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희 수련소감
박 세 연
비유컨대, 나와 오금희를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관계로 말하긴 곤란할 것 같다. 기공을 공부하기 위해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에 입학한 2001년 3월, 누군가 오금희 특강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흘려듣고 말았다. 당시 내가 맵시 있는 동공과 어디선가 운명적으로 맞닥뜨리길 고대하고 있었음에 비추어보면 다소 의외인 일이었다. 기공을 처음 안 뒤 내가 접한 것들은 한결같이 內丹 계열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지금도 단전호흡이니 단학이니 하는 간판이야 흔히 눈에 띄지만 동공을 가르치는 수련원은 눈을 씻고 봐도 없으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그쪽을 드나들다 上氣 증세를 겪고, 그것을 태극권을 통해 극복한 뒤에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이 동공의 중요성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역근경, 팔단금과 더불어 고전 3대 기공으로 일컬어지는 오금희를 그토록 쉽게 무시해버리고 말았다. 이제 와서 그것을 새삼 거론하는 것이 우습긴 해도 그때 나는 오금희에 붙은 소위 '고전'이라는 수식이 몹시 못마땅했다.
80년대이래 중국에서 성행한 공법의 대부분이 소위 '현대기공'이었다. 그것들은 대체로 전래의 공법을 과학적이고 변증적인 방식으로 개선한 것들로, 간결하고 우아한 동작과 탁월한 효과를 자랑했다. 장명무의 기공자공요법, 조금향의 학상장, 양매군의 대안공, 마예당의 양기공, 곽림의 신기공 등이 모두 그런 예에 속했다. 90년대 이후에는 법륜공이 기공천하(?)를 장악하다시피 했는데,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 법륜공 역시 종사인 이홍지가 선밀공을 바탕으로 하고 몇 가지 우수한 공법들을 가미하여 창안하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공계에도 몇 가지 경쟁력 있는 공법들을 결합하는 일종의 합병·인수(?)와, 공법의 과학화·현대화가 강력한 트렌드로 자리잡은 셈이었다.
그랬으니 낡고 오래기로는 필적할 상대가 없는 오금희에 관심이 갈 턱이 없었다. 더군다나 오금희의 창안자로 알려진 화타는 관우, 장비가 말달리고 큰칼 휘두르던 후한 시대의 사람이다. 그러니 까마득한 세월 저편에 화타란 사람이 있어 오금희를 만들었는지도 의심이 가지만, 설혹 그랬다 하더라도 그가 만든 오금희의 원형은 실전되고 없어야 마땅했다. 사실 꽤 유명하다는 고전기공도 기록을 찾아보면 두꺼비처럼 배가 나온 사내가 어색한 자세를 취한 몇 장의 導引圖로 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오금희도 보나마나 엉성한 몇 가지 동작을 엮어 이름만 그럴듯하게 붙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오금희의 계승자라고 주장하는 김 모 교수도 얼치기 사기꾼일거라고, 나는 일찌감치 결론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경과로 나와 오금희의 첫 만남은 등을 대고 비껴 가는 것으로 끝났다.
그렇게 견고했던 내 알음알이가 산산이 부서져나간 건 몇 달 뒤 경기도 양평에서 있었던 신입생환영회 겸 학술대회에서였다.
학술대회의 마지막 순서에 김교수님의 오금희 시범이 있었다. 그날 김교수님은 오금희의 동양철학적 의의와 수련요결에 대해 아카데미즘의 향내가 짙게 배어나는 설명을 하셨지만, 그래도 단연 주목을 받은 것은 박선생님과 함께 보이신 오금희 시연이었다. 두 분의 시범이 진행되는 동안 내 속에서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처절하리만큼 철저하게 부서졌다. 오금희는 내가 추측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동작들은 다른 기공류에서 보지 못한 것들임은 물론이고, 기상천외하다고 표현해야 할만큼 개성 있고 다양했다. 완만함과 부드러움이 주를 이루면서도 강하고 힘찬 동작이 포함되어 있는 점도 인상 깊었다. 더욱 놀란 것은 시간관계상 7, 8분만에 멈춰진 그 시범이 전체의 약 1/3에 해당한다는 설명이었다. 그 정도면 끊임없이 수정되고 증보된 현대의 어떤 기공에 비해서도 소략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오금희에 대한 나의 멸시는 관심과 애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릇 사랑이 언제나 그러하듯, 이쪽에서 다가서자 저쪽이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이미 오금희 특강반은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그나마 2학기에는 특강이 설치되지 않을 예정이었다. 2학기가 되자 학교 안에서 오금희의 자취는 사라지고, 김교수님이 학교 바깥에서 수련장을 구하고 있다는 미심쩍은 얘기만 간간이 들려왔다.
