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지난해 4월, 건강과 친목을 위해 열심히 산을 타던 나는 대학 1년 후배인 친애하는 서성호 선생에게 실로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요즘 도대체 뭐 하길래 모임에 코빼기도 안 비치냐.
이번 토요일에 쎈 후배들 하고 삼각산에 가니까 거두절미하고 나와라. 안 나오면 앞으로 제명이다.”
서 선생이 워낙 성실하고 진중하며 과묵해서 친하면서도 뭐 하고 지내는지 잘 알지 못했다. 가끔 전화하면 증권회사 간부직을 잘 유지하고 있고 주말에 뭔가를 하고 있어 토요일에는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정도 밖에는....
누구에게 뭔가를 권하거나 부담주기 싫어하는 서 선생이었지만 이날만은 나에게 뭐라고 한마디 했다. “형 그러지 말고 등산보다 좋은 게 있으니 다음 토요일 한번 시간을 내세요. 결코 후회하지 않고 나중에 나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와 보면 압니다.”
“그래 알았다. 서선생이 그렇게 좋다면 한번 가봐야지.”
사실 ‘하루만 시간을 내라. 결코 후회 않는다. 팔자 고치는 일이다.’로 시작하는 얘기는 십중팔구 다단계 판매다. 교육에 꼬드겨내서 사람을 서서히 물들여가는....
“도대체 뭔데 오라는 거야. 혹 다단계는 아닐테고...”
그 다음 토요일 경기대 앞을 물어물어 수련장에 왔지만 나를 마중 나오기로 한 서 선생은 갑자기 지방에서 열린 회사 워크샵에 참석하느라 못나왔고 나는 머쓱하니 내발로 본부의 문을 두드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수련장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됐다. 그렇게 뭔지도 모르고 발을 들여놓게 된 오금희는 1년이 지난 지금 내 인생에 중요한 하나의 의미로 자리 잡고 있다.
오금희를 배우면서 조급했던 인생의 템포를 조금 늦출 수 있게 됐고, 그래서 생긴 마음의 여유가 내 표정을 좀더 젊고 밝게 만들었다. 남들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도인술을 한다는 게 기분이 좋고 무려 1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배워 한 단락을 마무리 했다는 게 자랑스럽다. 나도 태어나서 한 가지 운동의 완성된 형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시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것이다. 앞으로 기회가 돼 수련을 마무리하게 된다면 나이 들어 은퇴해 남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능이 한 가지 더 추가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골프 스윙도 리듬을 찾아 오금희를 하기 전보다 10타가 줄었다. 요즘 골프 칠 일이 많지 않아 때로는 몇 달에 한번 필드에 나가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90대 중 후반에 머물던 것이 80대 후반으로 타수가 줄었다. 스윙을 할 때 오금희의 동작들을 연상하며 부드럽고 천천히 스윙을 하는 탓이다. 또 하체와 허리의 힘이 강화된 때문이기도 하다.
건강과 관련해 가장 기분 좋은 일은 연중행사로 매년 봄, 가을 한차례씩 보름이상 독하게 앓던 감기가 사라진 것이다. 아직 비염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게 떨어지지 않는 것은 요즘 수련을 게을리 하고 있는 탓이다. 오금희로 인한 단점도 없지 않은데 술이 세져서 술값이 과거보다 더 나온다는 것이다. 오금희를 하고 신체에도 변화가 있다. 울퉁불퉁 근육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미세한 근육들이 모두 운동이 되면서 미끈하면서도 볼륨이 생겨 상체, 하체가 보기 좋아졌다.
