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희를 안 것은 꽤 오래 전이다. 사실 이제야 수련을 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이렇게 늦게 오금희와 대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돌이켜 보면 선입견과 게으름, 이 두 가지 때문인 것 같다.
오금희는 20대 초반 학부 시절부터 줄곧 주위 누군가가 수련하고 있었다. 선배, 또는 연배가 높은 선생님이나 어른을 통해 오금희의 개요나 수련법을 종종 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에 오금희에는 별다른 흥미가 일지 않았다.
당시 나는 격한 운동에 대해 강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매료되었고 오래 수련했던 것은 검도였다. 어린 날의 혈기와 치기가 강해서였겠지만, 모름지기 운동이란 몸과 마음을 극단까지 몰아붙이는 것이며, 이를 통해 성취를 얻는다고 생각했다. 만 5년 정도의 수련 기간 동안 손바닥과 발바닥에 물집 없는 날이 드물었고, 수련 후 땀으로 푹 젖어버린 도복을 벗으며 희열을 느꼈다.
격한 운동을 즐기다 보니, 주위에서 전해들은 오금희는 나와 잘 맞는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러 동작 속에 체계와 깊이가 깃든 것은 알겠지만, 역시 혈기왕성한 당시의 나를 충족시키기에는 너무 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가졌던 선입견이다.
학부에서 석사에 이르는 만 5년간 쥐었던 죽도를 군 입대를 계기로 놓았다. 그리고 제대 후 6년여 간의 박사 과정은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루하루를 쉴 새 없이 지내며 학위를 준비했지만, 동시에 몸을 끊임없이 갉아먹고 있었다. 운동이 필요하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건강이나 몸에 대해 걱정조차 하지 않던 몸이 이제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몸 쓰는 일만 중노동은 아니다. 앉아서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사무를 보는 것 역시 몸을 혹사시키는 중노동이다. 이것을 어렴풋이 알았을 때, 이미 몸은 여기저기에서 이상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로도 한참의 시간 동안 별다른 조치 없이 보냈다. 실제로 바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 잠깐, 일주일에 한 번 몸을 돌볼 시간조차 없었을까. 이것이 내가 가졌던 게으름이다.
병이 나야 아픈 것은 아니다. 상반신은 딱딱해지고, 하반신은 힘이 빠졌으며, 체력은 떨어졌다. 급기야 목과 오른쪽 어깨에는 때때로 상당한 통증도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무언가 조치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 후 일 년 정도의 시간 동안 오금희를 수련했다. 여러모로 삐걱거렸던 내 몸은 예전에 정적이라 여겼던 오금희의 동작들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없었다. 오금희의 동작들은 느릿하게 전개되지만, 막상 실행해 보니 느린 동작 속에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오금희의 모든 동작 수행에는 몸의 균형감각과 시선, 근육과 뼈의 움직임, 호흡, 유연성 등 여러 요소가 조화로우면서도 빈틈없이 수행될 것이 요구되었다. 때때로 얼마간 걷는 것도 운동으로 여겼던 나에게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앉고 서고, 올리고 내리고, 비틀고 회전시키는 동작들은 호흡과 맞물려 무언가 온전한 동작을 실행했다는 충실감을 만들어 낸다. 몸의 여러 요소들이 느릿한 속도 속에 톱니바퀴처럼 맞아 들어가면서 느끼게 되는 기쁨은, 빠른 속도와 강한 힘을 추구할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와 함께 삐걱거리던 몸의 여러 부분들이 점차 제 자리를 찾아가고, 또 유연해 진다는 감각이 느껴졌다.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부지런히 수련했을까, 이렇게 자신에게 질문해 보면 그렇다고 대답하기에는 망설여진다. 검도를 할 때에는 정말이지 열심이었다. 수련시간 한 시간 전에 도장에 나가서 개인 연습을 하고, 도장이 열지 않는 휴일에는 밖에서 죽도를 휘둘렀다. 내일 경기에 나가는 사람처럼. 아직 사회에 나가 책임을 가지고 일하지 않는 학생이니 가능했던 일이다.
