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기에 무엇을 써야할까? 몇몇 선배들의 수련기를 읽어보았다. 많은 분들이 처음 오금희를 하게 된 동기, 수련 과정에서의 어려웠던 점과 극복했던 사례, 그리고 몸 상태의 좋아진 점 등을 썼다. 대부분의 수련자들이 비슷한 경험들을 해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허리 뒤부터 가늘어 지더니(그러나 여전히 대인배(腹))다^^ㅋㅋ) 허리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던 경험 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다른 이들과의 경험과 중복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오금희를 배우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러나 정말 소중했던 배움을 간략히 쓰려한다.
첫째, 어깨에 힘을 빼고 살아야 함을 배웠다. 그 동안 ‘지금-여기’ 살고 있는 나 자신의 ‘몸’을 잘 느끼지 못하며 살아온 것 같다. 많은 직장인들은 사회생활을 하며 직장 상사 등이 사회적 지위 등을 내세우며 폼을 잡는 모습을 힐난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그 사람의 ‘마음’ 때문일까? 오금희를 하며 새삼 나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 이 동작 어깨에 힘을 빼니 기분 좋게 잘 되네^^’ 하며 기뻐했다. 우리가 배우는 것이 무(武)가 아니라 희(戱)라서 좋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겁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짐을 느낄 수 있는 ‘춤’이라 좋다. 어깨의 힘을 빼며 새삼 느낀다. 어깨의 용도는 힘을 잔뜩 주고 누군가를 들어메치는 것에만 있지는 않을 것 같다. 힘들어하는 이의 눈물어린 얼굴을 묻어 주는 데 쓸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팝송 ‘He Ain't Heavy, He's My Brother.’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힘든 길을 어깨 걸고 함께 나갈 수 있는 그런 용도도 좋을 듯 싶다. 오금희 배운 후 나는 어깨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깨달음은 ‘몸’, ‘춤’에 대해서도 확장된다. 오금희를 열심히 하여 내 어깨를 더 부드럽게 만들면 무언가 아시아나 세계를 위해 써먹을 수 있는 일이 생길 것 같다^^
둘째, 교육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각자의 그릇 만큼 가르친다고 표현해야 할지, 각 사람의 상황에 맞추어 가르친다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오금희를 배운 지 한 두달 정도 지난 뒤 우리는 서로의 동작이 차이나는 것을 발견하고 부회장님에게 여쭸다.‘누가 맞아요?’ 대답은 ‘둘 다 괜찮아요^^’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물어보면 ‘보여줄께요’ 라고 하시며 시범 동작을 보여주신다. 처음에는 조금 야속했다. ‘딱 부러지고 시원하게 가르쳐 주면 좀 좋은가?’ 그러나 뭔가 일관된 교육 철학이 있는 듯 한 부회장님의 포스에 눌려 그냥 저냥 세월이 흘렀다. 중간 중간에 하신 말씀. “자기자신이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몰라요. 보이는 만큼 하세요. 꼭 정확하게 하지 않아도 돼요. 그래도 몸은 좋아져요.^^” 어찌 보면 무책임 할 수 도 있을 것 같은 발언이다. 이유가 뭘까? 궁금해 하던 나는 ??장자(莊子)?? 중 내가 좋아하는 구절과 흡사함을 찾아본다.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것이다.
(且女獨不聞邪? 昔者海鳥止於魯郊, 魯侯御而觴之于廟, 奏九韶以爲樂, 具太牢以爲膳. 鳥乃眩視憂悲, 不敢食一?, 不敢飮一杯, 三日而死. 此以己養養鳥也, 非以鳥養養鳥也.
??장자(莊子)???지락(至樂)?)
나에게 익숙한 배움은 무언가 절대적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학생들이 똑 같이 맞추는 그런 것이었다. 시야를 달리하여 현재 학생의 상황에서 걸맞는 수준을 선택하고 스스로 알아가는 것! 꽤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며 획일적으로 변해가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세째, 종합해보면 오금희는 과정인 것 같다. 그것도 주위와 함께 소통하며 이루어내는... 이제 더 이상 어느 날 갑자기 득도하여 완벽한 자세로 오금희를 하는 그런 날을 꿈꾸지 않는다. 오히려 좀 못하는 것을 즐기는 듯도 싶다^^ 약간 늦게 도착하여 미안한 듯 한 표정을 한 번 정도 지어 주며, 적당한 자리에 선다. 옆에는 아직도 동작이 약간은 어색한 동기의 환한 표정이 보인다. 어떤 이의 움직이는 선이 마치 무희처럼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어떤 이의 웅후한 동작에서 장수의 기개를 부러워한다. 동기의 움직임을 감탄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매력은 우리가 함께 오늘 하루를 즐긴다는 것이다. 마치 이 날 내가 마주한 햇살과 바람이 내 평생 단 한 번 밖에 겪어보지 못할 귀중한 순간 인 듯이...
