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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타오금희

정회원 수련기

장 지 훈
2001년 여름, 맹자를 읽기 위해 경기도 화정의 모 선생을 일주일에 두 차례씩 찾아갔다. 당시 석사과정을 다니면서 모 잡지사에 기자로 짬짬이 생계수단을 유지해가고 있었다. 객지에서 지하방과 옥탑방을 전전긍긍 오가며 지냈던 터라 기본 의식주가 매우 열악한 상태였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차례씩 오전 3시간 맹자를 읽고 나면 아침도 못 먹던 차에 허기가 지고 속이 쓰라려 식은땀을 항상 달고 다녔었다. 그 때마다 나의 허한 몸 기운을 읽으셨던 선생은 과거에 오금희를 접했던 기억에 오금희를 항상 권유하였다. 난생 처음 오금희란 것을 들어봤다. 그런데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오금희? 오금희는 무슨… 공부할 시간도 먹고 살 겨를도 없는데…’ 하면서 흘려듣기만 했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때는 20대 후반이었던 터라 그저 스스로의 건강을 믿고 심신의 기운을 무의식적으로 혹사시켰던 것 같다.

어느덧 수년이 지나 박사과정을 마치고 학업과 학계의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이미 30대 중반에 이르렀고 결혼은커녕 학업과 업무에 찌든 상태였다. 활동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은 도리어 기운이 점점 쇠락함을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심신은 극단을 치닫고 있었다. 한때는 여름 밤 개천을 걸으면서 땀도 흘리고 건강도 잠시 돌아봤건만, 수업과 업무 외에는 종일 컴퓨터를 끓어않고 책과 시름하고 있으니, 아랫배가 부풀어 오르고 소화불량에 입맛까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근육이 온통 뭉치면서 가끔 ‘머리에 쥐가 난다’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다. 과거에 박사논문을 다 써놓고 쓰러지는 선배들이 간혹 있었는데, 그런 경우 별천지의 이야기로만 여겼으나, 나도 어느새 ‘이러다 죽는구나’란 생각이 가끔 떠오르곤 했다.

때마침 논문을 심사해주신 회장님께서 오금희를 권유하셨다. 나의 심신이 망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음을 살피신 듯했다. 예전 같으면 ‘다음에 꼭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을 텐데 상태가 그러하다 보니 ‘다음’이란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한번쯤 하면 좋지 않을까 했던 막연한 생각이 이제는 해야한다는 결심으로 돌아섰다. ‘그래, 한번 가보자, 그냥 해보는거야’ 하며 무작정 달려갔다. 황금 같은 주말 저녁에 오금희를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생활패턴에 비추어 본다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너무나 중요한 시간에 만사 제쳐두고 오금희 하러갔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은 더 열정을 투자하려는 욕심마저도 생겨났다. 쉽고 간단하게 보였던 동작 하나하나가 갈수록 점점 복잡다단해졌다. 그 와중에 주말마다 일이 겹치면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듬성듬성 참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주말 아침이면 항상 서대문에 마음이 벌써 도달해 있었다.

수련을 하면 심신의 건강에 조금씩 변화가 생겨남을 순간순간 느끼게 된다. 자세와 형상만을 쫓았는데도 나도 모르게 숨겨진 근육과 신경의 미묘한 작용이 반응하고 있음을 간파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당장 몸이 건강해진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뭔가 기운이 좋아지고 있다는 심리적 작용이 몸 기운을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그 기분이 오금희를 하면서 느끼는 매우 오묘한 쾌감이었다. 수련을 통해 얻은 이런저런 기쁨과 도움도 많았지만, 수련 동기생과의 아름답고 인간적인 만남은 나의 오금희 수련에 쌍시(雙翅)를 달아줬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오금희의 소중함을 느끼기에는 내 자신의 의지가 너무나 약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금희와 그들과의 만남을 인연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소중한 인연을 잘 지켜가고 싶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