내 생각은 이런 것이다. 태극권의, 상기도 해소해줄 만큼의 하체 편향성이 내겐 지나쳐 보였고, 오금희를 돋보이게 하는 거울이 되는 것 같다. 태극권은 상체 중에서는 어깨와 팔을 움직일 뿐, 동체와 머리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 오금희는 징그럽다싶을 정도로 사지를 비틀고, 꺾고, 쥐어짜고, 숙이고, 흔들고, 비비고, 두들긴다. 그러니 수련요결을 챙길 수 없는 초보자가 태극권과 오금희를 했을경우의 스트레칭 효과만 비교를 해봐도 차이가 뚜렷해 보이는 것이다. 나 자신의 경우에도 같은 시간 태극권과 오금희를 수련할 경우 오금희 쪽에서 몸이 훨씬 가벼워지고 상쾌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태극권이 동체와 머리를 움직이지 않는 것은 태극권이 원래 무술로 창안된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 두 주먹을 쥐고 적과 마주 선 사람이 상체를 굽히거나 고개를 돌리면 매를 맞을 일밖에 없을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원래 도인술로 개발된 오금희에는 이런 제약이 있을 이유가 없다. 이런 태생의 차이가 양생술로서 양자의 효과를 가름하는 열쇠가 된 것 같다.
오금희의 태극권에 대한 우위를 또 하나 들자면 나는 재미를 꼽고 싶다. 태극권의 철학은 심원하고 정묘하다. 태극의 兩儀, 즉 음양이 만나 기를 산생한다는 근본원리 역시 명쾌하다. 실제로, 하체는 '기의 공장'이라고 말하는 노골적인 견해도 있으니, 다리를 많이 쓰는 태극권이 기를 기르는 데 적합한 것임이 분명하다. 또 오래 수련하면 호신과 양생의 체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하지만 각 문파마다 산처럼 쌓인 요결과 비법이 말하듯이 태극권은 어렵기가 끝이 없다. 물론 동작 자체로는 오금희보다 어려울 것이 없다. 겨우 8문 5보 13세의 전형적인 동작을 반복하여 조합한 것이니 복잡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만들어진 점이 재미없음에는 크게 기여하면서도 복잡한 요결로 인해 수련의 효과를 높이는 데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내가 처음 태극권을 배우고자 했을 때에는 그것을 가르치는 곳도, 보고 배울만한 자료도 거의 없어서, 태극권을 기공으로 재편한 임후성의 태극기공 18식을 먼저 배웠다. 하지만 보법과 투로의 적용이 없는 태극기공은 효과도 별로 없고 재미도 없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간화태극권 24식의 비디오 테이프를 구해 독습을 했고, 나중에 기회가 닿아 선생으로부터 직접 배우기도 했다. 그로 해서 상기 증세가 사라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음에도 여전히 재미는 없었다. 좀 심하게 말하면 하기 싫어 몸부림치면서도 어쩔 수 없어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사라진 흥미를 되찾기 위해 다시 비디오 테이프를 사다 정자 태극권을 익혔지만 역시 익힐 때를 제외하곤 재미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상기를 잡은 것을 제외하곤 별 효과도, 진전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다.
