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희의 목적은 무엇일까?
어려서 몸이 약했던 나는 유난히 강한 무술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남다른 호기심으로 여러 무술 도장에 기웃거렸다. 오직 강함을 위한, 남을 이기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익히는데 관심을 가졌고, 정작 수련하는 주체인 몸에 대한 관심과 성찰은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견디지 못한 몸은 비명을 질렀으나 그 고통의 비명을 외면하였다. 그러다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다 겨우 벗어났을 때 여태까지의 생활 방식과 무술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지금까지 운동은 운동을 위한 운동이었지 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운동 그 자체가 목적이고 나의 몸은 수단으로 존재했었다. 오금희를 만나고 이제 나는 몸을 외면하지 않는다. 몸이 토해내는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보듬어가며 50년을 지켜준 몸에 감사하고 있다.
지친 몸을 끌고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오금지희도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워낙 허풍과 알맹이 없는 것이 난무하던 때라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호기심에 책을 구입하였다.
행여 정말이면 귀한 인연을 놓치는 것이 되기에 전화를 하였다. 전화기 너머 들려온 밝고 따뜻한 박부회장님의 음성에 ‘아 최소한 사이비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내가 알고 있는 사이비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식을 벗어난 과도한 수련비를 요구한다(그것도 일시불로)
둘째, 이것만이 진리이며, 나만이 가지고 있는 비전이다.
셋째, 만병통치약이며, 단기 완성이 가능하다.
여태까지의 나의 경험으로 위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한다면 사이비라고 보면 틀림없었다. 그러나 부산에서 오금희를 익힐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시절 인연 따라 이루어진다는 기대감을 갖고 인연이 도래하기를 기다렸다. 다행이 3년이 지나 학교에 토요일 격주 휴무제가 시행되었고, 김경린 선생님의 배려로 힘들지만 오금희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도중에 포기할까 하는 마음도 여러 번 들었지만 멀리서 온다고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는 선생님의 애정과 못하는데도 잘한다고 항상 칭찬하시는 격려에 여기서 그만둔다면 얼마나 실망하실까 하는 마음에 그만두지도 못했다. 이제 고비를 넘기고 오금희의 진미를 어느 정도 느끼게 되어 서울에 오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음을 고맙게 여긴다.
중급반 수련 첫 시간에 부회장님의 오금희 수련 수칙을 듣고 ‘역시 정통파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회장님이 말씀하신 오금희 수련은
첫째, 절대 허황된 꿈을 가지지 말라.
둘째, 건강한 일상생활을 잘 하기 위함이다.
나도 교재의 내용과 전설의 신화로 인해 오금희에 대한 허상을 가졌다. 선배들의 오금희 수련기를 보면서, 내심 나에게도 저런 효능을 기대하였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부회장님의 정문일침에 뭔가 특이한 효능이 있을까하는 기대를 접고, 수련을 마치고 KTX에 지친 몸을 싣고 부산으로 가던 중 문득 ‘내가 오금희를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아니 ‘오금희의 궁극 목적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을 꺼내 서문을 찬찬히 보니 화타선생이 말씀하신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한 양생술이 있는데”
오금희를 양생술이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양생이 오금희의 목적이라고 한다. 養生! 생을 잘 기르는 것. 생을 잘 기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잘 길러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양생이 오금희가 인간에게 주는 효능이라면 오금희 자체가 추구하는 목적은 없을까?.이것이 전부일까? 단순히 양생만 목적으로 한다면 오금희이외도 많은 방법이 있는데 이렇게 수고롭게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상념들이 떠올랐다.
뒤 이은 문장을 보는 순간 이것이 오금희가 추구하는 궁극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아마 이 말 뒤에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는 구절이 생략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오금희 동작이 물이라면 물은 온몸을 감돌아 흘러간다. 썩지 않는다는 것은 몸을 살아있게 한다는 말이고, 돌은 나의 몸을 의미한다고 억측해 본다. 몸에는 온갖 삶의 진애들이 나도 모르게 붙어 있다. 오금희 동작의 흐르는 물은 몸에 묻은 이끼들을 하나씩 떼어내고 더 이상의 이끼들이 들어붙지 못하도록 굴려서 윤이 나게 닦아 간다. 정말 아름다운 것은 온갖 빛깔로 채색한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지르고 문질러 본래의 색이 잘 들어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색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오금희의 궁극 목적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마도 온 몸을 감돌아 흐르고 흘러서 투박한 몸을 닦고 닦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돌이 보석이 될 리는 없겠지만 잘 가꾸고 정성으로 문지르면 타고난 본래의 아름다움이 들어나지 않을까!
그리하여 몸이 바뀌고 마음이 변하면 투박하던 일상생활이 반짝 반짝 윤이 나는 새로움으로 변하게 된다. 생활이 변하면 세상이 바뀌게 된다.
