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금희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국민학교 6학년 때이다. 당시 최배달이라는 무도인의 일대기를 그린 고우영 화백의 『대야망』이라는 만화가 인기가 있었다. 그 만화의 에피소드 가운데 오금희가 소개되었다. 대륙이 공산화된 후 일부 전통 무예를 익힌 사람들이 대만으로 건너갔다. 그 가운데 어떤 문파의 사제 세 사람이 당시 세계적으로 격투기로 이름을 날리던 최배달을 찾아왔다. 최배달을 꺾으면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자기 무술을 널리 알릴 수도 있고 생존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 속에서 수련하고 있는 최배달을 찾아가서 기습했다. 낌새를 알아챈 최배달이 방어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학처럼 두 팔을 활짝 펴고 한 발로 서는 기묘한 동작을 취했다. 순간 최배달은 그 무술의 가공할 위력을 직관적으로 파악했다. 고우영 화백은 최배달이 놀라는 장면을 그린 다음 이 기묘한 동작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했다. 그 동작의 유래가 바로 오금희라는 것이다. 화타라는 의사가 호랑이·사슴·곰·원숭이·학의 동작을 관찰하여 도인술로 만든 것이라 했다. 앞의 네 짐승은 저마다 날쌔고 사납고 재빠르니 타당하다 하겠지만 학이라니 의외가 아닌가? 그러면서 고 화백은 특유한 필치로 학이 뱀을 물리치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유연한 동작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었다. 아무튼 그 이후 오금희라는 말을 다시 접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몇 년 전 교보문고 옆에 있던 정신세계사 서점에서 오금희를 소개한 김성기 사부님의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전에 성균관대학에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김성기 사부님이 논평을 해주셔서 성함을 알고 있었던 터라 관심이 생겼다.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는 터라 몸을 배려할 기회가 별로 없는 나로서는 몸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주는 기공이나 도인술 또는 요가 등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퇴계 선생의 활인심방을 따라 해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고, 요가도 두어 달 다녔지만 장소가 바뀌니까 혼자 하기가 힘들어서 중도 폐지하고 말았다. 그래서 오금희 소개한 책자를 보고 인터넷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접속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금희와 인연이 없나보다 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한의사들과 『태평어람』 가운데서 양생에 관한 부분을 읽었는데 거기에 화타와 오금희에 관한 기록이 있었다. 『삼국지』 「위지」 <방기전(方技傳)>을 인용한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보가 화타에게서 도를 물은 적이 있었다. 화타가 오보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몸은 일을 하고 움직여야 하지만 너무 극단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움직이면 곡식이 쉽게 소화되고 피와 맥이 잘 돌아 병이 생기지 않는다. 마치 문의 지도리가 좀이 쓸지 않고 흐르는 물이 썩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들은 늘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선이나 한대의 선비들 가운데는 오래 전부터 도인술을 수련했다. 곰처럼 목을 길게 늘이고 올빼미처럼 목을 돌리며 허리와 몸통을 늘이고 당기며 모든 관절을 움직이면 늙는 것을 늦출 수 있다. 나에게는 한 가지 기술이 있는데 그것은 오금희이다. 바로 호랑이·사슴·곰·원숭이·학의 동작을 흉내낸 놀이이다. 이 동작을 따라하면 질병을 물리치고 발놀림이 빨라진다. 이것으로 도인술을 수련하면 좋다. 몸이 불쾌하면 일어나서 한 짐승의 동작만 흉내내도 좋다.” 오보가 익혀서 수련을 하여 아흔 살까지 살았다. 한의사들과 이 글을 읽을 때만해도 오금희를 익히지 않았을 때라 겨우 한문 문장을 독해하는 데 그쳤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진작 오금희를 익혔더라면 더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내용을 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오금희를 만날 수 있게 해준 은인은 이현구 선생님이다. 이현구 선생님과 동의과학 연구소에서 가끔 만나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하다가 언젠가 김성기 사부님을 만난 얘기를 하시면서 오금희 수련을 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가실 때 나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로도 여러 날 아무런 말씀이 없어서 오금희 수련은 물 건너 간 일인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1월 달부터 시작하기로 했다고 하셨다. 첫날 이현구 선생님을 만나 경기대를 지나 언덕에 있는 수효사를 찾았더니 오금희 수련회가 절집에 더부살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주저하는 마음도 생겼지만 이현구 선생님의 표정을 보니 아주 기꺼워하셔서 나도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기로 했다. 윤산 사범님의 시범을 보니 정말 물 흐르듯 이어지는 동작이 예술이었다. 나에게는 꼭 필요한 운동이다 싶었다. 예비공을 배우고 집에 가서 틈틈이 하루에도 몇 번씩 연습을 해보니 몸이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한 두 주쯤 지나자 그 반응은 바로 방귀로 나타났다. 뿡! 뿡! 뿡! 거침없이 방귀가 나왔다. 그 무렵 이현구 선생님은 가래가 쉴새없이 들끓는다고 하셨다.
