했던 것 같다. 나는 강의 시간에 다른 분들이 앞에 나와서 하는 것을 보고 아주 사소한 것 까지 언급했다. 좀더 정확하게 확실하게 알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나는 저녁 6시부터 강의가 있었지만 그 전에 일찍 서대문 수련장에 가서 나 혼자 연습하고 박영선 선생님하고 같이 연습하는 시간을 6월부터 갖고 있었다. 그리고 오금희 도해 책도 열심히 읽었다. 좀더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 나름대로 오금희를 만든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았다. 중급반을 거치면서 그런 부분들을 고쳐야 했다. 그리고 시선이 손을 따라가면서 좀더 여유가 있게 내 몸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면서 좀더 정확하게 동작을 바로 잡으려고 생각했다. 완전하지 않지만 혼자서도 엉뚱하게 하지 않고 기본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정도의 수준으로 가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최근에는 몸이 아주 편안하다. 거북함이 없어졌다. 사람들하고 더 많이 어울려도 피곤해 하지 않는 것 같다. 신체적인 능력이 향상되어서 인지 정신력도 더 강해진 느낌이다. 집중력도 더 강해졌다.
-언젠가 14기 박영선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화타오금지희가 우리 몸 중 만져주지 않는 곳이 있는가? 박선생님은 뭐 그런 골치 아픈 것 생각하느냐고 넘기셨지만 가끔 나는 오금희가 내 몸 중 빼놓는 곳은 어디인가 하는 생각을 숨은 그림 찾듯이 머리 속에서 궁리해본다. 아직까지 적당한 신체부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발가락, 발바닥, 발목, 무릎, 다리, 몸통, 허리, 척추, 내장, 폐, 간, 가슴, 어깨, 목, 눈, 귀, 코, 혀, 입술 등 정말 세세히도 한 두 번 씩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온몸을 빼놓지 않고 하나하나 자극을 한다. 예전에 나는 걷는 운동이나 오금희 하는 것이나 모두 같은 운동이니까 하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오금희가 갖는 전체적인 몸에 대한 관심은 걷은 운동이 따라 올 수 없다는 것이 최근의 내 결론이다. 그래서 걷을 거라면 오금희를 배워서 하는 것이 더 몸을 세밀하고 적당하게 자극을 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금희는 척추운동이 많은 것 같다. 꼬리뼈부터 한 마디 한마디 움직이면서 해보라는 선생님 말씀이 중급반을 마치면서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면서 사람 몸이 참 복잡하고도 신비하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오금지희를 하다 보면서 사람 몸의 생김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람의 뼈, 관절이 오금희를 하면서 어떻게 움직이고 팔,다리,목의 움직임이 내부 장기와 어떻게 연결되어 움직이는가? 왜 이런 동작들이 만들어 졌는가? 하는 궁금증도 크다. 아마 이런 분야는 한의학을 공부하신 분들이 더 관심을 갖겠지만 말이다.
-초급반을 어느 정도 하고 나서 오금희를 하지 않은 적이 있다. 게으름이 생긴 것이었다. 오랫동안 배우다 보니 마음이 처음과 같지 않고 풀려서 매일 하지 못하는 것이다. 10개월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루에 1시간 정도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나는 게을러졌던 시간을 제외하고 아침 일찍 저녁 늦게 점심 시간 등 나한테 주어지는 자투리 시간을 오금희에 투자했다. 주말에 혼자 있을 때 오금희는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고 몸이 불편하다 싶으면 오금희를 하고 나서 개운해지는 것이 좋았다. 오금희가 진정 빛 날려면 내 몸에 맞도록 계속 다듬어 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게을러져서 바빠서 오금희를 놓는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이 오금지희도 결국은 개인의 노력이 있어야만 그 가치가 생기는 것 같다. 배우는 시간은 중급반으로 끝나지만 이를 놓지 않고 일생을 가져가려고 한다면 꾸준한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동작이 약간 어설프고 정확하지 않더라도 매일매일 꾸준히 하면서 바른 동작을 몸에 맞혀가는 것은 각 개인의 몫인 것 같다. 결국은 구슬도 꿰매야 보배인 것이다.
-오금희를 하다 보면 눈의 시선이 손을 꾸준히 쫓아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그 것이 잘 안될 때 즉 마음이 심란할 때는 동작을 끝까지 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중간에 멈추고 하지 않았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왠지 힘이 없고 몸을 움직이는 것에 거북함이 들었다. 녹참원조를 하기 전에 오랫동안 마음을 가라 앉히고 집중하려는 노력이 그래서 필요한 듯 하다. 몰입하지 않으면 끝나고 나서도 느낌이 반감되는 것 같다.
