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경험담을 그대로 빌려서 표현한다면, “우리도 항상 갈 때마다 망설였고, 올 때마다 기뻐하였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1년간 매주 토요일 오후 6시까지 오금희 배움장을 갈 때마다, 8시쯤에 배움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가졌던 나의 마음 자세이다.
지난 1년간의 내 오금희는 ‘수련’의 과정이었다기보다 ‘배움’의 과정이었다.
여기서 ‘배움’은 학생으로서 선생님의 외형을 따라서 흉내내기에 바빴다는 뜻이다. ‘수련’은 배우고 익히는 것이라서 선생님 동작 흉내내기에다가 스스로 닦아 동작의 원리까지 터득하려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겨우 따라다니며 모양 흉내내기에 급급하였으니, 수련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고 그런 사람이 수련기를 쓰려니까 참 난감하고 이건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일이다.
그래도 염치없이 수련기를 쓰는 이유는 이제 배움의 단계에서 수련의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운동에 대해서는 취미도 없고 손방인 임 선생이 모처럼 운동을 배워보겠다고 하면서, 내건 조건이 나도 함께 배우러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함께 배우지 않으면 안하겠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저 함께 가서 보고 무슨 운동인지 알아본다는 심정으로 예전의 수효사 법당을 찾았다.
첫날 선생님의 열띤 오금희 소개 강의, 마지막에 예비공의 몇 가지 동작을 보여주셨다. 불과 대여섯 명의 수강생 앞에서 한 시간 반 동안 그렇게 열심히 오금희를 소개하신 뒤에도 다음 주에 나오고 안 나오고는 각자의 선택임을 강조하신 선생님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나는 오금희의 순수함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오금희를 꼭 배워야 되겠다는 마음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마땅히 거부해야 할 이유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다음 주 토요일 오후에 다시 나오기로 되었다 . 이렇게 나는 처음부터 남다른 각오도 없이 아주 평범하게 오금희를 시작했다.
이런 경우 대개는 서너달 다니다가 그만두기 십상인데 하다보니 어느새 일년이 다되어 간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지금 우리집에서는 ‘오금희 간다’는 말이 뜻이 잘 통하는 말이 되었다. 토요일 오후에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아빠, 엄마 오늘 오금희 가요?’ 라고 묻는다. 아마 오금희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저게 무슨 소린가?’ 할 것이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모처럼 찾은 여유를 즐기고 싶은 마음에서 이번 주만은 오금희로부터 도망갈 핑계가 없을까 하는 속마음이 생기도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그런 핑계는 많지 않았다. 매번 그런 속내를 가지고도 막상 본부에 와서 오금희를 하고나면 올 때와 달리 역시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선생님의 오금희 동작은 도인술 이전에 일종의 아름다운 춤처럼 보인다. 예술이다. 이제까지는 배움의 단계에 있었는데 앞으로는 수련을 해보고 싶다.
지난 1년간의 내 오금희는 ‘수련’의 과정이었다기보다 ‘배움’의 과정이었다.
여기서 ‘배움’은 학생으로서 선생님의 외형을 따라서 흉내내기에 바빴다는 뜻이다. ‘수련’은 배우고 익히는 것이라서 선생님 동작 흉내내기에다가 스스로 닦아 동작의 원리까지 터득하려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겨우 따라다니며 모양 흉내내기에 급급하였으니, 수련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고 그런 사람이 수련기를 쓰려니까 참 난감하고 이건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일이다.
그래도 염치없이 수련기를 쓰는 이유는 이제 배움의 단계에서 수련의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운동에 대해서는 취미도 없고 손방인 임 선생이 모처럼 운동을 배워보겠다고 하면서, 내건 조건이 나도 함께 배우러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함께 배우지 않으면 안하겠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저 함께 가서 보고 무슨 운동인지 알아본다는 심정으로 예전의 수효사 법당을 찾았다.
첫날 선생님의 열띤 오금희 소개 강의, 마지막에 예비공의 몇 가지 동작을 보여주셨다. 불과 대여섯 명의 수강생 앞에서 한 시간 반 동안 그렇게 열심히 오금희를 소개하신 뒤에도 다음 주에 나오고 안 나오고는 각자의 선택임을 강조하신 선생님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나는 오금희의 순수함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오금희를 꼭 배워야 되겠다는 마음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마땅히 거부해야 할 이유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다음 주 토요일 오후에 다시 나오기로 되었다 . 이렇게 나는 처음부터 남다른 각오도 없이 아주 평범하게 오금희를 시작했다.
이런 경우 대개는 서너달 다니다가 그만두기 십상인데 하다보니 어느새 일년이 다되어 간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지금 우리집에서는 ‘오금희 간다’는 말이 뜻이 잘 통하는 말이 되었다. 토요일 오후에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아빠, 엄마 오늘 오금희 가요?’ 라고 묻는다. 아마 오금희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저게 무슨 소린가?’ 할 것이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모처럼 찾은 여유를 즐기고 싶은 마음에서 이번 주만은 오금희로부터 도망갈 핑계가 없을까 하는 속마음이 생기도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그런 핑계는 많지 않았다. 매번 그런 속내를 가지고도 막상 본부에 와서 오금희를 하고나면 올 때와 달리 역시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선생님의 오금희 동작은 도인술 이전에 일종의 아름다운 춤처럼 보인다. 예술이다. 이제까지는 배움의 단계에 있었는데 앞으로는 수련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