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에 발을 딛고 오로지 학교와 집만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온 지 40여년..
자녀들 혼사를 치루고 나니 생긴 시간적 여유가 왠지 허전하기만 하고, 다가올 정년 후 생활에 대한 고민과 예전 같지 않은 건강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할머니 나이라지만 인생은 60부터라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는S 라인은 아니더라도 B 라인은 심하다 싶었다.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기껏해야 등산과 수영 조금하다 말다하는 정도였다. 런닝 머신은 지루하여 적성에 맞지 않고, 요가나 스포츠댄스는 너무 어렵고, ‘딱 맞는 운동이 뭐 없을까’ 생각하던 중에 지인으로부터 오금희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아나운서 이금희는 들어봤어도 오금희라니 너무도 생소하였다. 호기심에 인터넷 검색으로 살펴보니 왠지 내게 잘 맞을 것 같은 직감과 함께 한번 해 보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결심을 하고 몇 년 만에 서울의 서대문 오금희 본부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밝게 웃으시면서 반기는 부원장님과 오금희 달인이 되신 원장님, 두 분 인상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학교에서도 담임선생님이 좋으면 공부가 잘 되듯이 오금희 하시는 분들의 분위기가 하고 싶다는 마음을 더욱 굳히게 만들었다. 이미 첫 주를 시작 한 뒤에 갔기 때문에 34기 회원 강좌가 끝나고 첫 주의 못한 부분은 김화순 선생님과 둘이 남아서 따로 보충하였다.
처음엔 동작도 서툴고 순서도 못 외어서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2~3주를 꾸준히 다녔다. 하지만 2~3주의 시간이 지나도 별 진전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규모가 큰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여러 가지 처리할 사안이 많았고, 일주일 내내 근무하다 토요일에 서울까지 운동하러 가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때문에 그만 둘까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권유 해주신 분 체면도 있고, 이미 지불한 3개월 수강료 생각도 나서 그냥 다니기로 하였다.
예비 공을 배우고 집에 와서 시간 나는 데로 하루에도 여러 번 연습을 했다. 조금씩 나에게 맞는 운동이 바로 오금희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하체가 약해지는데 나의 몸 중에서 하체가 수리가 되는 것이었다. 3개월이 물 흐르듯이 흘러갔고, 이런 체험이 나에게 오니 쉽사리 3개월로 그냥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천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 끝에 부원장님께 부탁을 드렸고, 쾌히 승낙하시면서 배려를 해 주셔서 천안에 권이신 강사님을 보내 주시기로 했다. 더없이 고맙고 반가운 일이었다.
덕분에 회원을 모집하여 8개월 동안 오금희를 즐겁게 배울 수 있었다. 권이신 강사님은 멀리서 오시면서도 항상 성심성의껏 열정적으로,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르쳐주셨다. 또 오실 때마다 중국고급차를 가져 와서는 손수 끓여서 우리들에게 대접해주셨다. 우리회원은 너무 고마워 몸 둘 바를 몰랐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권 이신 선생님께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권이신 선생님 파이팅!!!
오금희를 하면서 직원들이 ‘교장선생님 몸이 좋아졌어요.’ 하는 기분 좋은 인사를 자주 듣게 되었다. 내 몸에 맞는 운동이 바로 오금희라는 걸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었다.