오금희는 그렇지 하지 못했다. 그만큼의 열정이 없는 아니지만, 학생 시절과 생활이 달랐다. 고정된 강의 등의 일 외에도 부정기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세미나나 회의는 시간과 동시에 마음의 여유도 갉아먹는다. 어쩌다 짬이 나도 눕기 바쁘다. 간간히 혼자 동작을 해 보지만 과거의 열심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목표를 하나로 정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함께 수련을 하는 월요일에 빠지지 않는 것으로. 중급반에 들어가며 세운 이 목표는 한 번의 결석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게으름을 부리지는 않았다는 위안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중급 심사를 앞두고 내 동작을 되돌아보면, 역시 아쉬움 투성이다. 때때로 동작도 원활치 못하고, 연결 순서가 섞이기도 한다. 여전히 다른 사람을 곁눈질로 봐 가며 맞게 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분명히 이미 시선과 무게중심을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작을 할 때마다 뭔가를 빠뜨린다. 스스로 더 힘쓰지 못한 결과이나 아쉬움은 남는다.
한편 예비공 조차 쩔쩔 매고, 선배님들의 동작을 보면서 저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 신기해 했던 처음의 모습과는 역시 조금 달라졌다.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모양은 쫓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저기 이상신호를 보냈던 몸의 여러 부분도 부드러움과 안정을 찾았다. 무엇보다 일주일에 한번 자기 몸을 살피고 땀을 흘리면서, 번잡한 생각들에서 잠시 떠날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동시에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던 점이야 말로 내가 오금희를 통해 얻은 가장 값진 것이다.
여기저기 삐걱거리던 몸과 마음을 오금희를 통해 수습할 수 있었다. 수련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상태일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2017년에서 2018년에 이르는 내 인생의 일 년 속에서 오금희 수련은 말할 수 없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수련 일 년 뒤 보물을 안고 돌아가리라는 원장님의 말씀은 이런 형태로 실현되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 같다.
오금희는 20대 초반 학부 시절부터 줄곧 주위 누군가가 수련하고 있었다. 선배, 또는 연배가 높은 선생님이나 어른을 통해 오금희의 개요나 수련법을 종종 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에 오금희에는 별다른 흥미가 일지 않았다.
당시 나는 격한 운동에 대해 강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매료되었고 오래 수련했던 것은 검도였다. 어린 날의 혈기와 치기가 강해서였겠지만, 모름지기 운동이란 몸과 마음을 극단까지 몰아붙이는 것이며, 이를 통해 성취를 얻는다고 생각했다. 만 5년 정도의 수련 기간 동안 손바닥과 발바닥에 물집 없는 날이 드물었고, 수련 후 땀으로 푹 젖어버린 도복을 벗으며 희열을 느꼈다.
격한 운동을 즐기다 보니, 주위에서 전해들은 오금희는 나와 잘 맞는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러 동작 속에 체계와 깊이가 깃든 것은 알겠지만, 역시 혈기왕성한 당시의 나를 충족시키기에는 너무 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가졌던 선입견이다.
학부에서 석사에 이르는 만 5년간 쥐었던 죽도를 군 입대를 계기로 놓았다. 그리고 제대 후 6년여 간의 박사 과정은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루하루를 쉴 새 없이 지내며 학위를 준비했지만, 동시에 몸을 끊임없이 갉아먹고 있었다. 운동이 필요하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건강이나 몸에 대해 걱정조차 하지 않던 몸이 이제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몸 쓰는 일만 중노동은 아니다. 앉아서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사무를 보는 것 역시 몸을 혹사시키는 중노동이다. 이것을 어렴풋이 알았을 때, 이미 몸은 여기저기에서 이상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로도 한참의 시간 동안 별다른 조치 없이 보냈다. 실제로 바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 잠깐, 일주일에 한 번 몸을 돌볼 시간조차 없었을까. 이것이 내가 가졌던 게으름이다.
