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련 기
최 균 성
학창 시절부터 체조 내지는 율동에 대하여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거부감을 갖고 있던 내가 오금희를 배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금희를 체조나 율동의 아류쯤으로 알고 있던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전에 회장님이신 김성기 선배의 가벼운 권유가 있기는 했지만 한 귀로 흘려버린지 오래였다. 그러던 중 어느날 취중에 덜컥 나가겠노라고 약속을 해버리고, 그 약속의 빌미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참으로 내가 생각해도 게으른 연명(?)이었다고나할까? 그것을 참아준 선생님과 사형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렇더라도 그 게으름 속에서도 유혹이 많은 토요일 오후에 ‘수효사‘를 찾게 만드는 것은, 이 ’오금희‘ 속에는 아직도 배워야 할 무엇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물론 나의 오금희 동작은 아직도 엉터리 투성이라는 것은 자타가 다 인정할 정도이지만, 그 게으른 수련을 통해서도 신체의 변화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한쪽으로 기울었던 어깨가 펴졌다느니, 그 동안 전철에서 서 있기도 힘들었던 허리의 통증이 사라졌다느니, 근육이 놀랐을 때 오금희를 하면 너무도 깜쪽같이 풀어진다느니 하는 등의 신체적 변화는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오금희 속에는 아직도 무한히 배워야할 신비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게으른 1년 가까운 시간을 통하여 안 것이 나의 가장 큰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의 짧은 수련 기간을 통해서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 꾸준한! 수련을 통하여 깨우치도록 노력해 보리라 다짐해 본다.
최 균 성
학창 시절부터 체조 내지는 율동에 대하여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거부감을 갖고 있던 내가 오금희를 배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금희를 체조나 율동의 아류쯤으로 알고 있던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전에 회장님이신 김성기 선배의 가벼운 권유가 있기는 했지만 한 귀로 흘려버린지 오래였다. 그러던 중 어느날 취중에 덜컥 나가겠노라고 약속을 해버리고, 그 약속의 빌미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참으로 내가 생각해도 게으른 연명(?)이었다고나할까? 그것을 참아준 선생님과 사형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렇더라도 그 게으름 속에서도 유혹이 많은 토요일 오후에 ‘수효사‘를 찾게 만드는 것은, 이 ’오금희‘ 속에는 아직도 배워야 할 무엇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물론 나의 오금희 동작은 아직도 엉터리 투성이라는 것은 자타가 다 인정할 정도이지만, 그 게으른 수련을 통해서도 신체의 변화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한쪽으로 기울었던 어깨가 펴졌다느니, 그 동안 전철에서 서 있기도 힘들었던 허리의 통증이 사라졌다느니, 근육이 놀랐을 때 오금희를 하면 너무도 깜쪽같이 풀어진다느니 하는 등의 신체적 변화는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오금희 속에는 아직도 무한히 배워야할 신비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게으른 1년 가까운 시간을 통하여 안 것이 나의 가장 큰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의 짧은 수련 기간을 통해서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 꾸준한! 수련을 통하여 깨우치도록 노력해 보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