오금희는 전신의 근육과 관절을 통하여 바르고 탄력 있는 체형으로 수리하여주고 정적인 음악과 함께 앞뒤로 아래위로 좌우로 열고 비트는 동작과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속동작에서 가벼워진 몸과 마음속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원장님 말씀이 나의 몸이 수리가 되었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니 더욱 정진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금희를 하기 전에는 발 관절이 붉게 부어오르고 비염으로 인하여 환절기 마다 이비인후과 단골손님이 되었고 감기가 끊이지 않았으나 어느새 씻은 듯이 나아져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년을 한 후, 시간적 여유가 더 많이 생겼고, 오금희를 중지하면 되찾은 건강을 잃을 것 같아서 다시 서울로 다니기로 결심하였다. 처음 3개월을 동고동락했던 34기 회원들과 함께 하고 싶어 부원장님께 34기 고급반으로 넣어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부원장님깨서는 34기 수료를 하지 않았고, 본부 법규상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셔서 할 수없이 36기 중급반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다시 서울로 수련을 다니니 34기 회원님들도 만날 수 있고, 또 새롭게 36기 회원님들과 교류한다는 것이 큰 수확이었다. 오금희가 아니면 어디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이 그 곳에서 다양한 대화도 나누고, 여러 가지 정보도 얻을 수 있어서 항상 즐겁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운동 후, 회식자리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점인데 밤 9시30분에 마치면 부지런히 천안행 막차를 타러 전철역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전철을 거꾸로 타서 헤멘 적도 있다. 서울로 운동하러 다니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힘든 점의 또 한 가지는 6학년 중반이 되니 용량에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다. 중급반 동작과 용어를 배웠다 싶으면 돌아서기 무섭게 잊어버리고 만다. 현재 수준은 오금희 순서만 겨우 익힌 상태로 집에서 연습할 때 동작을 한두 가지 빼놓고 하는 때도 있다.
완벽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몸이 부드럽고 기분이 좋으면 된다는 긍정의 생각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하면 된다’는 집념으로 지금도 열심히 동작에 맞추어 외우고 또 외운다. 배우고 잊어버리고 또 배우고 반복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내 것이 되겠지!! 스스로 위안을 한다.
세월이 왜 그리도 빨리 가는지 붙잡을 수 있으면 붙잡아 놓고 싶다. 더 젊었을 때부터 시작했으면 좋았을 걸하고 후회도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 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이미 시작했으니 완전히 마스터할 때까지 집념을 가지고 열심히 해야 겠다.
오금희를 하는 최고의 목표는 첫째로 건강한 생활을 하여 자녀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이처럼 좋은 운동을 통해 봉사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중급반을 수료하고 고급반에도 도전하여 동작을 더욱 완벽하게 보완 해야겠다. 황혼기에 나약하고 추한 모습 보이지 않고, 남은 여생을 즐겁고 보람된 노후 생활이 되게 하겠다. 오금희를 만난 모든 회원님들, 그리고 부원장님, 원장님 파이팅!!!!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자녀들 혼사를 치루고 나니 생긴 시간적 여유가 왠지 허전하기만 하고, 다가올 정년 후 생활에 대한 고민과 예전 같지 않은 건강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할머니 나이라지만 인생은 60부터라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는S 라인은 아니더라도 B 라인은 심하다 싶었다.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기껏해야 등산과 수영 조금하다 말다하는 정도였다. 런닝 머신은 지루하여 적성에 맞지 않고, 요가나 스포츠댄스는 너무 어렵고, ‘딱 맞는 운동이 뭐 없을까’ 생각하던 중에 지인으로부터 오금희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아나운서 이금희는 들어봤어도 오금희라니 너무도 생소하였다. 호기심에 인터넷 검색으로 살펴보니 왠지 내게 잘 맞을 것 같은 직감과 함께 한번 해 보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결심을 하고 몇 년 만에 서울의 서대문 오금희 본부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밝게 웃으시면서 반기는 부원장님과 오금희 달인이 되신 원장님, 두 분 인상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학교에서도 담임선생님이 좋으면 공부가 잘 되듯이 오금희 하시는 분들의 분위기가 하고 싶다는 마음을 더욱 굳히게 만들었다. 이미 첫 주를 시작 한 뒤에 갔기 때문에 34기 회원 강좌가 끝나고 첫 주의 못한 부분은 김화순 선생님과 둘이 남아서 따로 보충하였다.
처음엔 동작도 서툴고 순서도 못 외어서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2~3주를 꾸준히 다녔다. 하지만 2~3주의 시간이 지나도 별 진전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규모가 큰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여러 가지 처리할 사안이 많았고, 일주일 내내 근무하다 토요일에 서울까지 운동하러 가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때문에 그만 둘까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권유 해주신 분 체면도 있고, 이미 지불한 3개월 수강료 생각도 나서 그냥 다니기로 하였다.