반면 오금희는 일단 시작을 하면 딴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동작의 다양한 변화 때문에 징징거리고 투덜거리면서 동작을 매끈히 이어갈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일단 입구에 들어서면 그 자체의 관성에 따라 매듭에 이르게 되고, 이렇게 해서 한 구비를 더 돌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가 닿게 하는 점에 또 다른 오금희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늘 오금희에 끌려 다닌다는 말은 아니다. 오금희의 동작들이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활달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기에, 가끔씩 나도 언젠가는 자신의 존재를 잊고 물아일체의 경지에 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참으로 야무진 의심도 해보는 것이다.
최근에 단전호흡이나 정좌를 수련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태극권을 몸풀기(도인) 체조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물론, 단전호흡이나 정좌를 수련하기 전에 몸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에, 수련단체마다 나름의 도인법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요가의 아사나나 스트레칭 프로그램과 유사하여, 몹시 피곤한 사람이나 몸이 굳은 사람에겐 대단히 고통스런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그다지 힘들지 않는 태극권으로 몸풀기를 대신하는 꾀를 내었고, 그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는 중국의 경우 정공을 위주로 하는 수련단체들도, 정공을 수련하기에 앞서 동공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을 푸는 체계를 가지고 있음에 비춰보면 지극히 타당한 방법이다. 그리고 나 역시 전에 태극권 다음에 정좌를 하는 식으로 수련해본 적도 있다. 물론 오금희를 몰랐을 때의 얘기이다.
오금희를 배우면서 나는 호흡이나 정좌수련 전의 도인체조로는 태극권보다 오금희가 훨씬 낫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오금희는 태극권에 비해 훨씬 동적인데다가 사지를 伸展하는 동작을 많이 담고 있어서 몸을 풀어주는 효과에서도 그만큼 뛰어나다는 말이 된다. 내 경험에 비춰 봐도, 오금희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긴장을 풀어주면 그야말로 정좌수련을 하기 위한 최적의 상태가 되곤 했다. 특히 척추와 어깨 부위가 부드러워지고 가슴이 편안해져서 오래도록 좌식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호흡이나 정좌를 수련하는 사람들이 오금희를 배워 자신의 수련에 활용하면 훨씬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는 주제넘은 생각도 하게된다.
생각해 보니 지난 2년간 나는 꽤 여러 가지 기공을 접했다. 직접 공법을 창시한 분이나 정통성을 가진 계승자로부터 배운 동공만 너덧 가지가 된다. 그것들은 제각기 나름의 철학과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화타 오금희 만큼 기본에 철저하고, 정교하며, 독창적인 기공은 찾을 수 없었다. 현대적 마케팅 수단에만 기대거나 기이한 세계를 말하는 수련단체가 날로 늘고 있는데도, 우직하게 고형을 지키고 몸으로 닦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화타문의 가르침도 드물게 뜻깊은 것으로 느껴진다. 새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니라는 교훈 역시 오금희를 알고 덤으로 얻은 수확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오금희는 나 같이 아직 깊은 맛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한 번 수련하면 딱 고만큼의 효과는 즉시 되돌려주어, 언제나 지불이 보증된 수표처럼 믿음을 주어왔다는 사실을 낯간지러운 애정표현 대신 적어 둔다
이제 마치려고 하니 잘 알지도 못하는 태극권을 매도한 느낌이 들어 걱정이다. 그리고 이젠 성함마저 잊은, 나에게 태극권을 가르쳤던 선생님에게 송구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내 진정한 의도는 오금희에 대한 찬탄과 감사이지 태극권에 대한 비하가 아니다. 이 지면이 특별히 오금희를 위한 것인 만큼 혹시 태극권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게 되더라도 양해해주길 바란다.
지난 한 해 같이 땀흘리고, 게으른 제게 채찍이 되어 주셨던 수련 동지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금희의 큰 틀을 보여주시고 기공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신 김성기 선생님, 늘 오금희를 아름다운 춤사위로 실연해 보이시며 우리 반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박윤선 선생님, 두 분에게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을 좋은 인연으로 얽어주신 화타 어른 고맙습니다.
