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듯이 청소년기까지는 직접 하는 운동을 좋아하였지만, 결혼 뒤에는 평소의 숨쉬기운동을 제외하고는 주로 보는 운동을 즐겼고, 그래서인지 시력은 40대 중반까지는 최고 수준을 유지하였다. 몇 년 전부터 노안이 와서 안경을 쓰게 되면서 조깅도 해보고 헬스장에 나가기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지속적으로 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회장님을 통해서 오금희를 알게 되었다. 사실 그냥 관전만 해도 좋다는 말을 듣고 와서는 얼떨결에 등록을 하게 되었다.
오금희를 시작하면서 걱정이 되었던 것은 그동안 경직되어 있던 몸이 운동을 소화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였다. 흔히 기공이라고 하지만 요가와 마찬가지로 격한 자세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서성호 사범님의 시범을 보면서 해소되었다. 저 정도의 동작은 별로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사범님의 동작이 부드러웠기 때문이었다.
초반기에 어려웠던 것은 온 몸이 돌아가면서 통증이 왔다는 것이다. 어깨에서 시작하여 발목, 허벅지 등이 아팠고, 그냥 중단할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한 번 시작하면 어지간해서는 규칙을 깨트리는 일이 없는 성격인데다 계속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회장님의 말을 믿었던 것이 중급을 수료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훌륭하신 사범님들을 만났기에 별 무리없이 오금희를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범님의 평소 인자한 표정과 우아한 동작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특히 백학요보의 동작은 압권이었다. 지금은 미국에 가셔서 뵐 수 없는 것이 매주 토요일 본부에 등산한 후 느끼는 아쉬움이다.
초급반 때에는 집에서 서 너 번을 반복하면서 동작을 익혔는데 아무래도 50년 가까이 굳은 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물론 흥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급반 때에는 지엄하신 부회장님의 지도를 받게 되었는데, 본부에 나올 수 없던 날에도 한 두 번의 연습을 빼놓지 않았다. 아직도 우스꽝스러운 동작은 많지만 순서를 까먹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의지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왜 오금희를 배우는가? 오금희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고, 그렇게 볼 수 있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면서 상대적으로 몸이 쇠약해지는 상황에서 오금희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조깅이나 헬스도 해보았지만 외부적인 조건 때문에 게을러지기 쉬운 데 비해 오금희는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운동이다. 특히 중년기 이후에 시작해도 무리가 없는 운동이다.
둘째, 자신이 확실히 느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연례행사의 하나로 목이 뻣뻣해지는 증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주로 침으로 해결해 왔다. 이러한 문제는 오금희를 배우는 동안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팔다리를 비롯한 몸의 각 부분이 유연해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의 증상을 보면서 돌팔이의사(?) 행세까지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셋째, 오금희는 무수한 선배들의 임상실험 결과 주독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 될 수 있다. 집사람의 평가에 따르면 오금희 핑계대고 술만 마신다는 것이고, 스스로 보아도 시간이 흐르면서도 주량이 줄지 않았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넷째, 오금희를 같이 수련하는 분들이 한결 같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이다. 홍회장님, 윤선생님을 비롯한 어르신들을 비롯하여 모두 포근한 성격을 가진 분들과 수련하다보면 운동 이외에도 많은 배움과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요컨대 무료하게 반평생을 살아오면서 느끼는 점은 오금희를 만난 것이 나에게는 최대의 인연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수련의 계기를 마련해준 김성기 회장님을 비롯하여, 초급반 서성호 사범님, 중급반 박윤선 부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謝謝 !
오금희를 시작하면서 걱정이 되었던 것은 그동안 경직되어 있던 몸이 운동을 소화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였다. 흔히 기공이라고 하지만 요가와 마찬가지로 격한 자세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서성호 사범님의 시범을 보면서 해소되었다. 저 정도의 동작은 별로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사범님의 동작이 부드러웠기 때문이었다.
초반기에 어려웠던 것은 온 몸이 돌아가면서 통증이 왔다는 것이다. 어깨에서 시작하여 발목, 허벅지 등이 아팠고, 그냥 중단할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한 번 시작하면 어지간해서는 규칙을 깨트리는 일이 없는 성격인데다 계속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회장님의 말을 믿었던 것이 중급을 수료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훌륭하신 사범님들을 만났기에 별 무리없이 오금희를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범님의 평소 인자한 표정과 우아한 동작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특히 백학요보의 동작은 압권이었다. 지금은 미국에 가셔서 뵐 수 없는 것이 매주 토요일 본부에 등산한 후 느끼는 아쉬움이다.
초급반 때에는 집에서 서 너 번을 반복하면서 동작을 익혔는데 아무래도 50년 가까이 굳은 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물론 흥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급반 때에는 지엄하신 부회장님의 지도를 받게 되었는데, 본부에 나올 수 없던 날에도 한 두 번의 연습을 빼놓지 않았다. 아직도 우스꽝스러운 동작은 많지만 순서를 까먹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의지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왜 오금희를 배우는가? 오금희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고, 그렇게 볼 수 있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면서 상대적으로 몸이 쇠약해지는 상황에서 오금희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조깅이나 헬스도 해보았지만 외부적인 조건 때문에 게을러지기 쉬운 데 비해 오금희는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운동이다. 특히 중년기 이후에 시작해도 무리가 없는 운동이다.
둘째, 자신이 확실히 느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연례행사의 하나로 목이 뻣뻣해지는 증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주로 침으로 해결해 왔다. 이러한 문제는 오금희를 배우는 동안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팔다리를 비롯한 몸의 각 부분이 유연해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의 증상을 보면서 돌팔이의사(?) 행세까지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셋째, 오금희는 무수한 선배들의 임상실험 결과 주독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 될 수 있다. 집사람의 평가에 따르면 오금희 핑계대고 술만 마신다는 것이고, 스스로 보아도 시간이 흐르면서도 주량이 줄지 않았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넷째, 오금희를 같이 수련하는 분들이 한결 같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이다. 홍회장님, 윤선생님을 비롯한 어르신들을 비롯하여 모두 포근한 성격을 가진 분들과 수련하다보면 운동 이외에도 많은 배움과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요컨대 무료하게 반평생을 살아오면서 느끼는 점은 오금희를 만난 것이 나에게는 최대의 인연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수련의 계기를 마련해준 김성기 회장님을 비롯하여, 초급반 서성호 사범님, 중급반 박윤선 부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謝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