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의 오금희 수련기
김 현 지
2002년에 내가 한 일 중 가장 보람있고 즐거웠던 일을 꼽으라면 난 주저하지 않고 '오금희를 배운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난 그리 약하진 않지만 운동신경이 둔해서 어릴때는 운동회라도 있으면 달리기 출발선 앞에서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내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느낌이 가끔 들었고(^^* 이건 아마 운동신경이 워낙 둔해서일 듯 하다) 긴장을 잘하는 성격탓에 어깨가 늘 아팠다.
내가 처음 오금희를 알게 된 건 한의대에 입학해서 예과 1학년 때 기공학 강의를 들을 때였다. 고대 중국의 醫聖 화타께서 만드셨다는 오금지희. 자잘한 글씨 속 에 뭍혀 무심하게 넘어갔었다. 그때는 오금희가 벌써 사장된 줄 알고 있었고 5가지 동물의 행동을 본따 만들었다고 하는 설명에 동작이 우스꽝스러우려니 하고 원시적인 고대의 도인술... 정도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평소에 내몸 하나는 간수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해서 기공이나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몇가지 알아보고 배워봤지만 동작이 자연스럽지 않아서 특정한 장소에서 해야 한다거나, 배우기가 지루해서 중간에 포기하곤 했었다. 그후 다시 오금희에 관해 듣게 된 건 2년이 지나 본과 1학년때였다. 한의학 공부 를 하려면 오금희를 하면 좋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배울 기회가 없어서 1년동안 '어떻게 하면 오금희를 배울까...?'하고 궁리하며 보내던 차... 우연히 오금희를 가르치시는 분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됐고 다행이 인연이 닿아 2002년 3월부터 오금희를 배울수 있게 되었다.
빽빽한 한의대의 커리큘럼 중 유일한 낙이 된다는 본과 2학년 1학기는 정말 황금같은 시기였다. 난 시간 나는 대로, 학교 주위 산으로 올라가 토요일마다 조금씩 배워오는 오금희 하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나무들과 나란히 서서 천천히 팔을 올리고 호흡을 내리고, 먼 산을 바라보다가 다시 땅으로 시선을 돌려 들꽃을 바라보고... 따듯한 햇살섞인 바람은 행복 그 자체였다. 그리고 오금희를 마치고 난 후 온몸이 가뿐해지는 상쾌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당구 처음 배우는 사람은 밤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당구공이 천장에 굴러다닌다고 하더니, 나는 수업시간에도 머리속에선 오금희 동작들이 오락가락하며 춤을 추고 다녔다. 그렇게 한주 한주 지나가고 있었는데,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산비탈을 올라도 숨이 차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도 모르는 새에 다리가 많이 튼튼해진 것이다. 약간 구부정하던 등과 어깨도 많이 펴졌고, 한참 동안 책상에 앉아있어도 어깨가 아프지 않았다. 한의학에서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오장육부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 만큼이나 정신활동도 현실적으로 다루며, 건강한 정신은 오장의 건강한 생명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조바심을 내다가도 오금희를하면 마음이 가라앉기도 하고 기분이 명랑해지는 것 같다. 몸이 유연해 지면 마음도 유연해지는 것 같다고 우리 사부님도 그러셨고. ^^*
매주 대전에서 열심히 배우러온다고 대견해 하셨지만 사실, 난 학교 수업보다 오금희하며 배우는 게 더 재미있었다. ^^; 박윤선 선생님께선 우리반을 처음 맡은반이시라며 첫사랑 대하듯(?)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셨고, 같이 오금희를 배우는 분들이 너무 좋은 분들이라 우리반은 수업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홍선생님께서는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좋은 말씀들로, 박선생님께선 기공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끊이지 않는 유머로, 신선생님께선 성실하게 연구하시는 모습으로, 지영언니는 한의학적인 이론을 알기쉽게 설명함으로 오금희 수련 시간을 더욱더 의미있고 즐겁게 해주셨다.
벌써 1년이 지나 초급반과 중급반을 수료하게 되어 이렇게 수련기를 쓰고 있다. 소중한 인연을 만나 좋은 수련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열심히 연마해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보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수련기를 마칩니다.