박 세 연
비유컨대, 나와 오금희를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관계로 말하긴 곤란할 것 같다. 기공을 공부하기 위해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에 입학한 2001년 3월, 누군가 오금희 특강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흘려듣고 말았다. 당시 내가 맵시 있는 동공과 어디선가 운명적으로 맞닥뜨리길 고대하고 있었음에 비추어보면 다소 의외인 일이었다. 기공을 처음 안 뒤 내가 접한 것들은 한결같이 內丹 계열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지금도 단전호흡이니 단학이니 하는 간판이야 흔히 눈에 띄지만 동공을 가르치는 수련원은 눈을 씻고 봐도 없으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그쪽을 드나들다 上氣 증세를 겪고, 그것을 태극권을 통해 극복한 뒤에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이 동공의 중요성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역근경, 팔단금과 더불어 고전 3대 기공으로 일컬어지는 오금희를 그토록 쉽게 무시해버리고 말았다. 이제 와서 그것을 새삼 거론하는 것이 우습긴 해도 그때 나는 오금희에 붙은 소위 '고전'이라는 수식이 몹시 못마땅했다.
80년대이래 중국에서 성행한 공법의 대부분이 소위 '현대기공'이었다. 그것들은 대체로 전래의 공법을 과학적이고 변증적인 방식으로 개선한 것들로, 간결하고 우아한 동작과 탁월한 효과를 자랑했다. 장명무의 기공자공요법, 조금향의 학상장, 양매군의 대안공, 마예당의 양기공, 곽림의 신기공 등이 모두 그런 예에 속했다. 90년대 이후에는 법륜공이 기공천하(?)를 장악하다시피 했는데,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 법륜공 역시 종사인 이홍지가 선밀공을 바탕으로 하고 몇 가지 우수한 공법들을 가미하여 창안하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공계에도 몇 가지 경쟁력 있는 공법들을 결합하는 일종의 합병·인수(?)와, 공법의 과학화·현대화가 강력한 트렌드로 자리잡은 셈이었다.
그랬으니 낡고 오래기로는 필적할 상대가 없는 오금희에 관심이 갈 턱이 없었다. 더군다나 오금희의 창안자로 알려진 화타는 관우, 장비가 말달리고 큰칼 휘두르던 후한 시대의 사람이다. 그러니 까마득한 세월 저편에 화타란 사람이 있어 오금희를 만들었는지도 의심이 가지만, 설혹 그랬다 하더라도 그가 만든 오금희의 원형은 실전되고 없어야 마땅했다. 사실 꽤 유명하다는 고전기공도 기록을 찾아보면 두꺼비처럼 배가 나온 사내가 어색한 자세를 취한 몇 장의 導引圖로 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오금희도 보나마나 엉성한 몇 가지 동작을 엮어 이름만 그럴듯하게 붙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오금희의 계승자라고 주장하는 김 모 교수도 얼치기 사기꾼일거라고, 나는 일찌감치 결론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경과로 나와 오금희의 첫 만남은 등을 대고 비껴 가는 것으로 끝났다.
그렇게 견고했던 내 알음알이가 산산이 부서져나간 건 몇 달 뒤 경기도 양평에서 있었던 신입생환영회 겸 학술대회에서였다.
학술대회의 마지막 순서에 김교수님의 오금희 시범이 있었다. 그날 김교수님은 오금희의 동양철학적 의의와 수련요결에 대해 아카데미즘의 향내가 짙게 배어나는 설명을 하셨지만, 그래도 단연 주목을 받은 것은 박선생님과 함께 보이신 오금희 시연이었다. 두 분의 시범이 진행되는 동안 내 속에서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처절하리만큼 철저하게 부서졌다. 오금희는 내가 추측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동작들은 다른 기공류에서 보지 못한 것들임은 물론이고, 기상천외하다고 표현해야 할만큼 개성 있고 다양했다. 완만함과 부드러움이 주를 이루면서도 강하고 힘찬 동작이 포함되어 있는 점도 인상 깊었다. 더욱 놀란 것은 시간관계상 7, 8분만에 멈춰진 그 시범이 전체의 약 1/3에 해당한다는 설명이었다. 그 정도면 끊임없이 수정되고 증보된 현대의 어떤 기공에 비해서도 소략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오금희에 대한 나의 멸시는 관심과 애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릇 사랑이 언제나 그러하듯, 이쪽에서 다가서자 저쪽이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이미 오금희 특강반은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그나마 2학기에는 특강이 설치되지 않을 예정이었다. 2학기가 되자 학교 안에서 오금희의 자취는 사라지고, 김교수님이 학교 바깥에서 수련장을 구하고 있다는 미심쩍은 얘기만 간간이 들려왔다.
