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禽?와의 三 세번의 인연
화타 오금희를 알게 된 것은 30년도 더 지난 대학 예과 개론시간이나 의사학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는 삼국지의 관운장을 수술하고 조조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그 유명한 名醫 華陀가 다섯 동물의 움직임을 본떠서 인간의 양생술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 화타 오금희이며 도사 같은 사람이 다섯 동물의 품새를 잡는 그림과 함께 공부했던 것이 첫 만남으로 기억된다.
그것을 끝으로 그렇게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살았다.
이론적으로 머릿속으로만 배웠을 뿐이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고(현재는 모르겠다 기공시간이 있다하니) 그것을 가르치는 곳도 없어 아마 그러지 않았나 싶다.
왜냐하면 이미 그 당시(80년대 초)에 기공이니 단전호흡이니 국선도니 하며 기의 본체를 찾기 위해 강호에서 이름났다는 사람들이나 사설학원들을 드나들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한중수교전인 90년대 초에 중국에 特異氣功者를 찾아 가서 장백폭포 아래서 수련을 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 잊고 있다가 오금희와의 두 번째 인연은 96년도에 있게 된다.
당시 한의사 전국 학술대회를 경기도한의사회가 주관하게 되었는데 당시 경기도한의사회의 당연직 운영위원(이사)이었기에 그 행사 진행에 일정부분 관여하게 되었다.
그때 행사 중의 하나가 모 원장님께서 시행했던 오금희 시범이었다. 처음으로 오금희의 동작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그때 만인이 스포츠 정도로 하는 기공이나 氣장사하는 단학선원보다는 오금희가 좀 더 한의학적 養生術이니 제대로 된 오금희가 있다면 대학에서 養生學으로 흡수하여 이론만이 아닌 실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되었다.
왜냐하면 기공이 한의학 자체라고 하기는 억지스럽지만 오금희가 한의학이란 것은 장중경의 상한론이나 허준의 동의보감이 한의학인 것만큼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말이다.
그렇게 세월이 다시 흘려 작년 봄에 한 선배원장님으로부터 오금희를 다니는데 너무 좋아 함께하면 좋겠다는 러브콜을 여러 번 받았었지만 내 개인적인 바쁜 일정과 거리상의 문제로 주저하고 있었는데 여러 번 재촉하기에 그 성의의 예의상 한 달 정도는 해주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되어 공개수련 첫날에 시범적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양생법으로 요가를 몇 년째 다니고 있었고, 아침마다 내 나름대로 ‘經絡요가’란 이름을 붙인 양생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臥坐운동법인데 百會혈부터 湧泉혈까지의 導引按摩指壓과 근골계의 屈伸(스트레칭)운동과 니시의학의 운동(모관,붕어,合掌合蹠運動)등을 합쳐 만든 것으로 아침 눈뜨자마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년간 해오고 있었기에 다른 양생법을 추가할 생각이 없었던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 날이 작년 9월 말경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해서 나는 금요일 오후 7시 반에 실시하는 보충 반에서 오금희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천에서 다니던 소개한 원장님께서 시간적인 제약으로 11월부터 나오지 않게 되었지만 나혼자서 수련을 계속했다.
수련할수록 가까워져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올 1월말 설날을 맞아 보충반 4명 중 부부가 1개월간 외국여행을 간다면서 쉰다기에 나도 그냥 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오금희는 좋은데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아마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것은 금년 5월에 내가 소개한 원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다니자고 직접 나선 것만 봐도 그런 것 같다. 그렇게 하여 둘은 다시 오금희를 다니게 되었고, 8월 중순에 초급반을 완료했다.