내 나이가 지금 5학년 3반인데 올해 해수욕장에서는 비키니를 사용할 생각이다. 딱히 노리는 것은 없지만 5학년이 돼 비키니를 착용하고 자신 있게 돌아다니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오금희를 배우며 아쉬운 것은 이 좋은 운동이 수많은 아류들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빠르게 알려지지 못하는 것이다. 친구 한의사들에게 이야기 하면 식자우환이라고 오히려 “응 오금희 좋은 거지. 그런데 비슷한 것들이 많아”하며 넘어간다. 그러나 머리 좋은 친구들은 이해한다. 국내에 많은 운동들이 있지만 대부분 뿌리와 족보가 분명치 않은데 오금희는 분명한 족보를 가지고 있다는 게 대단한 재산이라는 것을.... 이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국기라 하는 태권도도 뿌리가 없는 근래에 만든 운동이다. 합기도 당수도 공수도 등등도 어디서 어디로 전래돼 어떻게 발전된 것인지 규명이 어렵다. 또 수많은 기공운동들도 출처와 뿌리가 불분명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비해 오금희는 화타선생이 창제한 이래 79대에 이르는 족보가 있고 중급이상 우리 수련생 모두가 문하생으로 등록이 된다 한다. 별로 내세울게 없는 나로서는 족보라도 내세워야 하는데 내가 족보 있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게 여간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더욱이 79대 전수제자에게 직접 배웠다는 것도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오금희가 아직 국내에서 보급 초기이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모든 것이 태어나 성장하고 꽃 피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 내공이 쌓여야 한다. 원자폭탄에 비유하면 임계점에 도달해야 폭발하는 것인데 오금희도 언젠가 그런 임계점에 도달해 고속 성장기를 맞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다만 임계점에 달하기까지 어떻게 접근성과 대중성을 확보할 것인가가 과제이겠지만... 또 내용은 없으면서 화려하게 포장된 유사 운동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가를 드러낼 것인가도 숙제다. 하기야 그렇던 안 그렇던 그런 것이 내 수련에 미치는 영향은 전무하다. 어떻게 보면 수련자가 많지 않은 것이 희소성이 높아지니 수련자 입장에서는 불편할 게 없다. 다만 ‘좋은 운동을 많은 사람들이 누리도록 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은 항상 마음 한켠에 있다.
처음 오금희를 할 때는 정말 열심히 했다. 매일 배운 것을 복습하고 또 효과를 체감했다. 어디 출장을 가든 시간만 나면 남들이 보든 말든 오금희를 했다. 등산갈 때마다 삼각산 바위위에서도 하고 제주도에 가서 아침햇살을 받으며 한라산을 바라보면서도 했다. 아마도 요즘 감기가 안 걸리는 것도 그때 열심히 했기 때문이리라. 저녁에 감기기운이 있으면 열 일 제치고 오금희를 했다. 이마에 땀이 촉촉이 베이고 몸에 화기가 돌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럼 다음날 그렇게 개운할 수가....
그러다가 중급에 오면서 매일 하던 것이 이틀에 한번, 3일에 한번으로 수련 횟수가 줄어 나 스스로 자책하고 아쉬워하고 있다. 일단 음악을 틀고 몰입하면 언제 끝나는지 모르게 40분이 흐르는데 늦게 들어오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건너뛰는 것이다. 매일 수련만 하면 얻을 있는 너무 많은데 게을러서 그 좋은 보약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꾀를 하나 내고 있다. 사무실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하루 한 두 번씩 예비공을 하고 비염을 고치기 위해 안마 중 해당운동만 뽑아내 하는 것이다. 또 허리가 찌뿌둥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웅부신요를 한다. 길을 갈 는 항상 조식을 하고....
오금희를 하며 또 하나 얻은 것이 있다면 동기생들을 안 것이다. 개인적으로 접할 기회가 없어 절친해 진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 한사람 마다 인격적으로 완성된 분들이다. 현존하는 인물들이기에 여기에 일일이 적고 평하기는 그렇기에 넘어가지만 내가 어떤 모임에 나가서 이처럼 고매한 분들을 한번에 만난 일은 드물다고만 밝히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자기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거나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고 최선을 다해 사시는 인격자들이다. 서 선생이 왜 오금희를 명품운동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우리 회장님과 부회장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여기 뭐라고 적기보다 와서 한번 만나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성균관대 교수로서 논어를 가르치실 자격이 있고 또 진정 어울리는 분이라고만 아시면 된다. 부회장님은 회장님보다 오금희를 깊이 탐구하시고 계시고 여성적 매력도 넘치는 분이다.
이왕 칭찬하기로 나섰으니 더하면 지도자 선생님들은 왜 내가 오금희를 계속해야 하는지 몸으로 보여주시는 분 들이다. 물 흐르는 듯한 동작 하나 하나의 완성도를 보면서 도란 역시 깊은 것이고 끝없이 닦아도 모자라는 것이란 사실을 실감케 하기 때문이다.