오금희의 미덕은 몸에 대한 배려이며 몸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 몸을 내가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오금희 수련 과정에서 알았다. 팔을 뻗고 몸을 구부리고 펴고 일어서고 앉고 돌고 뛰고 하는 과정에서 몸의 여기저기를 느끼게 되었고 그 각 부분이 나에게 반응을 보였다. 지금 내가 오금희를 수련하여 몸에 두드러지는 변화가 생겼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늘 앉아서 일하다가 오금희를 수련할 때만이라도 몸을 돌아보니 그것만으로도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 집에 내려가 하루종일 밭일을 돕다가 저녁 먹고 오금희를 하고 나면 굳었던 허리가 다 펴진다. 그런 때 내가 정말 오금희를 배우기를 잘 했다고 느낀다. 나는 오금희를 남에게 소개해줄 수 있을 만큼 내공이 쌓이면 <귀농본부> 벗님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농촌을 살리자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인 만큼 오금희는 꼭 필요한 것이다. 농촌에서 일하는 것은 그야말로 몸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도 몸을 쓰는 부분만 쓰는 것이기 쉽다. 그런데 오금희는 근육과 몸을 반대로 움직여 균형과 항상성을 유지해주는 것이니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둘도 없이 좋은 운동이다.
무슨 수련이든지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 같다. 나 혼자 다녔더라면 이렇게 열심히 다닐 수 있었을까? 성격상 끝까지 하기야 하겠지만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현구 선생님과 함께 다니니 의기가 투합하고 서로 격려가 되고 동료의식이 생겨서 효과가 배가되었다. 나는 그저 몸이 저절로 말을 들을 때까지 ‘무대뽀(?)’로 밀고 나가는 성격인데 이현구 선생님은 끊임없이 연구를 하신다. 연구와 현구가 발음이 비슷해서인가? 책과 사부님의 동작을 비교하기도 하고 책을 뒤적여 오금희의 원리를 추구하기도 하고 더 나은 동작을 체득하기 위해 실험도 해보신다. 그래서 나도 늘 자극을 받고 아둔한 머리로 깨닫지 못하는 것을 계발받아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아직 오금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겨우 문턱을 밟고 있다. 수련실 법당에서 유리창을 통해 보면 모르는 사이에 겨울이 가고 봄이 가고 그 지루하던 여름이 가고 이제 가을이 한창이다. 그처럼 내 몸도 차츰차츰 곰과 호랑이와 원숭이와 사슴과 학과 닮아가고 있는가 보다.
수 천년 이어 온 오금희를 가르쳐주시는 사부님과 동작을 교정해주고 이끌어주시는 사범님들과 서로 격려하며 수련을 함께 하는 사형제자매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린다. 생각하면 늘 그리운 얼굴들이다.
끝으로 치기 어린 짓거리를 하나 하려고 한다.
