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시자 화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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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타오금희

창시자 화타 소개

창시자 화타

화타는 자가 원화이며 패(沛)국 초 (지금의 안휘성 호현(毫縣)) 사람이다. 후한시대의 유명한 의학대가이다.

젊은 시절에는 학문 탐구에 전념하여 각종 경서를 정독했다. 특히 의학과 양생학에 있어서는 최고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그가 서주에서 공부할 적에 명의로부터 해박한 의학지식을 전수 받아서 의술이 뛰어나 그의 치료로 생명을 구한 이가 한두명이 아니며 후한신의로 불리었다.

후한서와 삼국지에서는 화타열전이 있어 그의 훌륭한 업적을 서술하고 있다.

그의 의학 분야의 업적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술을 이용하여 사람을 마취시키는 이른 바 「마비산」을 발명하여 수술 할 때의 고통을 줄여주었다.

두번째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오금희를 창시하여 체력단련과 질병치료의 운동으로 삼았다. 운동의 생리, 병리 그리고 의학상의 이론이 서로 결합되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는 「마취」와 「외과」 의학의 시조일 뿐 아니라 현대 의료 스포츠 운동을 최초로 시작한 창시자이다.

화타는 뛰어난 의술과 양생술을 겸비한 것 이외에도 사사로운 명예를 추구하지 아니하고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높은 인격을 지닌 사람이다.

패(沛)나라 재상이었던 진규(陳珪)와 태위였던 황완은 그를 찾아가 관직에 오를 것을 청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화타는 오로지 세상 사람들을 질병으로부터 구하고자 하는 평범한 의사가 되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엔 시의가 되어줄 것을 청한 조조의 요구를 거절하여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위지≪무문옥공전≫에는 「건안 12년, 화타는 조조에 의해 살해되었고, 당시 나이 97세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본다면 그는 동한 안제 영초(東漢 安帝 永初) 4년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기원후 110년)

화타는 살해당했지만, 그의 「의술」「약방」그리고 「오금희」의 양생술은 그의 제자인 광릉오보(廣陵吳普)와 팽성번아(彭城樊阿) 두 사람에 의해 계승되었다.

뛰어난 의술로 질병을 치료하던 화타의 업적들은 지금까지도 민간에서 전해지고 있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고향과 서주 일대에 「화타묘」, 「화타사당」 그리고 화타 동상 등을 세워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있다.

이미 1800여년이라는 역사가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여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의술로 세상을 구하고자 했던 화타의 정신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화타묘