이번 토요일에 쎈 후배들 하고 삼각산에 가니까 거두절미하고 나와라. 안 나오면 앞으로 제명이다.”
서 선생이 워낙 성실하고 진중하며 과묵해서 친하면서도 뭐 하고 지내는지 잘 알지 못했다. 가끔 전화하면 증권회사 간부직을 잘 유지하고 있고 주말에 뭔가를 하고 있어 토요일에는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정도 밖에는....
누구에게 뭔가를 권하거나 부담주기 싫어하는 서 선생이었지만 이날만은 나에게 뭐라고 한마디 했다. “형 그러지 말고 등산보다 좋은 게 있으니 다음 토요일 한번 시간을 내세요. 결코 후회하지 않고 나중에 나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와 보면 압니다.”
“그래 알았다. 서선생이 그렇게 좋다면 한번 가봐야지.”
사실 ‘하루만 시간을 내라. 결코 후회 않는다. 팔자 고치는 일이다.’로 시작하는 얘기는 십중팔구 다단계 판매다. 교육에 꼬드겨내서 사람을 서서히 물들여가는....
“도대체 뭔데 오라는 거야. 혹 다단계는 아닐테고...”
그 다음 토요일 경기대 앞을 물어물어 수련장에 왔지만 나를 마중 나오기로 한 서 선생은 갑자기 지방에서 열린 회사 워크샵에 참석하느라 못나왔고 나는 머쓱하니 내발로 본부의 문을 두드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수련장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됐다. 그렇게 뭔지도 모르고 발을 들여놓게 된 오금희는 1년이 지난 지금 내 인생에 중요한 하나의 의미로 자리 잡고 있다.
오금희를 배우면서 조급했던 인생의 템포를 조금 늦출 수 있게 됐고, 그래서 생긴 마음의 여유가 내 표정을 좀더 젊고 밝게 만들었다. 남들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도인술을 한다는 게 기분이 좋고 무려 1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배워 한 단락을 마무리 했다는 게 자랑스럽다. 나도 태어나서 한 가지 운동의 완성된 형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시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것이다. 앞으로 기회가 돼 수련을 마무리하게 된다면 나이 들어 은퇴해 남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능이 한 가지 더 추가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골프 스윙도 리듬을 찾아 오금희를 하기 전보다 10타가 줄었다. 요즘 골프 칠 일이 많지 않아 때로는 몇 달에 한번 필드에 나가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90대 중 후반에 머물던 것이 80대 후반으로 타수가 줄었다. 스윙을 할 때 오금희의 동작들을 연상하며 부드럽고 천천히 스윙을 하는 탓이다. 또 하체와 허리의 힘이 강화된 때문이기도 하다.
건강과 관련해 가장 기분 좋은 일은 연중행사로 매년 봄, 가을 한차례씩 보름이상 독하게 앓던 감기가 사라진 것이다. 아직 비염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게 떨어지지 않는 것은 요즘 수련을 게을리 하고 있는 탓이다. 오금희로 인한 단점도 없지 않은데 술이 세져서 술값이 과거보다 더 나온다는 것이다. 오금희를 하고 신체에도 변화가 있다. 울퉁불퉁 근육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미세한 근육들이 모두 운동이 되면서 미끈하면서도 볼륨이 생겨 상체, 하체가 보기 좋아졌다.