寄五禽▩修練 오금희 수련에 부쳐
千載綿綿五禽▩ 천년을 끊임없이 이어온 오금희
燈傳海東幾度秋 동쪽에 들어온 지 몇 해이던가
佳人才子芳園來 아름다운 사람들 꽃처럼 모여들어
名師高徒同心綢 스승과 제자가 한 마음으로 얽혔네
俯引展舒地理繆 숙이고 당기고 뻗고 펴는 데 땅의 이치가 얽혀있고
朝陽拜月天文求 태양을 바라보고 달을 보고 절을 하며 하늘의 이치를 찾네
勿期獵等踏仙境 단숨에 경지에 오르려 하지 말고
但當日練又月修 모름지기 날로 달로 부지런히 익히세
又
華聖五▩漢時開 한나라 때 생긴 화타 오금희
不絶綿綿傳東來 끝없이 이어져 동쪽에도 전해졌네
修孝庵前萬花發 수효사 앞에 핀 온갖 꽃은
韓中奇緣兩相裁 두 나라 기이한 인연으로 심은 것이라네
괜히 주접을 떨어보았습니다. 먹물들은 어디 가도 티를 내나 봅니다. 아직도 수련이 덜 된 탓입니다. 그래도 변명을 한다면 오금희 수련의 벅찬 감격을 이기지 못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혹시라도 고쳐주시면 한 글자 스승으로 받들겠습니다.
화타 오금희 제7기생 김태완 씀.
몇 년 전 교보문고 옆에 있던 정신세계사 서점에서 오금희를 소개한 김성기 사부님의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전에 성균관대학에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김성기 사부님이 논평을 해주셔서 성함을 알고 있었던 터라 관심이 생겼다.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는 터라 몸을 배려할 기회가 별로 없는 나로서는 몸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주는 기공이나 도인술 또는 요가 등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퇴계 선생의 활인심방을 따라 해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고, 요가도 두어 달 다녔지만 장소가 바뀌니까 혼자 하기가 힘들어서 중도 폐지하고 말았다. 그래서 오금희 소개한 책자를 보고 인터넷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접속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금희와 인연이 없나보다 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한의사들과 『태평어람』 가운데서 양생에 관한 부분을 읽었는데 거기에 화타와 오금희에 관한 기록이 있었다. 『삼국지』 「위지」 <방기전(方技傳)>을 인용한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보가 화타에게서 도를 물은 적이 있었다. 화타가 오보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몸은 일을 하고 움직여야 하지만 너무 극단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움직이면 곡식이 쉽게 소화되고 피와 맥이 잘 돌아 병이 생기지 않는다. 마치 문의 지도리가 좀이 쓸지 않고 흐르는 물이 썩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들은 늘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선이나 한대의 선비들 가운데는 오래 전부터 도인술을 수련했다. 곰처럼 목을 길게 늘이고 올빼미처럼 목을 돌리며 허리와 몸통을 늘이고 당기며 모든 관절을 움직이면 늙는 것을 늦출 수 있다. 나에게는 한 가지 기술이 있는데 그것은 오금희이다. 바로 호랑이·사슴·곰·원숭이·학의 동작을 흉내낸 놀이이다. 이 동작을 따라하면 질병을 물리치고 발놀림이 빨라진다. 이것으로 도인술을 수련하면 좋다. 몸이 불쾌하면 일어나서 한 짐승의 동작만 흉내내도 좋다.” 오보가 익혀서 수련을 하여 아흔 살까지 살았다. 한의사들과 이 글을 읽을 때만해도 오금희를 익히지 않았을 때라 겨우 한문 문장을 독해하는 데 그쳤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진작 오금희를 익혔더라면 더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내용을 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오금희를 만날 수 있게 해준 은인은 이현구 선생님이다. 이현구 선생님과 동의과학 연구소에서 가끔 만나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하다가 언젠가 김성기 사부님을 만난 얘기를 하시면서 오금희 수련을 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가실 때 나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로도 여러 날 아무런 말씀이 없어서 오금희 수련은 물 건너 간 일인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1월 달부터 시작하기로 했다고 하셨다. 첫날 이현구 선생님을 만나 경기대를 지나 언덕에 있는 수효사를 찾았더니 오금희 수련회가 절집에 더부살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주저하는 마음도 생겼지만 이현구 선생님의 표정을 보니 아주 기꺼워하셔서 나도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기로 했다. 윤산 사범님의 시범을 보니 정말 물 흐르듯 이어지는 동작이 예술이었다. 나에게는 꼭 필요한 운동이다 싶었다. 예비공을 배우고 집에 가서 틈틈이 하루에도 몇 번씩 연습을 해보니 몸이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한 두 주쯤 지나자 그 반응은 바로 방귀로 나타났다. 뿡! 뿡! 뿡! 거침없이 방귀가 나왔다. 그 무렵 이현구 선생님은 가래가 쉴새없이 들끓는다고 하셨다.