-아내는 지금 내가 중급반을 마무리할 즈음 월요일반에서 2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아내는 내가 생일선물로 수료증을 원한다는 말에 남편 소원 들어 준다고 시작했다. 하면서 아내의 고질병이었던 변비에 효과를 조금씩 보고 있으며 몸이 시원한 느낌이 있을 때가 가끔 있다고 한다. 아내는 평소 두통, 어깨 결림, 변비, 감기 등의 잔병이 자주 있다. 그리고 등이 약간 구부정하기도 하다. 오금희의 시작이 나의 강제에 의한 것인지 몰라도 나는 확신한다. 아내가 차후 분명히 오금희를 좋아하고 고맙게 생각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내 경험상 잘하든 못하든 쉬지 않고 큰 원칙만을 아내가 지켜간다면 분명히 그 대가를 얻을 것이다. 아내가 하루에 최소한 배운데 까지 한 번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더 많이 하도록 하지도 않고 한번 이면 될 듯하다. 오금희는 스스로 한 만큼만 그 진가를 드러내는 운동인 것 같다.
-지난 10개월을 비가오나 더우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꾸준히 수련에 참가한 나 스스로가 대견하다. 그것도 운동하려는 목적으로 꾸준하게 강의에 참가하고 집에서도 몇번의 게으름을 빼놓고는 항상 했던 나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낀다. 이렇게 내가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성격과 잘 맞는 오금희가 갖고 있는 재미에 나도 모르게 빠져 있어 그랬던 같다. 천천히 한 동작 한 동작을 집중해서 시선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적당하게 땀이 나고 온몸을 구석구석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찾아 일일이 움직여 준다. 비틀고 앉고 일어서고 돌리고 쳐다보는 등의 동작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 된다. 그래서 일상 생활하다가 어떤 동작을 하게 될 때 오금희 동작이 약간 응용이 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빨래를 널거나 높은 곳에서 물건을 내릴 때 등은 원리삼초/원비정거/원비우거가 생각나고 탁자 밑이나 의자 밑에 떨어진 물건을 집으려고 할 때 호선우좌나 원섬좌반 같은 앉는 동작이 생각난다.
- 나는 주말에 3번 이상은 오금희를 했던 것 같다. 주말에 아내가 회사에 가는 바람에 나한테 주어진 시간 동안 나는 시흥계곡으로 가서 오금희를 했다. 오금희하기 위해서 시흥계곡에 가게 되면서 그 계곡을 좀더 자세하게 구석구석 살펴 보았다.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봄의 파릇파릇하던 숲에서 여름의 불타는 녹색의 숲에서 가을의 낙엽진 숲에서 시간의 흐름과 같이 나의 오금희는 흘러가면서 점점 더 영글어 갔던 것 같다. 오금희를 숲에서 하면서 바람이 불어줄 때 너무 좋았던 것 같다. 5월의 아카시아 꽃잎이 바람에 눈처럼 나부낄 때 그 꽃잎이 내 어깨에 내려 앉으면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던 기억이 있다. 여름날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을 때 살며시 산으로 불어 올라가던 바람에 땀이 식으면서 시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을날 뒹구는 낙엽과 아직 채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을 보면서 금계독립 자세에 머물렀을 때 불던 바람은 황홀하게 나를 만들었다. 바람에 낙엽이 날렸고 나도 같이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아직 겨울의 바람속에서의 경험은 없지만 언제 한번 눈 밭 위에서 차디찬 겨울 바람을 맞으면서 해보련다. 그리고 시흥계곡을 감싸앉고 있는 호암산을 자주 올랐다. 오금희 하기 전에 높지도 않은 그 산을 오르기 위해서 중간에 숨이 차서 여러 번 쉬었다. 오금희로 단련된 후 부터는 한번도 쉬지 않고 올라 갈 수가 있었다.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듯이 오금희 배우는 과정도 초급을 거쳐 중급에 끝이 났다. 끝은 또 하나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했던가! 오금희를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서 평생을 하려고 다짐해 본다. 좋은 운동이 많지만 나한테는 내 몸에 너무나 잘 맞는 오금희면 충분한 것 같다. 오금희 하나 제대로 하기도 힘든 것 같다. 어떤 운동이든 쉬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오금희는 나이가 들어서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인 듯 하다. 차후 10년, 20년 , 30년 뒤에도 나는 녹참원조에서 선호배월까지 하고 있을 것 같다.
-지난 10개월은 오금희에 대한 배움과 수련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강의시간에 같이 땀 흘리고 서로의 동작을 봐주었던 14기 분들과의 행복한 배움의 시간은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같이 응원하면서 웃고 차와 떡을 나누면서 지나간 따스한 시간이 고맙게 생각된다. 오금희의 올바른 길로 성심으로 인도해주신 김성기 교수님께는 너무나 큰 은혜를 입었다. 감사합니다. 늘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동작하나하나 세심하게 시연해 주시던 모습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화타 오금지희는 몸으로 말한다는 것을 체험했던 것 같습니다. 수련시간에 뒤에서 강의에 차질이 없도록 이것 저것 신경 써주신 고급반 선생님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최정식 선생님과 박윤선 선생님의 가르침도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수료증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1900년이라는 시간과 중국과 한국이라는 공간을 넘어 인연이 닿은 화타선생님의 인간의 몸에 대한 처방인 오금희를 접하게 된 것은 큰 행운입니다. 화타선생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