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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타오금희

정회원 수련기

이 중 근
화타오금희를 배우기 시작한지 벌써 1년이 되어가네요.

십 몇년전! 1992년!

'의성 화타'라는 소설이 있었습니다. 3권으로 된 책이었죠.

마지막 3권에 '화타 오금희 기공'이라 하여 부록으로 그림으로 된 수련법이 있었습니다.

오금희를 처음 알게 된거죠. 허나 그림만으로는 잘 모르겠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 여름. 인터넷을 보다가 우연히 오금희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 전 략 -

‘화타오금희’는 중국의 도가(道家)에서 오랜 세월 ‘비전(秘傳)’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77대 전수자는 장징융(張鏡泳)이었다. 베이징대 출신의 엘리트 관료였던 그는 청성산(靑誠山)의 도교사원에서 도사(도교에선 큰 스승을 ‘도사’라고 부름)로부터 ‘화타오금희’를 익혔다. 그리고 장징융은 장졔스 정부와 함께 1949년 타이완으로 건너갔다. ‘화타오금희’는 77 대 전수자까지만 해도 ‘비인불전(非人不傳)’이 원칙이었다. 딱 맞는 제자가 아니면 ‘비전’을 전수하지 않았다. 더구나 제자는 5명 이하로 제한돼 있었다. 그건 오랜 세월 내려오던 ‘철칙’이었다. 장징융은 타이완의 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화타오금희’를 했다. 이를 배우고자 쿼옌셴(郭廷獻, 베이징대를 졸업한 타이완의 저명한 헌법학자이자 입법위원)은 매일같이 찾아가 3년을 청한 끝에 ‘화타오금희’를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78대 전수자가 됐다. 78대 전수자는 모두 4명이다. 그 중 제자를 받은 이는 쿼옌셴이 유일하다. 쿼옌셴은 “세상이 바뀌었다. 대중화가 필요하다”며 끈질기게 스승을 설득했다. 결국 전수자를 5명 이하로 제한하던 ‘철칙’을 풀었다. 그래서 현재 79대 전수자는 40여 명에 이른다. 국내에선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김성기(52) 교수가 79대 전수자다. 대만으로 유학을 떠나 고대 유가철학을 공부하던 그는 80년대 후반에 ‘화타오금희’를 익혔다. 그리고 부인 박윤선씨와 함께 79대 전수자가 됐다. 그리고 2001년 말부터 ‘화타오금희’를 가르쳤다.

- 후 략 -

[출처] 중앙일보 2008년 7월 17일자 백성호 기자

위의 기사를 보고나서야 '이게 정말 오금희구나! 내가 배우고자 했던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화를 해보니 2009년 9월이나 10월쯤 한 기수가 개강한다고 했습니다.

10월초에 43기가 개강(교대 저녁 6시)하고 한 달 후인 11월. 교대까지는 시간 맞춰가기 힘들어 서대문에서 초급부터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두 달 정도까지는 그냥 서서 하는 동작이었기에 이게 얼마나 운동이 될까도 생각했지만 그 후 부터는 하체운동이 동반되며 한 주 한 주 배우다보니 2010년 4월까지 하여 초급반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중급반은 같은 43기가 수련하고 있는 교대에서 배워야 한다 하여 5개월 동안 교대로 다니게 되었습니다.

초급반이 84개 동작이 되는 화타오금희를 한주에 몇 개 동작씩 배우는 것이라면, 중급반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련은 하되 초급반 때 배운 84개 동작을 좀 더 자세히 복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중급을 마친 지금.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을 삶에 있어서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여러 가지 인생을 즐겁게 하는 것 등등.

여러 가지 구슬들이 있는지 알지만, 그중에 '화타오금희' 라는 구슬은 하나 꿰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화타오금희' 건강이라는 구슬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삶의 구슬을 꿰어서 인생을 보배로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동안 도움을 주신 김성기 원장님과 박성희 선생님, 그리고 43기 동기생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