나는 월요일 5시 반에 시작하는 중급반에 등록했고 시간이 안 되는 소개한 원장님은 초급반만 완료하고 그만두었다. 그러나 경기도에 거주하는 나로선 시간이 맞지 않아 종료 30분쯤에 나가서 얼굴만 비치면서 중급반 수련을 계속해나갔다. 얼치기수련생이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0월부터 새로운 초급반이 7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시작되어 중급반은 30분 참가하면서 초급반에 1시간 참가하여 다시 배울 수가 있어 충분한 보충이 되었다. 더구나 가르치는 선생님이 김한섭 코치님에서 김성기회장님으로 바뀌어 두 분에게 다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수련한 하위교육은 무료로 언제든지 열려있다는 것이 이 단체의 장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중급반은 시간이 안 맞으나 억지로라도 이번 12월로 수료를 완료하고 그 완료후인 새해에도 월요일은 초급반에 묻어 2015년 말까지 중급까지 계속 다녀 얼치기가 아닌 제대로 된 수료자가 될 계획이다.
월요일 저녁은 오금희를 위하여 늘 저축해둘 생각인 것이다. 더하여 오금희의 다양성(기원, 동작종류, 언어, 유파, 오행배치 등)을 연구해볼 필요성도 들었다. 1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보면 58기로 수료식을 갖는다는 것이 焉敢生心이다 싶다. 華陀五禽之?圖解(곽정헌著.우리출판사)의 후기에 보면 역자께서 ‘우리는 갈 때마다 망설이고 올 때마다 기뻐했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글을 읽는 순간 내 마음의 표출임을 切感했다. 나또한 갈 때마다 망설이고 종종거리면 갔었지만 올 때마다 흐뭇한 마음으로 귀가했던 것이다.
지루할 것 같은 오갈 때의 왕복 3시간도 독서로 채우니 시간의 낭비가 아니었다.
각자의 거리와 시간이 다를 테니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오금희를 수련할 지혜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어느 운동이든 자기 몸에 맞게 꾸준히 성실히 실천한다면 모두 건강에 좋겠지만 체계적인 구성을 갖춘 오금희는 그 어떤운동에 뒤지지 않는 양생운동이 되리라 본다.
심사일과 수료식을 맞아, 오금희를 소개해준 분과 가르쳐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2014. 12.22. 동지날
화타 오금희를 알게 된 것은 30년도 더 지난 대학 예과 개론시간이나 의사학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는 삼국지의 관운장을 수술하고 조조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그 유명한 名醫 華陀가 다섯 동물의 움직임을 본떠서 인간의 양생술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 화타 오금희이며 도사 같은 사람이 다섯 동물의 품새를 잡는 그림과 함께 공부했던 것이 첫 만남으로 기억된다.
그것을 끝으로 그렇게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살았다.
이론적으로 머릿속으로만 배웠을 뿐이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고(현재는 모르겠다 기공시간이 있다하니) 그것을 가르치는 곳도 없어 아마 그러지 않았나 싶다.
왜냐하면 이미 그 당시(80년대 초)에 기공이니 단전호흡이니 국선도니 하며 기의 본체를 찾기 위해 강호에서 이름났다는 사람들이나 사설학원들을 드나들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한중수교전인 90년대 초에 중국에 特異氣功者를 찾아 가서 장백폭포 아래서 수련을 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 잊고 있다가 오금희와의 두 번째 인연은 96년도에 있게 된다.
당시 한의사 전국 학술대회를 경기도한의사회가 주관하게 되었는데 당시 경기도한의사회의 당연직 운영위원(이사)이었기에 그 행사 진행에 일정부분 관여하게 되었다.
그때 행사 중의 하나가 모 원장님께서 시행했던 오금희 시범이었다. 처음으로 오금희의 동작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그때 만인이 스포츠 정도로 하는 기공이나 氣장사하는 단학선원보다는 오금희가 좀 더 한의학적 養生術이니 제대로 된 오금희가 있다면 대학에서 養生學으로 흡수하여 이론만이 아닌 실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되었다.
왜냐하면 기공이 한의학 자체라고 하기는 억지스럽지만 오금희가 한의학이란 것은 장중경의 상한론이나 허준의 동의보감이 한의학인 것만큼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말이다.
