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미 선 > 정회원 수련기

본문 바로가기
초급반 수시 모집 : 화, 수, 목, 금, 토요일 가능 시간은 별도 문의
화타오금희

정회원 수련기

홍 미 선
지난 해 여름 어느 날, 대학 선배의 부르심(?)을 받았다. 선후배 간에 동종 업종에 종사하는 관계로 주로 방학에 만나곤 했는데, 여름 방학을 앞두고 선배가 느닷없이 토요일 오후를 비워놓으라는 통보에 선배 얼굴도 볼 겸 별 생각 없이 오금희 본부를 찾아왔다.

첫날 프로그램 마지막 부분에 한 15~20분 정도 ‘예비공’을 따라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그 다음날 심한 것은 아니지만 허벅지가 당기는 부작용을 느낄 정도로 당시 내 몸은 부실 덩어리였다. 사실 나는 오십이 넘도록 주로 숨쉬기 운동만을 고집해온 게으른 성격 탓에 몸에 기력이 빠져 직장 생활하는 것도 힘이 들어 허덕거리고 있던 와중이라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물론 우리나라 중년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수영이며 요가 등 간간히 운동을 생활 속에 도입(?)해 보려고 시도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수영은 알레르기성 비염을 이유로, 요가는 목뼈인지 인대인지 이상을 느끼면서 모두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음은 구구절절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 내가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오금희 초, 중급 과정을 수료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나름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과정을 마칠 마음을 먹었던 건 아니다. 오금희는,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에겐 정말 생소한 운동이었고, 다른 전력(?)도 있어서 과연 이 과정을 충실하게 할 수 있을지 내 자신에게 미지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씩 서너 동작씩 배우면서 조금씩 재미가 생기더니, 마침내는 토요일 오후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생활이 되었고, 이제는 중독(?)이 된 느낌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여러 사부님들의 지도도 지도려니와 무엇보다도 우리 46기 동기생들의 힘이 많이 작용했다. 우리 46기 동기들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처음에는 서로 말도 잘 안 하고, 회식도 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결속력과 끈끈함이 더해갔다. 그리하여 급기야는 ‘행복가’라는 전집을 발굴(?) 해 수련이 끝나는 토요일 야심한 밤에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정을 쌓아갔다. 겨울을 지나며 우리의 모습은 어느새, 내가 오금희 본부를 처음 찾았던 날 42기 선배들이 모인 조그만 술자리에 합석했을 때 보았던 오금희 예찬자들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무사히 이 과정을 마치기까지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동기생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46기는 복이 많아 여러 분의 사부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부회장님께서 초급을 지도해 주시다가 다치셔서 김한석 선생님께서 대신 지도해 주셨는데, 금방 나으셔서 우리를 끝까지 지도해 주실 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마침 그때가 5절과 6절을 배우던 시기라 수련 내용이 어려워지면서 집에서 수련과 복습을 게을리 하게 되었다. 게다가 직장 일로 결석을 한번 하고 보니, 이래저래 자꾸만 꾀가 생겨 중도하차를 할 뻔하였다. 힘들면 집에서 ‘예비공’만이라도 열심히 하라는 부회장님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내 중급은 회장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으로 1년이라는 대장정의 막을 내릴 수 있게 된 지금, 모든 가르침을 주신 사부님들께 감사의 마음뿐이다.

오금희 한국본부가 경기대 후문, 옛날 골목의 정겨움을 간직한 아현동 언덕배기에 자리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이곳은 내가 2,30대에 출판사 근무와 여성단체 활동을 하던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젊은 날의 추억이 깃든 곳에서 이렇듯 오금희를 만나고, 이 오금희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음을 행운이라 여긴다.

나는 ‘오금희 초중급 과정 수료’라는 나의 조만 목표를 달성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과제는, 이 행운을 우연으로 되돌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필연으로 계속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집에서 오금희 82동작을 다 하지는 못하더라도 ‘예비공’만이라도 열심히 해서 앞으로 남은 나의 삶의 활력소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