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희 중급 과정을 마치면서
가장 먼저 이 좋은 오금희를 만나게 해 준 내 친구 ‘박정미’에게 고맙습니다. 오랫동안 오금희를 권유받고도 내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를 이끌어 준 친구입니다. 늘 믿음이 가는 소중한 친구이기에 선뜻 마음을 냈어요.
다음으로 오금희를 늘 한결같은 사랑으로 가르쳐 주신 박윤선, 김성기, 김한섭 선생님께 고맙습니다. ‘가르침은 희망을 나누고, 아이들과 선생님의 삶을 나누는 것’이란 깨우침을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오금희의 몸 동작을 익히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음이 자연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오금희의 진짜 알맹이라는 배움을 정성껏 일러 주셨지요.
마지막으로 늘 회원들을 꼼꼼이 따뜻하게 챙겨 주신 황인철 반장님과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 46기 회원님들께 고맙습니다. 저는 낯가림도 심하고, 꽤 까탈스러운 편이라서 마음을 툭 터 놓을 수 있는 편한 느낌이 안 들었다면 끝까지 남아 있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늘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인복을 타고 났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금희를 하면서 다시금 내가 참 복 많은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오금희를 하기 전과 뒤 내가 무엇이 달라졌나? 돌아봤습니다.
먼저 몸을 보면 예전에는 질병으로 인한 심한 빈혈 때문에 소화도 안 되고, 집중력도 약해 일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등산이나 계단 오르기가 너무 힘들어서 전철 타고 시내에 나가는 게 두려울 정도였지요. 전철에서 모르는 사람이 나의 노란 낯빛을 보고 ‘어디가 많이 아프세요?’라고 걱정할 정도로 병색이 짙었습니다. 자꾸 그런 말을 들으니까 사람들 만나는 게 더 꺼려지더라구요. 몸 상태가 나쁘면 평지를 걸으면서도 숨이 차서 몇 번씩 쉬었다 가곤 했어요. 그 때 나의 소원은 숨 안차고 산이나 계단을 오르는 것이었지요. 급기야 직장일도 너무 버겨워서 1년 휴직을 한 뒤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시골에서 살다가 잠깐 서울에 올라온 사이에 오금희를 만났습니다. 오금희를 만난 뒤 나의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산을 가거나 계단을 올라도 숨차지 않습니다. 소화도 잘 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빛이 너무 좋아져서 못 알아보겠다는 말을 합니다. 일을 할 때 집중력도 좋아져서 일처리도 빨라졌습니다. 물론 휴직한 뒤 시골살이를 한 영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골에 내려가서 하루도 빠짐없이 오금희를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빨리 건강해지지 못했을 겁니다.
다음으로 마음을 보면 ‘나도 스스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예전엔 몸 상태가 안 좋으면 잠을 자거나 집안에서 쉬는 방법으로 풀었습니다. 잡았던 약속도 취소하고, 무조건 쉬어야 했지요. 요즘도 가끔 오금희를 배우러 가는 날, 소화가 안 되거나 아주 피곤한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오금희 다녀온 뒤 이런 나쁜 상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자’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출발합니다. 학교나 집에서도 너무 가라앉거나 축축 늘어질 때 아주 천천히 오금희 예비공을 합니다. ‘이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나 보자’하면서 그냥 오금희를 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오금희를 마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좋아집니다. 속도 편해지고, 무겁던 다리도 아주 가볍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몸과 마음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한뉘내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할 좋은 친구가 있어서 든든합니다. 그 친구 이름은 ‘오금희’입니다. 이 친구는 몸과 마음이 조화롭게 사는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
,끝으로 직업병 탓인지 오금희의 빼어난 교수법이 마음에 남습니다. 배우는 사람을 친절하게 배려하는 오금희 교수법을 익히면서 교사로서의 첫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 때 “가장 늦게까지 때묻지 않는 선생님이 되라”던 은사님이 떠올랐구요. 사실 몸이 아프면서 가르치는 아이들과의 관계도 삐걱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아이들과 소통할지 내가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뚜렷이 알게 되었습니다.
오금희를 통해 받은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고마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또한 이 씨앗을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보살펴서 세상의 희망이 되는 아름드리 나무로 가꾸겠습니다.