내 생각은 이런 것이다. 태극권의, 상기도 해소해줄 만큼의 하체 편향성이 내겐 지나쳐 보였고, 오금희를 돋보이게 하는 거울이 되는 것 같다. 태극권은 상체 중에서는 어깨와 팔을 움직일 뿐, 동체와 머리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 오금희는 징그럽다싶을 정도로 사지를 비틀고, 꺾고, 쥐어짜고, 숙이고, 흔들고, 비비고, 두들긴다. 그러니 수련요결을 챙길 수 없는 초보자가 태극권과 오금희를 했을경우의 스트레칭 효과만 비교를 해봐도 차이가 뚜렷해 보이는 것이다. 나 자신의 경우에도 같은 시간 태극권과 오금희를 수련할 경우 오금희 쪽에서 몸이 훨씬 가벼워지고 상쾌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태극권이 동체와 머리를 움직이지 않는 것은 태극권이 원래 무술로 창안된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 두 주먹을 쥐고 적과 마주 선 사람이 상체를 굽히거나 고개를 돌리면 매를 맞을 일밖에 없을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원래 도인술로 개발된 오금희에는 이런 제약이 있을 이유가 없다. 이런 태생의 차이가 양생술로서 양자의 효과를 가름하는 열쇠가 된 것 같다.
오금희의 태극권에 대한 우위를 또 하나 들자면 나는 재미를 꼽고 싶다. 태극권의 철학은 심원하고 정묘하다. 태극의 兩儀, 즉 음양이 만나 기를 산생한다는 근본원리 역시 명쾌하다. 실제로, 하체는 '기의 공장'이라고 말하는 노골적인 견해도 있으니, 다리를 많이 쓰는 태극권이 기를 기르는 데 적합한 것임이 분명하다. 또 오래 수련하면 호신과 양생의 체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하지만 각 문파마다 산처럼 쌓인 요결과 비법이 말하듯이 태극권은 어렵기가 끝이 없다. 물론 동작 자체로는 오금희보다 어려울 것이 없다. 겨우 8문 5보 13세의 전형적인 동작을 반복하여 조합한 것이니 복잡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만들어진 점이 재미없음에는 크게 기여하면서도 복잡한 요결로 인해 수련의 효과를 높이는 데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내가 처음 태극권을 배우고자 했을 때에는 그것을 가르치는 곳도, 보고 배울만한 자료도 거의 없어서, 태극권을 기공으로 재편한 임후성의 태극기공 18식을 먼저 배웠다. 하지만 보법과 투로의 적용이 없는 태극기공은 효과도 별로 없고 재미도 없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간화태극권 24식의 비디오 테이프를 구해 독습을 했고, 나중에 기회가 닿아 선생으로부터 직접 배우기도 했다. 그로 해서 상기 증세가 사라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음에도 여전히 재미는 없었다. 좀 심하게 말하면 하기 싫어 몸부림치면서도 어쩔 수 없어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사라진 흥미를 되찾기 위해 다시 비디오 테이프를 사다 정자 태극권을 익혔지만 역시 익힐 때를 제외하곤 재미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상기를 잡은 것을 제외하곤 별 효과도, 진전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다.