그렇게 세월이 다시 흘려 작년 봄에 한 선배원장님으로부터 오금희를 다니는데 너무 좋아 함께하면 좋겠다는 러브콜을 여러 번 받았었지만 내 개인적인 바쁜 일정과 거리상의 문제로 주저하고 있었는데 여러 번 재촉하기에 그 성의의 예의상 한 달 정도는 해주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되어 공개수련 첫날에 시범적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양생법으로 요가를 몇 년째 다니고 있었고, 아침마다 내 나름대로 ‘經絡요가’란 이름을 붙인 양생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臥坐운동법인데 百會혈부터 湧泉혈까지의 導引按摩指壓과 근골계의 屈伸(스트레칭)운동과 니시의학의 운동(모관,붕어,合掌合蹠運動)등을 합쳐 만든 것으로 아침 눈뜨자마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년간 해오고 있었기에 다른 양생법을 추가할 생각이 없었던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 날이 작년 9월 말경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해서 나는 금요일 오후 7시 반에 실시하는 보충 반에서 오금희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천에서 다니던 소개한 원장님께서 시간적인 제약으로 11월부터 나오지 않게 되었지만 나혼자서 수련을 계속했다.
수련할수록 가까워져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올 1월말 설날을 맞아 보충반 4명 중 부부가 1개월간 외국여행을 간다면서 쉰다기에 나도 그냥 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오금희는 좋은데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아마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것은 금년 5월에 내가 소개한 원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다니자고 직접 나선 것만 봐도 그런 것 같다. 그렇게 하여 둘은 다시 오금희를 다니게 되었고, 8월 중순에 초급반을 완료했다.
나는 월요일 5시 반에 시작하는 중급반에 등록했고 시간이 안 되는 소개한 원장님은 초급반만 완료하고 그만두었다. 그러나 경기도에 거주하는 나로선 시간이 맞지 않아 종료 30분쯤에 나가서 얼굴만 비치면서 중급반 수련을 계속해나갔다. 얼치기수련생이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0월부터 새로운 초급반이 7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시작되어 중급반은 30분 참가하면서 초급반에 1시간 참가하여 다시 배울 수가 있어 충분한 보충이 되었다. 더구나 가르치는 선생님이 김한섭 코치님에서 김성기회장님으로 바뀌어 두 분에게 다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수련한 하위교육은 무료로 언제든지 열려있다는 것이 이 단체의 장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중급반은 시간이 안 맞으나 억지로라도 이번 12월로 수료를 완료하고 그 완료후인 새해에도 월요일은 초급반에 묻어 2015년 말까지 중급까지 계속 다녀 얼치기가 아닌 제대로 된 수료자가 될 계획이다.
월요일 저녁은 오금희를 위하여 늘 저축해둘 생각인 것이다. 더하여 오금희의 다양성(기원, 동작종류, 언어, 유파, 오행배치 등)을 연구해볼 필요성도 들었다. 1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보면 58기로 수료식을 갖는다는 것이 焉敢生心이다 싶다. 華陀五禽之?圖解(곽정헌著.우리출판사)의 후기에 보면 역자께서 ‘우리는 갈 때마다 망설이고 올 때마다 기뻐했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글을 읽는 순간 내 마음의 표출임을 切感했다. 나또한 갈 때마다 망설이고 종종거리면 갔었지만 올 때마다 흐뭇한 마음으로 귀가했던 것이다.
지루할 것 같은 오갈 때의 왕복 3시간도 독서로 채우니 시간의 낭비가 아니었다.
각자의 거리와 시간이 다를 테니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오금희를 수련할 지혜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어느 운동이든 자기 몸에 맞게 꾸준히 성실히 실천한다면 모두 건강에 좋겠지만 체계적인 구성을 갖춘 오금희는 그 어떤운동에 뒤지지 않는 양생운동이 되리라 본다.
심사일과 수료식을 맞아, 오금희를 소개해준 분과 가르쳐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2014. 12.22. 동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