예비 공을 배우고 집에 와서 시간 나는 데로 하루에도 여러 번 연습을 했다. 조금씩 나에게 맞는 운동이 바로 오금희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하체가 약해지는데 나의 몸 중에서 하체가 수리가 되는 것이었다. 3개월이 물 흐르듯이 흘러갔고, 이런 체험이 나에게 오니 쉽사리 3개월로 그냥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천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 끝에 부원장님께 부탁을 드렸고, 쾌히 승낙하시면서 배려를 해 주셔서 천안에 권이신 강사님을 보내 주시기로 했다. 더없이 고맙고 반가운 일이었다.
덕분에 회원을 모집하여 8개월 동안 오금희를 즐겁게 배울 수 있었다. 권이신 강사님은 멀리서 오시면서도 항상 성심성의껏 열정적으로,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르쳐주셨다. 또 오실 때마다 중국고급차를 가져 와서는 손수 끓여서 우리들에게 대접해주셨다. 우리회원은 너무 고마워 몸 둘 바를 몰랐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권 이신 선생님께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권이신 선생님 파이팅!!!
오금희를 하면서 직원들이 ‘교장선생님 몸이 좋아졌어요.’ 하는 기분 좋은 인사를 자주 듣게 되었다. 내 몸에 맞는 운동이 바로 오금희라는 걸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었다.
오금희는 전신의 근육과 관절을 통하여 바르고 탄력 있는 체형으로 수리하여주고 정적인 음악과 함께 앞뒤로 아래위로 좌우로 열고 비트는 동작과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속동작에서 가벼워진 몸과 마음속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원장님 말씀이 나의 몸이 수리가 되었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니 더욱 정진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금희를 하기 전에는 발 관절이 붉게 부어오르고 비염으로 인하여 환절기 마다 이비인후과 단골손님이 되었고 감기가 끊이지 않았으나 어느새 씻은 듯이 나아져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년을 한 후, 시간적 여유가 더 많이 생겼고, 오금희를 중지하면 되찾은 건강을 잃을 것 같아서 다시 서울로 다니기로 결심하였다. 처음 3개월을 동고동락했던 34기 회원들과 함께 하고 싶어 부원장님께 34기 고급반으로 넣어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부원장님깨서는 34기 수료를 하지 않았고, 본부 법규상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셔서 할 수없이 36기 중급반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다시 서울로 수련을 다니니 34기 회원님들도 만날 수 있고, 또 새롭게 36기 회원님들과 교류한다는 것이 큰 수확이었다. 오금희가 아니면 어디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이 그 곳에서 다양한 대화도 나누고, 여러 가지 정보도 얻을 수 있어서 항상 즐겁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운동 후, 회식자리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점인데 밤 9시30분에 마치면 부지런히 천안행 막차를 타러 전철역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전철을 거꾸로 타서 헤멘 적도 있다. 서울로 운동하러 다니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힘든 점의 또 한 가지는 6학년 중반이 되니 용량에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다. 중급반 동작과 용어를 배웠다 싶으면 돌아서기 무섭게 잊어버리고 만다. 현재 수준은 오금희 순서만 겨우 익힌 상태로 집에서 연습할 때 동작을 한두 가지 빼놓고 하는 때도 있다.
완벽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몸이 부드럽고 기분이 좋으면 된다는 긍정의 생각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하면 된다’는 집념으로 지금도 열심히 동작에 맞추어 외우고 또 외운다. 배우고 잊어버리고 또 배우고 반복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내 것이 되겠지!! 스스로 위안을 한다.
세월이 왜 그리도 빨리 가는지 붙잡을 수 있으면 붙잡아 놓고 싶다. 더 젊었을 때부터 시작했으면 좋았을 걸하고 후회도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 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이미 시작했으니 완전히 마스터할 때까지 집념을 가지고 열심히 해야 겠다.
오금희를 하는 최고의 목표는 첫째로 건강한 생활을 하여 자녀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이처럼 좋은 운동을 통해 봉사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중급반을 수료하고 고급반에도 도전하여 동작을 더욱 완벽하게 보완 해야겠다. 황혼기에 나약하고 추한 모습 보이지 않고, 남은 여생을 즐겁고 보람된 노후 생활이 되게 하겠다. 오금희를 만난 모든 회원님들, 그리고 부원장님, 원장님 파이팅!!!!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