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은 경 > 정회원 수련기

본문 바로가기
초급반 수시 모집 : 화, 수, 목, 금, 토요일 가능 시간은 별도 문의
화타오금희

정회원 수련기

임 은 경
수련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오금희를 수련하러 가는 토요일은 일주일의 피로가 몰려오는 때라서 내가 오금희를 끝까지 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여태껏 운동과 관련해서 두 달 이상을 계속해 본 경험이 전무한 까닭에 1년을 계속해서 수련하고, 수료를 하게 될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었다. 건강은 늘 좋지 않았었고, 그것은 이미 내겐 자연스러워 불편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무엇인가를 통해 건강해 질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 새삼스러워 늘 그렇게 중도에 포기하곤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나는 여기까지 왔다.

처음 오금희란 운동을 알게 된 것은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계신 오금희 6기의 최 선생님 덕분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최 선생님께서 계신 방에 갈 때마다 매번 체조 비슷한 걸 하시는걸 보게 되었다. 궁금해서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최 선생님께서 ‘오금희’라고 하시면서 그 체조의 특별함에 대해 자랑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의 건강 상태를 익히 알고 계셨던 최 선생님께서 내게 오금희를 배워 볼 것을 권하셨다. 최 선생님은 사물이나 사람, 관계 등에 대해 다소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으로 거리두기를 하시는 분이시라 어떤 일을 자랑하시거나 타인에게 권유하는 일이 드물었다. 따라서 최 선생님의 ‘오금희’와 관련한 그런 말씀이나 행동은 낯설고 의아스러웠고, 그리고 무언가 있을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했다. 사실 운동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권유가 극진해서 얼떨결에 배우러 다니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최 선생님께서 그냥 해 본 말씀일거라고, 진짜로 가라고 그러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금희 8기를 개강하는 날에 임박해서 집으로 전화까지 하시면서 굳건한 약조까지 받으시는 것이 아닌가? 이런 걸 ‘자의 반 타의 반’이라 하는지. 그렇게 해서 토요일마다 서대문으로의 대장정은 시작되었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몸치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오죽하면 무용 선생님께서 ‘춤은 하나도 안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가상해서 점수를 주겠다’고 하셨겠는가? 그러니 오금희를 배울 때 박 사부님께서 두 번 동작을 해 주시고 해보라고 그러실 때마다 나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나가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해야 하다니!
처음 오금희를 하러 갔을 때 등록 원서는 병원 문진표 같았다. 정말 치료의 효과가 있는 것일까? 박 사부님께서는 항상 동작의 한의학적 맥락을 짚어주셨고, 또 ‘의성 화타’가 정리한 것이라 한의학적 이해가 바탕이 됐을 거란 기대는 하였지만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여기까지 왔다.
미약하나마 몸의 변화가 느껴졌다. -‘미약’이란 표현은 전적으로 수련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은 나 자신의 책임이다.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열심히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있다는 것 자체가 오금희의 놀라운 치료 효과를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전에는 무릎이 아파서 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의자에 오래도록 앉아 있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낯선 길을 다녀오거나 산행이라도 한 날이면 그 날 밤은 정말 잠자기가 힘이 들었다. 그래서 누가 어디를 놀러가자고 하면 그게 무척이나 부담이 되었었다.
오금희를 수련하는 중에 산에 갈 일이 두 번 생겼다. 한 번은 금강산에 교사 연수를 가게 된 일이었다. 예전 같으면 ‘금강은 좋은데 산은 싫어요’라면서 연수를 포기 했을 거였는데 선뜻 가겠다고 하였다. 또 한 번은 학교 교직원 모두 대둔산으로 연수를 가게 되었는데 케이블 카를 놓치는 바람에 조난 아닌 조난을 당하여서 예정에도 없던 긴 등반을 하게 된 일이었다. 두 번 다 성공적이었다. 내 다리가 아닌 듯싶게 잘 걸었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후유증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 정말 보이지는 않으나 미세하게 근육이 생겨난 것이 분명하였다. 아, 계속할 이유였다.

나이가 들면서 뭐 하나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좀 서글픈 일이다. 오금희를 통해 몸과 관련된 개인기(?)를 갖게 된 일은 무엇보다도 가장 큰 수확이었다. 위축되었던 마음이 왠지 모를 자신감으로 충만해 지는 기분은 정말 아이들 말로 ‘짱’인 것이다. 그리고 계속 늙어 갈 일만 남은 나에게, 시간을 보람 있게 보내고자 하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포스트 모던 사회의 근대인인 나에게 오금희는 ‘삶을 느리게 관조하면서도 보람있게 시간을 누릴 수 있게 해 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했고, 그 기대는 오금희를 계속할 이유로 충분했다.

박 사부님의 내게 대한 열성도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게으름으로 연습 안한 티가 나면 박 사부님께서는 수료증을 주지 않으시겠다고 계속 협박(?)하셨다. 8기 여러분들의 은근과 끈기도 계속 서대문으로 오게 한 힘이었다. 8기 여러분들은 누구 하나 중도 탈락하지 않으시고 중급반 까지 모두 함께 오셨다. 오금희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사랑’을 지니고 계셨음에 틀림없다. 질문도 많이 안하고 그래서 우리 사부님께서 우리의 열정을 의심하셨을 수도 있지만 우리 8기는 정말 오금희를 사랑해 온 것이다. 차가운 열정으로.

이제 여기까지 왔다, 나도 수련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