가장 먼저 이 좋은 오금희를 만나게 해 준 내 친구 ‘박정미’에게 고맙습니다. 오랫동안 오금희를 권유받고도 내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를 이끌어 준 친구입니다. 늘 믿음이 가는 소중한 친구이기에 선뜻 마음을 냈어요.
다음으로 오금희를 늘 한결같은 사랑으로 가르쳐 주신 박윤선, 김성기, 김한섭 선생님께 고맙습니다. ‘가르침은 희망을 나누고, 아이들과 선생님의 삶을 나누는 것’이란 깨우침을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오금희의 몸 동작을 익히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음이 자연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오금희의 진짜 알맹이라는 배움을 정성껏 일러 주셨지요.
마지막으로 늘 회원들을 꼼꼼이 따뜻하게 챙겨 주신 황인철 반장님과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 46기 회원님들께 고맙습니다. 저는 낯가림도 심하고, 꽤 까탈스러운 편이라서 마음을 툭 터 놓을 수 있는 편한 느낌이 안 들었다면 끝까지 남아 있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늘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인복을 타고 났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금희를 하면서 다시금 내가 참 복 많은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오금희를 하기 전과 뒤 내가 무엇이 달라졌나? 돌아봤습니다.
먼저 몸을 보면 예전에는 질병으로 인한 심한 빈혈 때문에 소화도 안 되고, 집중력도 약해 일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등산이나 계단 오르기가 너무 힘들어서 전철 타고 시내에 나가는 게 두려울 정도였지요. 전철에서 모르는 사람이 나의 노란 낯빛을 보고 ‘어디가 많이 아프세요?’라고 걱정할 정도로 병색이 짙었습니다. 자꾸 그런 말을 들으니까 사람들 만나는 게 더 꺼려지더라구요. 몸 상태가 나쁘면 평지를 걸으면서도 숨이 차서 몇 번씩 쉬었다 가곤 했어요. 그 때 나의 소원은 숨 안차고 산이나 계단을 오르는 것이었지요. 급기야 직장일도 너무 버겨워서 1년 휴직을 한 뒤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시골에서 살다가 잠깐 서울에 올라온 사이에 오금희를 만났습니다. 오금희를 만난 뒤 나의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산을 가거나 계단을 올라도 숨차지 않습니다. 소화도 잘 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빛이 너무 좋아져서 못 알아보겠다는 말을 합니다. 일을 할 때 집중력도 좋아져서 일처리도 빨라졌습니다. 물론 휴직한 뒤 시골살이를 한 영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골에 내려가서 하루도 빠짐없이 오금희를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빨리 건강해지지 못했을 겁니다.
다음으로 마음을 보면 ‘나도 스스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예전엔 몸 상태가 안 좋으면 잠을 자거나 집안에서 쉬는 방법으로 풀었습니다. 잡았던 약속도 취소하고, 무조건 쉬어야 했지요. 요즘도 가끔 오금희를 배우러 가는 날, 소화가 안 되거나 아주 피곤한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오금희 다녀온 뒤 이런 나쁜 상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자’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출발합니다. 학교나 집에서도 너무 가라앉거나 축축 늘어질 때 아주 천천히 오금희 예비공을 합니다. ‘이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나 보자’하면서 그냥 오금희를 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오금희를 마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좋아집니다. 속도 편해지고, 무겁던 다리도 아주 가볍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몸과 마음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한뉘내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할 좋은 친구가 있어서 든든합니다. 그 친구 이름은 ‘오금희’입니다. 이 친구는 몸과 마음이 조화롭게 사는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
,끝으로 직업병 탓인지 오금희의 빼어난 교수법이 마음에 남습니다. 배우는 사람을 친절하게 배려하는 오금희 교수법을 익히면서 교사로서의 첫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 때 “가장 늦게까지 때묻지 않는 선생님이 되라”던 은사님이 떠올랐구요. 사실 몸이 아프면서 가르치는 아이들과의 관계도 삐걱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아이들과 소통할지 내가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뚜렷이 알게 되었습니다.
오금희를 통해 받은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고마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또한 이 씨앗을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보살펴서 세상의 희망이 되는 아름드리 나무로 가꾸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