반면 오금희는 일단 시작을 하면 딴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동작의 다양한 변화 때문에 징징거리고 투덜거리면서 동작을 매끈히 이어갈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일단 입구에 들어서면 그 자체의 관성에 따라 매듭에 이르게 되고, 이렇게 해서 한 구비를 더 돌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가 닿게 하는 점에 또 다른 오금희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늘 오금희에 끌려 다닌다는 말은 아니다. 오금희의 동작들이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활달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기에, 가끔씩 나도 언젠가는 자신의 존재를 잊고 물아일체의 경지에 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참으로 야무진 의심도 해보는 것이다.
최근에 단전호흡이나 정좌를 수련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태극권을 몸풀기(도인) 체조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물론, 단전호흡이나 정좌를 수련하기 전에 몸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에, 수련단체마다 나름의 도인법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요가의 아사나나 스트레칭 프로그램과 유사하여, 몹시 피곤한 사람이나 몸이 굳은 사람에겐 대단히 고통스런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그다지 힘들지 않는 태극권으로 몸풀기를 대신하는 꾀를 내었고, 그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는 중국의 경우 정공을 위주로 하는 수련단체들도, 정공을 수련하기에 앞서 동공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을 푸는 체계를 가지고 있음에 비춰보면 지극히 타당한 방법이다. 그리고 나 역시 전에 태극권 다음에 정좌를 하는 식으로 수련해본 적도 있다. 물론 오금희를 몰랐을 때의 얘기이다.
오금희를 배우면서 나는 호흡이나 정좌수련 전의 도인체조로는 태극권보다 오금희가 훨씬 낫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오금희는 태극권에 비해 훨씬 동적인데다가 사지를 伸展하는 동작을 많이 담고 있어서 몸을 풀어주는 효과에서도 그만큼 뛰어나다는 말이 된다. 내 경험에 비춰 봐도, 오금희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긴장을 풀어주면 그야말로 정좌수련을 하기 위한 최적의 상태가 되곤 했다. 특히 척추와 어깨 부위가 부드러워지고 가슴이 편안해져서 오래도록 좌식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호흡이나 정좌를 수련하는 사람들이 오금희를 배워 자신의 수련에 활용하면 훨씬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는 주제넘은 생각도 하게된다.
생각해 보니 지난 2년간 나는 꽤 여러 가지 기공을 접했다. 직접 공법을 창시한 분이나 정통성을 가진 계승자로부터 배운 동공만 너덧 가지가 된다. 그것들은 제각기 나름의 철학과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화타 오금희 만큼 기본에 철저하고, 정교하며, 독창적인 기공은 찾을 수 없었다. 현대적 마케팅 수단에만 기대거나 기이한 세계를 말하는 수련단체가 날로 늘고 있는데도, 우직하게 고형을 지키고 몸으로 닦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화타문의 가르침도 드물게 뜻깊은 것으로 느껴진다. 새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니라는 교훈 역시 오금희를 알고 덤으로 얻은 수확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오금희는 나 같이 아직 깊은 맛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한 번 수련하면 딱 고만큼의 효과는 즉시 되돌려주어, 언제나 지불이 보증된 수표처럼 믿음을 주어왔다는 사실을 낯간지러운 애정표현 대신 적어 둔다
이제 마치려고 하니 잘 알지도 못하는 태극권을 매도한 느낌이 들어 걱정이다. 그리고 이젠 성함마저 잊은, 나에게 태극권을 가르쳤던 선생님에게 송구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내 진정한 의도는 오금희에 대한 찬탄과 감사이지 태극권에 대한 비하가 아니다. 이 지면이 특별히 오금희를 위한 것인 만큼 혹시 태극권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게 되더라도 양해해주길 바란다.
지난 한 해 같이 땀흘리고, 게으른 제게 채찍이 되어 주셨던 수련 동지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금희의 큰 틀을 보여주시고 기공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신 김성기 선생님, 늘 오금희를 아름다운 춤사위로 실연해 보이시며 우리 반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박윤선 선생님, 두 분에게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을 좋은 인연으로 얽어주신 화타 어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