김 현 지
2002년에 내가 한 일 중 가장 보람있고 즐거웠던 일을 꼽으라면 난 주저하지 않고 '오금희를 배운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난 그리 약하진 않지만 운동신경이 둔해서 어릴때는 운동회라도 있으면 달리기 출발선 앞에서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내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느낌이 가끔 들었고(^^* 이건 아마 운동신경이 워낙 둔해서일 듯 하다) 긴장을 잘하는 성격탓에 어깨가 늘 아팠다.
내가 처음 오금희를 알게 된 건 한의대에 입학해서 예과 1학년 때 기공학 강의를 들을 때였다. 고대 중국의 醫聖 화타께서 만드셨다는 오금지희. 자잘한 글씨 속 에 뭍혀 무심하게 넘어갔었다. 그때는 오금희가 벌써 사장된 줄 알고 있었고 5가지 동물의 행동을 본따 만들었다고 하는 설명에 동작이 우스꽝스러우려니 하고 원시적인 고대의 도인술... 정도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평소에 내몸 하나는 간수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해서 기공이나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몇가지 알아보고 배워봤지만 동작이 자연스럽지 않아서 특정한 장소에서 해야 한다거나, 배우기가 지루해서 중간에 포기하곤 했었다. 그후 다시 오금희에 관해 듣게 된 건 2년이 지나 본과 1학년때였다. 한의학 공부 를 하려면 오금희를 하면 좋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배울 기회가 없어서 1년동안 '어떻게 하면 오금희를 배울까...?'하고 궁리하며 보내던 차... 우연히 오금희를 가르치시는 분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됐고 다행이 인연이 닿아 2002년 3월부터 오금희를 배울수 있게 되었다.
빽빽한 한의대의 커리큘럼 중 유일한 낙이 된다는 본과 2학년 1학기는 정말 황금같은 시기였다. 난 시간 나는 대로, 학교 주위 산으로 올라가 토요일마다 조금씩 배워오는 오금희 하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나무들과 나란히 서서 천천히 팔을 올리고 호흡을 내리고, 먼 산을 바라보다가 다시 땅으로 시선을 돌려 들꽃을 바라보고... 따듯한 햇살섞인 바람은 행복 그 자체였다. 그리고 오금희를 마치고 난 후 온몸이 가뿐해지는 상쾌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당구 처음 배우는 사람은 밤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당구공이 천장에 굴러다닌다고 하더니, 나는 수업시간에도 머리속에선 오금희 동작들이 오락가락하며 춤을 추고 다녔다. 그렇게 한주 한주 지나가고 있었는데,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산비탈을 올라도 숨이 차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도 모르는 새에 다리가 많이 튼튼해진 것이다. 약간 구부정하던 등과 어깨도 많이 펴졌고, 한참 동안 책상에 앉아있어도 어깨가 아프지 않았다. 한의학에서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오장육부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 만큼이나 정신활동도 현실적으로 다루며, 건강한 정신은 오장의 건강한 생명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조바심을 내다가도 오금희를하면 마음이 가라앉기도 하고 기분이 명랑해지는 것 같다. 몸이 유연해 지면 마음도 유연해지는 것 같다고 우리 사부님도 그러셨고. ^^*
매주 대전에서 열심히 배우러온다고 대견해 하셨지만 사실, 난 학교 수업보다 오금희하며 배우는 게 더 재미있었다. ^^; 박윤선 선생님께선 우리반을 처음 맡은반이시라며 첫사랑 대하듯(?)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셨고, 같이 오금희를 배우는 분들이 너무 좋은 분들이라 우리반은 수업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홍선생님께서는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좋은 말씀들로, 박선생님께선 기공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끊이지 않는 유머로, 신선생님께선 성실하게 연구하시는 모습으로, 지영언니는 한의학적인 이론을 알기쉽게 설명함으로 오금희 수련 시간을 더욱더 의미있고 즐겁게 해주셨다.
벌써 1년이 지나 초급반과 중급반을 수료하게 되어 이렇게 수련기를 쓰고 있다. 소중한 인연을 만나 좋은 수련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열심히 연마해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보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수련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