병이 나야 아픈 것은 아니다. 상반신은 딱딱해지고, 하반신은 힘이 빠졌으며, 체력은 떨어졌다. 급기야 목과 오른쪽 어깨에는 때때로 상당한 통증도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무언가 조치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 후 일 년 정도의 시간 동안 오금희를 수련했다. 여러모로 삐걱거렸던 내 몸은 예전에 정적이라 여겼던 오금희의 동작들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없었다. 오금희의 동작들은 느릿하게 전개되지만, 막상 실행해 보니 느린 동작 속에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오금희의 모든 동작 수행에는 몸의 균형감각과 시선, 근육과 뼈의 움직임, 호흡, 유연성 등 여러 요소가 조화로우면서도 빈틈없이 수행될 것이 요구되었다. 때때로 얼마간 걷는 것도 운동으로 여겼던 나에게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앉고 서고, 올리고 내리고, 비틀고 회전시키는 동작들은 호흡과 맞물려 무언가 온전한 동작을 실행했다는 충실감을 만들어 낸다. 몸의 여러 요소들이 느릿한 속도 속에 톱니바퀴처럼 맞아 들어가면서 느끼게 되는 기쁨은, 빠른 속도와 강한 힘을 추구할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와 함께 삐걱거리던 몸의 여러 부분들이 점차 제 자리를 찾아가고, 또 유연해 진다는 감각이 느껴졌다.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부지런히 수련했을까, 이렇게 자신에게 질문해 보면 그렇다고 대답하기에는 망설여진다. 검도를 할 때에는 정말이지 열심이었다. 수련시간 한 시간 전에 도장에 나가서 개인 연습을 하고, 도장이 열지 않는 휴일에는 밖에서 죽도를 휘둘렀다. 내일 경기에 나가는 사람처럼. 아직 사회에 나가 책임을 가지고 일하지 않는 학생이니 가능했던 일이다.
오금희는 그렇지 하지 못했다. 그만큼의 열정이 없는 아니지만, 학생 시절과 생활이 달랐다. 고정된 강의 등의 일 외에도 부정기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세미나나 회의는 시간과 동시에 마음의 여유도 갉아먹는다. 어쩌다 짬이 나도 눕기 바쁘다. 간간히 혼자 동작을 해 보지만 과거의 열심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목표를 하나로 정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함께 수련을 하는 월요일에 빠지지 않는 것으로. 중급반에 들어가며 세운 이 목표는 한 번의 결석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게으름을 부리지는 않았다는 위안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중급 심사를 앞두고 내 동작을 되돌아보면, 역시 아쉬움 투성이다. 때때로 동작도 원활치 못하고, 연결 순서가 섞이기도 한다. 여전히 다른 사람을 곁눈질로 봐 가며 맞게 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분명히 이미 시선과 무게중심을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작을 할 때마다 뭔가를 빠뜨린다. 스스로 더 힘쓰지 못한 결과이나 아쉬움은 남는다.
한편 예비공 조차 쩔쩔 매고, 선배님들의 동작을 보면서 저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 신기해 했던 처음의 모습과는 역시 조금 달라졌다.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모양은 쫓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저기 이상신호를 보냈던 몸의 여러 부분도 부드러움과 안정을 찾았다. 무엇보다 일주일에 한번 자기 몸을 살피고 땀을 흘리면서, 번잡한 생각들에서 잠시 떠날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동시에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던 점이야 말로 내가 오금희를 통해 얻은 가장 값진 것이다.
여기저기 삐걱거리던 몸과 마음을 오금희를 통해 수습할 수 있었다. 수련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상태일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2017년에서 2018년에 이르는 내 인생의 일 년 속에서 오금희 수련은 말할 수 없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수련 일 년 뒤 보물을 안고 돌아가리라는 원장님의 말씀은 이런 형태로 실현되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