오금희의 미덕은 몸에 대한 배려이며 몸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 몸을 내가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오금희 수련 과정에서 알았다. 팔을 뻗고 몸을 구부리고 펴고 일어서고 앉고 돌고 뛰고 하는 과정에서 몸의 여기저기를 느끼게 되었고 그 각 부분이 나에게 반응을 보였다. 지금 내가 오금희를 수련하여 몸에 두드러지는 변화가 생겼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늘 앉아서 일하다가 오금희를 수련할 때만이라도 몸을 돌아보니 그것만으로도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 집에 내려가 하루종일 밭일을 돕다가 저녁 먹고 오금희를 하고 나면 굳었던 허리가 다 펴진다. 그런 때 내가 정말 오금희를 배우기를 잘 했다고 느낀다. 나는 오금희를 남에게 소개해줄 수 있을 만큼 내공이 쌓이면 <귀농본부> 벗님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농촌을 살리자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인 만큼 오금희는 꼭 필요한 것이다. 농촌에서 일하는 것은 그야말로 몸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도 몸을 쓰는 부분만 쓰는 것이기 쉽다. 그런데 오금희는 근육과 몸을 반대로 움직여 균형과 항상성을 유지해주는 것이니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둘도 없이 좋은 운동이다.
무슨 수련이든지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 같다. 나 혼자 다녔더라면 이렇게 열심히 다닐 수 있었을까? 성격상 끝까지 하기야 하겠지만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현구 선생님과 함께 다니니 의기가 투합하고 서로 격려가 되고 동료의식이 생겨서 효과가 배가되었다. 나는 그저 몸이 저절로 말을 들을 때까지 ‘무대뽀(?)’로 밀고 나가는 성격인데 이현구 선생님은 끊임없이 연구를 하신다. 연구와 현구가 발음이 비슷해서인가? 책과 사부님의 동작을 비교하기도 하고 책을 뒤적여 오금희의 원리를 추구하기도 하고 더 나은 동작을 체득하기 위해 실험도 해보신다. 그래서 나도 늘 자극을 받고 아둔한 머리로 깨닫지 못하는 것을 계발받아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아직 오금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겨우 문턱을 밟고 있다. 수련실 법당에서 유리창을 통해 보면 모르는 사이에 겨울이 가고 봄이 가고 그 지루하던 여름이 가고 이제 가을이 한창이다. 그처럼 내 몸도 차츰차츰 곰과 호랑이와 원숭이와 사슴과 학과 닮아가고 있는가 보다.
수 천년 이어 온 오금희를 가르쳐주시는 사부님과 동작을 교정해주고 이끌어주시는 사범님들과 서로 격려하며 수련을 함께 하는 사형제자매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린다. 생각하면 늘 그리운 얼굴들이다.
끝으로 치기 어린 짓거리를 하나 하려고 한다.
寄五禽▩修練 오금희 수련에 부쳐
千載綿綿五禽▩ 천년을 끊임없이 이어온 오금희
燈傳海東幾度秋 동쪽에 들어온 지 몇 해이던가
佳人才子芳園來 아름다운 사람들 꽃처럼 모여들어
名師高徒同心綢 스승과 제자가 한 마음으로 얽혔네
俯引展舒地理繆 숙이고 당기고 뻗고 펴는 데 땅의 이치가 얽혀있고
朝陽拜月天文求 태양을 바라보고 달을 보고 절을 하며 하늘의 이치를 찾네
勿期獵等踏仙境 단숨에 경지에 오르려 하지 말고
但當日練又月修 모름지기 날로 달로 부지런히 익히세
又
華聖五▩漢時開 한나라 때 생긴 화타 오금희
不絶綿綿傳東來 끝없이 이어져 동쪽에도 전해졌네
修孝庵前萬花發 수효사 앞에 핀 온갖 꽃은
韓中奇緣兩相裁 두 나라 기이한 인연으로 심은 것이라네
괜히 주접을 떨어보았습니다. 먹물들은 어디 가도 티를 내나 봅니다. 아직도 수련이 덜 된 탓입니다. 그래도 변명을 한다면 오금희 수련의 벅찬 감격을 이기지 못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혹시라도 고쳐주시면 한 글자 스승으로 받들겠습니다.
화타 오금희 제7기생 김태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