지금 나는 큰 소리로 말한다 ‘오금희 자체가 추구하는 궁극 목적은 돌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 세상을 변하게 만드는데 있다’ 고
어려서 몸이 약했던 나는 유난히 강한 무술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남다른 호기심으로 여러 무술 도장에 기웃거렸다. 오직 강함을 위한, 남을 이기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익히는데 관심을 가졌고, 정작 수련하는 주체인 몸에 대한 관심과 성찰은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견디지 못한 몸은 비명을 질렀으나 그 고통의 비명을 외면하였다. 그러다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다 겨우 벗어났을 때 여태까지의 생활 방식과 무술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지금까지 운동은 운동을 위한 운동이었지 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운동 그 자체가 목적이고 나의 몸은 수단으로 존재했었다. 오금희를 만나고 이제 나는 몸을 외면하지 않는다. 몸이 토해내는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보듬어가며 50년을 지켜준 몸에 감사하고 있다.
지친 몸을 끌고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오금지희도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워낙 허풍과 알맹이 없는 것이 난무하던 때라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호기심에 책을 구입하였다.
행여 정말이면 귀한 인연을 놓치는 것이 되기에 전화를 하였다. 전화기 너머 들려온 밝고 따뜻한 박부회장님의 음성에 ‘아 최소한 사이비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내가 알고 있는 사이비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식을 벗어난 과도한 수련비를 요구한다(그것도 일시불로)
둘째, 이것만이 진리이며, 나만이 가지고 있는 비전이다.
셋째, 만병통치약이며, 단기 완성이 가능하다.
여태까지의 나의 경험으로 위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한다면 사이비라고 보면 틀림없었다. 그러나 부산에서 오금희를 익힐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시절 인연 따라 이루어진다는 기대감을 갖고 인연이 도래하기를 기다렸다. 다행이 3년이 지나 학교에 토요일 격주 휴무제가 시행되었고, 김경린 선생님의 배려로 힘들지만 오금희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도중에 포기할까 하는 마음도 여러 번 들었지만 멀리서 온다고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는 선생님의 애정과 못하는데도 잘한다고 항상 칭찬하시는 격려에 여기서 그만둔다면 얼마나 실망하실까 하는 마음에 그만두지도 못했다. 이제 고비를 넘기고 오금희의 진미를 어느 정도 느끼게 되어 서울에 오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음을 고맙게 여긴다.
중급반 수련 첫 시간에 부회장님의 오금희 수련 수칙을 듣고 ‘역시 정통파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회장님이 말씀하신 오금희 수련은
첫째, 절대 허황된 꿈을 가지지 말라.
둘째, 건강한 일상생활을 잘 하기 위함이다.
나도 교재의 내용과 전설의 신화로 인해 오금희에 대한 허상을 가졌다. 선배들의 오금희 수련기를 보면서, 내심 나에게도 저런 효능을 기대하였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부회장님의 정문일침에 뭔가 특이한 효능이 있을까하는 기대를 접고, 수련을 마치고 KTX에 지친 몸을 싣고 부산으로 가던 중 문득 ‘내가 오금희를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아니 ‘오금희의 궁극 목적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을 꺼내 서문을 찬찬히 보니 화타선생이 말씀하신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한 양생술이 있는데”
오금희를 양생술이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양생이 오금희의 목적이라고 한다. 養生! 생을 잘 기르는 것. 생을 잘 기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잘 길러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양생이 오금희가 인간에게 주는 효능이라면 오금희 자체가 추구하는 목적은 없을까?.이것이 전부일까? 단순히 양생만 목적으로 한다면 오금희이외도 많은 방법이 있는데 이렇게 수고롭게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상념들이 떠올랐다.
뒤 이은 문장을 보는 순간 이것이 오금희가 추구하는 궁극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아마 이 말 뒤에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는 구절이 생략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오금희 동작이 물이라면 물은 온몸을 감돌아 흘러간다. 썩지 않는다는 것은 몸을 살아있게 한다는 말이고, 돌은 나의 몸을 의미한다고 억측해 본다. 몸에는 온갖 삶의 진애들이 나도 모르게 붙어 있다. 오금희 동작의 흐르는 물은 몸에 묻은 이끼들을 하나씩 떼어내고 더 이상의 이끼들이 들어붙지 못하도록 굴려서 윤이 나게 닦아 간다. 정말 아름다운 것은 온갖 빛깔로 채색한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지르고 문질러 본래의 색이 잘 들어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색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오금희의 궁극 목적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마도 온 몸을 감돌아 흐르고 흘러서 투박한 몸을 닦고 닦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돌이 보석이 될 리는 없겠지만 잘 가꾸고 정성으로 문지르면 타고난 본래의 아름다움이 들어나지 않을까!
그리하여 몸이 바뀌고 마음이 변하면 투박하던 일상생활이 반짝 반짝 윤이 나는 새로움으로 변하게 된다. 생활이 변하면 세상이 바뀌게 된다.
지금 나는 큰 소리로 말한다 ‘오금희 자체가 추구하는 궁극 목적은 돌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 세상을 변하게 만드는데 있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