부회장님, 회장님, 반장님, 동기 여러분 그리고 가르쳐주신 선배 사형님들 모두 너무 고마웠습니다. 내 인생에서 아주 즐거운 ‘하루하루’를 님들과 함께했습니다
첫째, 어깨에 힘을 빼고 살아야 함을 배웠다. 그 동안 ‘지금-여기’ 살고 있는 나 자신의 ‘몸’을 잘 느끼지 못하며 살아온 것 같다. 많은 직장인들은 사회생활을 하며 직장 상사 등이 사회적 지위 등을 내세우며 폼을 잡는 모습을 힐난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그 사람의 ‘마음’ 때문일까? 오금희를 하며 새삼 나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 이 동작 어깨에 힘을 빼니 기분 좋게 잘 되네^^’ 하며 기뻐했다. 우리가 배우는 것이 무(武)가 아니라 희(戱)라서 좋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겁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짐을 느낄 수 있는 ‘춤’이라 좋다. 어깨의 힘을 빼며 새삼 느낀다. 어깨의 용도는 힘을 잔뜩 주고 누군가를 들어메치는 것에만 있지는 않을 것 같다. 힘들어하는 이의 눈물어린 얼굴을 묻어 주는 데 쓸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팝송 ‘He Ain't Heavy, He's My Brother.’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힘든 길을 어깨 걸고 함께 나갈 수 있는 그런 용도도 좋을 듯 싶다. 오금희 배운 후 나는 어깨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깨달음은 ‘몸’, ‘춤’에 대해서도 확장된다. 오금희를 열심히 하여 내 어깨를 더 부드럽게 만들면 무언가 아시아나 세계를 위해 써먹을 수 있는 일이 생길 것 같다^^
둘째, 교육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각자의 그릇 만큼 가르친다고 표현해야 할지, 각 사람의 상황에 맞추어 가르친다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오금희를 배운 지 한 두달 정도 지난 뒤 우리는 서로의 동작이 차이나는 것을 발견하고 부회장님에게 여쭸다.‘누가 맞아요?’ 대답은 ‘둘 다 괜찮아요^^’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물어보면 ‘보여줄께요’ 라고 하시며 시범 동작을 보여주신다. 처음에는 조금 야속했다. ‘딱 부러지고 시원하게 가르쳐 주면 좀 좋은가?’ 그러나 뭔가 일관된 교육 철학이 있는 듯 한 부회장님의 포스에 눌려 그냥 저냥 세월이 흘렀다. 중간 중간에 하신 말씀. “자기자신이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몰라요. 보이는 만큼 하세요. 꼭 정확하게 하지 않아도 돼요. 그래도 몸은 좋아져요.^^” 어찌 보면 무책임 할 수 도 있을 것 같은 발언이다. 이유가 뭘까? 궁금해 하던 나는 ??장자(莊子)?? 중 내가 좋아하는 구절과 흡사함을 찾아본다.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것이다.
(且女獨不聞邪? 昔者海鳥止於魯郊, 魯侯御而觴之于廟, 奏九韶以爲樂, 具太牢以爲膳. 鳥乃眩視憂悲, 不敢食一?, 不敢飮一杯, 三日而死. 此以己養養鳥也, 非以鳥養養鳥也.
??장자(莊子)???지락(至樂)?)
나에게 익숙한 배움은 무언가 절대적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학생들이 똑 같이 맞추는 그런 것이었다. 시야를 달리하여 현재 학생의 상황에서 걸맞는 수준을 선택하고 스스로 알아가는 것! 꽤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며 획일적으로 변해가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세째, 종합해보면 오금희는 과정인 것 같다. 그것도 주위와 함께 소통하며 이루어내는... 이제 더 이상 어느 날 갑자기 득도하여 완벽한 자세로 오금희를 하는 그런 날을 꿈꾸지 않는다. 오히려 좀 못하는 것을 즐기는 듯도 싶다^^ 약간 늦게 도착하여 미안한 듯 한 표정을 한 번 정도 지어 주며, 적당한 자리에 선다. 옆에는 아직도 동작이 약간은 어색한 동기의 환한 표정이 보인다. 어떤 이의 움직이는 선이 마치 무희처럼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어떤 이의 웅후한 동작에서 장수의 기개를 부러워한다. 동기의 움직임을 감탄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매력은 우리가 함께 오늘 하루를 즐긴다는 것이다. 마치 이 날 내가 마주한 햇살과 바람이 내 평생 단 한 번 밖에 겪어보지 못할 귀중한 순간 인 듯이...
부회장님, 회장님, 반장님, 동기 여러분 그리고 가르쳐주신 선배 사형님들 모두 너무 고마웠습니다. 내 인생에서 아주 즐거운 ‘하루하루’를 님들과 함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