내 나이가 지금 5학년 3반인데 올해 해수욕장에서는 비키니를 사용할 생각이다. 딱히 노리는 것은 없지만 5학년이 돼 비키니를 착용하고 자신 있게 돌아다니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오금희를 배우며 아쉬운 것은 이 좋은 운동이 수많은 아류들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빠르게 알려지지 못하는 것이다. 친구 한의사들에게 이야기 하면 식자우환이라고 오히려 “응 오금희 좋은 거지. 그런데 비슷한 것들이 많아”하며 넘어간다. 그러나 머리 좋은 친구들은 이해한다. 국내에 많은 운동들이 있지만 대부분 뿌리와 족보가 분명치 않은데 오금희는 분명한 족보를 가지고 있다는 게 대단한 재산이라는 것을.... 이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국기라 하는 태권도도 뿌리가 없는 근래에 만든 운동이다. 합기도 당수도 공수도 등등도 어디서 어디로 전래돼 어떻게 발전된 것인지 규명이 어렵다. 또 수많은 기공운동들도 출처와 뿌리가 불분명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비해 오금희는 화타선생이 창제한 이래 79대에 이르는 족보가 있고 중급이상 우리 수련생 모두가 문하생으로 등록이 된다 한다. 별로 내세울게 없는 나로서는 족보라도 내세워야 하는데 내가 족보 있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게 여간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더욱이 79대 전수제자에게 직접 배웠다는 것도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오금희가 아직 국내에서 보급 초기이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모든 것이 태어나 성장하고 꽃 피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 내공이 쌓여야 한다. 원자폭탄에 비유하면 임계점에 도달해야 폭발하는 것인데 오금희도 언젠가 그런 임계점에 도달해 고속 성장기를 맞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다만 임계점에 달하기까지 어떻게 접근성과 대중성을 확보할 것인가가 과제이겠지만... 또 내용은 없으면서 화려하게 포장된 유사 운동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가를 드러낼 것인가도 숙제다. 하기야 그렇던 안 그렇던 그런 것이 내 수련에 미치는 영향은 전무하다. 어떻게 보면 수련자가 많지 않은 것이 희소성이 높아지니 수련자 입장에서는 불편할 게 없다. 다만 ‘좋은 운동을 많은 사람들이 누리도록 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은 항상 마음 한켠에 있다.
처음 오금희를 할 때는 정말 열심히 했다. 매일 배운 것을 복습하고 또 효과를 체감했다. 어디 출장을 가든 시간만 나면 남들이 보든 말든 오금희를 했다. 등산갈 때마다 삼각산 바위위에서도 하고 제주도에 가서 아침햇살을 받으며 한라산을 바라보면서도 했다. 아마도 요즘 감기가 안 걸리는 것도 그때 열심히 했기 때문이리라. 저녁에 감기기운이 있으면 열 일 제치고 오금희를 했다. 이마에 땀이 촉촉이 베이고 몸에 화기가 돌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럼 다음날 그렇게 개운할 수가....
그러다가 중급에 오면서 매일 하던 것이 이틀에 한번, 3일에 한번으로 수련 횟수가 줄어 나 스스로 자책하고 아쉬워하고 있다. 일단 음악을 틀고 몰입하면 언제 끝나는지 모르게 40분이 흐르는데 늦게 들어오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건너뛰는 것이다. 매일 수련만 하면 얻을 있는 너무 많은데 게을러서 그 좋은 보약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꾀를 하나 내고 있다. 사무실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하루 한 두 번씩 예비공을 하고 비염을 고치기 위해 안마 중 해당운동만 뽑아내 하는 것이다. 또 허리가 찌뿌둥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웅부신요를 한다. 길을 갈 는 항상 조식을 하고....
오금희를 하며 또 하나 얻은 것이 있다면 동기생들을 안 것이다. 개인적으로 접할 기회가 없어 절친해 진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 한사람 마다 인격적으로 완성된 분들이다. 현존하는 인물들이기에 여기에 일일이 적고 평하기는 그렇기에 넘어가지만 내가 어떤 모임에 나가서 이처럼 고매한 분들을 한번에 만난 일은 드물다고만 밝히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자기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거나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고 최선을 다해 사시는 인격자들이다. 서 선생이 왜 오금희를 명품운동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우리 회장님과 부회장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여기 뭐라고 적기보다 와서 한번 만나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성균관대 교수로서 논어를 가르치실 자격이 있고 또 진정 어울리는 분이라고만 아시면 된다. 부회장님은 회장님보다 오금희를 깊이 탐구하시고 계시고 여성적 매력도 넘치는 분이다.
이왕 칭찬하기로 나섰으니 더하면 지도자 선생님들은 왜 내가 오금희를 계속해야 하는지 몸으로 보여주시는 분 들이다. 물 흐르는 듯한 동작 하나 하나의 완성도를 보면서 도란 역시 깊은 것이고 끝없이 닦아도 모자라는 것이란 사실을 실감케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